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던지는 자의 실로암] 제자가 인도한 논산의 문화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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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니 또한 이런 날도 있습니다. 충남 논산을 세 번이나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한 번은 화순에 내려가는 중에, 두 번째는 화순에서 서울로 복귀하는 중에, 그리고 세 번째는 제자 윤종성 목사님의 초청에 응해서입니다.
첫 번 방문 때에 잠깐 윤 목사님과 강경의 신앙유적지를 찾았던 것, 두 번째 방문 때에 병촌성결교회와 66명의 성도 순교사적지를 방문한 것은 의외의 소득이었습니다. 이제는 윤 목사님의 계획에 따라 지방문화 체험의 시간을 잠시 가지게 되었습니다. 숙소로 정한 곳은 “논산 한옥마을”이었습니다. 저희 부부를 위해 3간, 안방, 건넌방과 사랑방을 함께 빌렸습니다. 평생 집을 떠나 세 개의 방을 한꺼번에 숙소로 사용한다는 것은 첫 체험입니다.
한옥 체험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살렸습니다. 대청마루, 아궁이와 장작, 여유롭게 나온 처마와 앞마당, 봉당과 댓돌, 가지런한 뒤뜰과 행랑채의 늘어선 모습이 마음을 가라앉혀 주었습니다. 방안에는 에어콘이 완비되어 있어, 전통과 현대가 공존함을 보았습니다. 어릴 때의 기억이 그대로 포개졌습니다. 대청과 대들보, 솥 밥을 짓기 위해 불 때던 기억, 뒤뜰의 굴뚝과 장독대와 텃밭, 마루 밑에 살던 “마루”라 부르던 강아지, 그리고 깊고 시원한 우물과 그 앞의 광과 닭장입니다.
한옥을 우측으로 천천히 돌아가면, 금방 “돈암서원”(遯巖書院)이라는 곳이 나왔습니다. 논산(論山)은 선비의 고향입니다. 율곡 이이와 김장생과 송시열 등의 가르침을 유지하는 기호학파의 중심지이고, 효종 때에 공인된 사액서원이 내려진 곳입니다. 수려한 서원 경내를 돌아 보물 1569호인 응도당(凝道堂)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조선시대의 강의실로서, 이름처럼 도가 응결되어 육화되었던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응도당에 올라가 쉴 수 있었습니다. 그곳 마루에 올라앉았습니다. 사방이 환하게 터진 그곳에 갑자기 소나기가 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기와를 타고 추녀에 떨어지는 빗물이 넓은 마당으로 흘러갔습니다. 그 분위기가 얼마나 시원한지, 비가 걱정거리가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은혜의 극적 연출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십 년 전의 제자와 선생이 이제는 은퇴목사와 현직 담임목사가 되어 함께 앉아있는 것이 자못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당쟁에 이르렀던 이 유교적 담론의 역사를 아쉬워했습니다. 언제나 다른 생각을 가진 자를 적대시하는 파당 형성이 아니라, 다름이 조화되어 생기는 연합이 중요하다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갈등의 시절에 교회는 성령 안에서 하나 되고 있나 질문하여 보았습니다. 신앙이 이데올로기화되면 싸움은 더 첨예해집니다. 예수의 제자로 시작하였다가 사회 이데올로기의 전사가 되어 사랑을 잃어버린 “무늬만 제자”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논산은 원래 황산입니다. 응도당의 앞산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 소나무 숲 앞 황산벌에는 계백로가 지나갑니다. 멀지 않은 곳에는 계백장군의 황산벌이 있었다고 합니다. 근처에 있는 탑정호 가장자리로 둘레길이 있고, 밤에는 흔들다리 현수교는 화면이 되어 불꽃 영상을 보여줍니다.
두 부부는 냉수를 번갈아 마시며, 11시가 되도록 한옥 대청에서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인구감소와 맞서 싸우는 교회와 지역사회를 섬기는 목사님 부부가 참 귀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윤 목사님은 젊은 부부를 얻지 못함이 지방 문제의 핵심이라고 말했습니다. 젊은이를 얻으려면 그들이 찾는 양질의 일자리를 공급해야 합니다. 젊은이의 매력인 교회가 아니면, 기성세대 “당신들의 천국”이 될 수 있습니다. 지방과 한국교회, 한인교회는 유사한 과제에 당면하고 있습니다.
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 목사 및 KCMUSA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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