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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민 목사 목회서신] 절망의 재(ash)는 소망의 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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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6-03-24 | 조회조회수 : 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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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은 소망이 끊어지는 경험입니다. 고통스러운 감정입니다. 절망은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상태입니다. 절망은 재(ash)와 같습니다. 재는 불에 타고 남은 것입니다. ‘절망의 재’라는 뜻은 절망 속에서 모든 것이 타 버리고 남은 잿더미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단지 슬픔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무너진 관계, 실패한 목표, 상실, 배신, 눈물, 후회 그리고 더는 기대할 수 없다고 느끼는 마음의 상태를 포함합니다. 재는 모든 것이 불에 타 버린 것의 흔적입니다. 뜨거운 불길이 지나간 자리입니다. 남은 것은 잿더미뿐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바로 그 자리에서 소망이 다시 시작된다고 말씀합니다.

  

소망은 절망 속에서 시작됩니다. 이것이 소망의 역설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되는 자리에서 새 일을 시작하십니다. 우리는 절망 중에 “이제 끝이다. 모든 것이 끝났다.”라고 탄식합니다. 그러나 소망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가 새 일을 준비하고 있다.” 하나님은 끝자락에서 새 일을 시작하십니다. 하나님은 벼랑 끝에서 다시 웃게 하십니다. 우리는 벼랑 끝을 두려워하지만, 하나님은 바로 그 자리에서 새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하나님은 ‘절망의 재’ 속에서 ‘소망의 꽃’이 피어나게 하십니다. 재 대신 화관을 씌워 주십니다.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사 61:3). 절망의 때는 슬픔의 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슬퍼하는 사람에게 재를 대신해서 화관을 선물해 주십니다. ‘재(ash)’가 상실과 고통과 수치를 의미한다면 ‘화관’은 기쁨과 영광과 회복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절망의 재’는 새로운 시작의 흙이 됩니다. 하나님은 재를 통해 아름다움을 창조하십니다. 우리는 차가운 재를 보며 불꽃이 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속에 숨겨진 작은 불씨를 보십니다. 그 작은 불씨를 통해 새 역사를 창조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식어버린 자리에서 불을 붙이시는 분입니다. 욥은 자신을 티끌과 재 같다고 탄식했습니다(욥 30:19). 그러나 하나님은 욥을 다시 회복시키시고, 이전보다 더 큰 복을 주셨습니다(욥 42:10).

  

하나님은 사망의 골짜기를 소망의 골짜기로 바꾸십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마른 뼈가 가득한 절망의 골짜기로 인도하시며 물으십니다.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겔 37:3). 에스겔이 조심스럽게 대답합니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겔 37:3). 하나님이 역사하실 때 마른 뼈가 살아납니다. 생기가 임할 때 군대가 됩니다. 사망의 골짜기가 소망의 골짜기로 변합니다.

  

하나님은 절망의 십자가를 소망의 십자가로 바꾸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멸시와 조롱을 받으셨습니다. 채찍질과 침 뱉음을 당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절망의 재가 되었고, 사망의 골짜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을 사흘 만에 부활시키셨습니다. 십자가는 부활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십자가의 재 속에는 성령님의 불꽃이 숨겨 져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절망의 자리에서 부활의 소망을 일으키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환경에 있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소망을 “영혼의 닻”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히 6:19). 바람이 불고 파도가 몰아쳐도 닻이 배를 붙잡아 주듯이, 소망은 흔들리는 우리의 영혼을 붙들어 줍니다.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의 약속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성품에 있습니다. 소망은 절망적인 현실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절망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입니다. 소망은 하나님의 약속을 견고하게 붙잡는 것입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은 소망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선언합니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한다.”(롬 5:5). 그가 고난 중에도, 환난 중에도 소망을 품을 수 있었던 이유는 소망의 하나님 때문입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 15:13).

  

사순절에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합니다. 예수님의 눈물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상처는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 모든 것이 우리를 치유하는 은혜가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밤은 깊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부활의 아침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슬픔이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십니다.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를 띠우십니다.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시 30:11). 우리가 바라보는 재는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시는 자리입니다.


강준민 목사(새생명비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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