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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국 목사의 음악목회 이야기] 예배의 완전한 목적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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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4-08-27 | 조회조회수 : 2,91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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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b Sorge 

(From Restoring Praise & Worship to the Church)



여러분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 본 적이 있는지요? “우리는 왜 예배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드리는 가?” 현재 우리가 예배에 두고 있는 모든 중점의 이유는 무엇인가? 모든 목회자와 교회가 이 질문에 스스로 답변하는 것은 중요하고 필수적입니다. “글쎄요, 우린 항상 이런식으로 예배해 왔습니다”라고 변명하거나 옹호하는 것은 더 이상 적절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예배를 예비의 단계로서, 진정으로 중요한 순서인 설교에 대하여 회중들을 준비시키는 어떤 상태로 인식하거나 이해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예배가 회중의 삶 속에서 하는 중요한 역할을 더 넓은 시각으로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때입니다. 

   

우리의 예배는 다음의 세 영역이 있습니다.


1. 예배의 수직적 측면으로, 예배자의 하나님과의 소통(communication)입니다. 

2. 예배의 수평적 측면으로, 회중 속의 예배자 간의 소통입니다. 

3. 예배자의 내적 측면으로, 예배가 예배자에게 미치는 개인적 영향입니다. 

   

이 세 개의 영역은 우리가 회중 속에서의 예배의 역할을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1. 예배의 수직적 측면

   

예배의 바로 그 첫번째이자 주된 이유는 주님께 섬기는 것입니다. 예배자의 기본적인 자세는 “나는 주님을 축복할 것이다,”이지, “주여, 나를 축복하소서!”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이것을 알고 있지요, 하지만 현실을 직시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예배 후에 집으로 돌아가서 오늘의 예배는 지난 주만큼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불평할 때가 있습니다. 예배의 주된 목적이 주님을 송축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면, 왜 나는 그 예배가 나를 축복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 속상해 할까요? 


질문은 그 예배가 나를 축복했는가에 있지 않아야 합니다. 질문은 그 예배가 하나님을 축복했는가입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내가 그 예배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어떻게 생각하셨는가입니다! 하나님께서 괜찮다고 생각하셨을까? 주님께서 우리의 찬미의 제사를 기뻐하셨을까? 우리에게는 전능하신 주 하나님을 정말로 송축하는 독특하고 영예로운 영광을 안겨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서 섬기도록 하나님께서 불러내어 신령한 제사를 드릴 왕 같은 거룩한 제사장들입니다(벧전2:5,9). 이 특별한 특권을 최대한 활용하여 신앙생할의 혜택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예배의 두번째 이유는 우리 가운데  명백히 드러나는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어디든지 계시는 것을 우리는 이해하지만, 자신을 드러내시는 정도가 다릅니다. 어떤 면에서는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그러나 더 큰 그룹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의 영광스러운 찬송을 부르기 위해 모일 때는 그들의 찬송 중에 거하시고(inhabits), 자기의 찬송하는 백성들 가운데 특별한 방법으로 자신의 임재를 계시하십니다(시22:3, 대하5:13, 14).

   

출애굽기 33장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런 특별한 약속을 하셨습니다: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로 편케하리라”(14절). 이에 대하여 모세가 응답했습니다: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 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15, 16절).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를 세상 사람들과 구별하게 하겠습니까? 무엇이 우리 교회의 예배를 일반 사회 또는 봉사단체의 모임과 다르게 만들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만일 우리의 예배 속에 하나님의 임재가 없다면, 차라리 그만두고 대신에 피크닉을 가버리는 편이 낫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교회의 전형적인 표징(earmark)입니다. 그것이 죄인들이 우리가 다르다는 것을 아는 방법입니다! 그들이 우리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임재를 감지할 때 그들은 모든 사람이 진정으로 바라고 있는 (하나님의) 실재를 경험할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능력이 교회에서 표출되는 기회를 부양하기 위하여 예배를 드립니다. 누가복음 5장17절은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이 앉았는데 “병을 고치는 하나님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임재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강력한 능력의 역사를 주관하시고 계시다는 것은 사실이며, 그러므로 우리가 단순히 예배함으로써 그의 능력을 나타내시도록 어떻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가 회중 가운데 나타날 때에는 그의 뜻에 따라 역사하실 수 있는 더 자유로운 분위기가 오게 됩니다.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선뜻 받을 수 있는 사람들로 준비시켜 줍니다.


우리는 또한 성령의 선물(열매)과 다양한 성령의 사역이 나타나기 위한 분위기와 자리를 마련하도록 하기 위하여 예배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얼마 동안 예배하기 전까지는 거의 예언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계시나요? 그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우리는 먼저 예배합니다, 그런 후에 영적인 사역이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의 처음에 그의 백성들에게 예언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꺼리시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자주 성령의 은사 속으로 흘러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예배의 수직적인 의미에서 우리는 우리와 하나님 간의 대화의 통로를 열기 위하여 예배합니다.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 전 주일의 예배 이후로 하나님과 대화를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개탄스러운일이지만 사실입니다. 그들은 일주일 동안 성경을 읽거나 조용히 기도하며 찬송하는 시간을 갖지 않습니다. 예배는 그들에게 죄를 고백하며 하나님께 마음을 열고 깨끗게 하심과 소생케 하심을 받는 기회를 줍니다. 솔로몬의 아가에서 사랑하는 자가 사랑받는 자에게 애원합니다: “…그대의 모습, 그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오. 그대의 목소리, 그 고운 목소리를 들려주오”(아2:14). 이것이 자신의 신부를 향한 주님의 부르심입니다. 주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몇 번이고 이렇게 간절하고 애타는 소리로 부르시고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상상할 수 있을까요? 이것이 우리의 예배를 위한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주님은 자기를 향하여 들어 올린 우리의 얼굴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오, 하나님은 자기를 향하여 노래하며 찬송하는 우리들의 고운 목소리를 얼마나 듣기를 원하시는지요! 주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회중 속에서 거리낌과 어색함과 억제를 극복하기를 몹시 갈망하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들이 열린 얼굴과 강열한 목소리로 그의 찬송을 뿜어 내어 발산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계속>


필자 김영국 목사는 대광고와 한양대학을 졸업하고 1974년 미국으로 이주, Hope International University에서 신학과 음악목회를 공부하였고, 척 스윈돌 목사와 그의 음악목사이며 스승인 하워드 스티븐슨의 영향을 받았으며, 27년 동안 남가주 오렌지카운티의 큰빛한인교회에서 사역하였다. 지금은 저서와 번역, 그리고 웹사이트 매거진 “예배음악”(Worship Music)에서 음악목회에 관한 칼럼을 쓰면서 자신의 음악목회 경험과 사역을 나누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장로교출판사가 펴낸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음악목회 프로그램”,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찬양과 경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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