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풋한 풋고추 풋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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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햇살에 사람들은 덥다고 아우성을 치지만, 과일과 곡식은 더위를 양분 삼아 영그는 계절입니다. 교회 뒷마당에 있는 작은 텃밭에서 여름 햇볕을 한껏 머금고 자란 풋고추가 주일마다 점심 식탁을 찾아왔습니다. 초록빛 풋고추를 쌈장에 찍어 한입 베어 물면 아삭한 소리와 함께 친교를 나누는 성도들의 마음도 싱그러움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렇게 몇 주간 주일 점심 식탁에 올라오던 풋고추가 어느 날부터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주일 점심에 풋고추를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을 품고 있던 어느 주일 오후였습니다. 교회 텃밭에 권사님들 몇 분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제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여 있는 쪽으로 향했습니다. 그 자리에 모인 분들은 얼마 안 남은 풋고추를 따고 있었습니다.
“아이고! 도둑질도 아무나 못 하나 봐요. 풋고추 서리하다가 우리 목사님한테 들켰네요.” 권사님들은 학교에서 짓궂게 놀다 선생님에게 들킨 여고생들 마냥 깔깔대면서 말했습니다. 그때 권사님 한 분이 풋고추 한 움큼을 제 손에 안겨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목사님도 공범입니다.” 얼떨결에 풋고추를 받아 든 채 풋고추 풋서리범이 된 저는 “이 일은 무덤까지 간직하고 가는 겁니다.”라는 말로 화답하며 웃었습니다.
그렇게 풋고추 서리 사건이 잊힐 때쯤이었습니다. 교우 한 분이 병원에 입원하셔서 찾아갔습니다. 수술을 앞두고 있었기에 기도하며 격려했습니다. 수술 후에는 심방할 때마다 순조롭게 잘 회복하고 계셨기에 감사했습니다. 그분은 그렇게 며칠을 병원에 더 머물다가 재활 병원으로 옮겨가셨습니다.
그러는 사이 병원 생활이 두 주 이상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재활 병동을 방문해서 식사는 잘하시는지 물었더니 “병원 음식이 다 그렇지 뭐……."라고 하시면서 말끝을 흐리셨습니다. 그분은 미국에 일찌감치 오셔서 미국에서 산 세월만 해도 60년이 훨씬 넘으셨는데도 여전히 한국 음식이 그립다고 하셨습니다.
“뭐가 제일 드시고 싶으세요?”라는 제 질문에 그분은 ‘풋고추’라는 답과 함께 “풋고추를 고추장에서 찍어서 쌀밥과 함께 먹으면 맛있잖아요. 한국 사람은 고추장만 있으면 돼요.”라고 답했습니다. ‘풋고추’라는 말을 듣는데, 교회 텃밭에서 자라는 풋고추가 떠 올랐습니다. 싱싱하고 깨끗한, 말 그대로 유기농 풋고추를 따다 드리면 좋아하실 것 같았습니다.
이튿날 풋고추 서리를 하러 텃밭으로 들어갔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언뜻 보니 만만해 보이는 풋고추가 보이지 않고, 더위에 말라비틀어지고, 벌써 빨갛게 옷을 갈아입은 고추들만 눈에 띌 뿐이었습니다. 조금 안쪽으로 들어서니 그제야 여기저기 숨어 있는 싱싱한 풋고추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렇게 풋고추 몇 개를 풋서리해서 병원으로 갔습니다.
재활 병동에서 입에 맞지 않는 음식과 더불어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그 분은 저보다 제가 가지고 간 풋고추와 고추장을 더 반가워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식사 시간이 되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았는데도, 풋고추 몇 개를 고추장에 찍어서 순식간에 해치우셨습니다. 이렇게 좋아하실 줄 알았으면 풋고추를 더 따왔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후회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풋고추’에 붙은 ‘풋’이라는 말이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했습니다.
‘풋’이라는 말은 ‘풋고추’를 비롯해서 ‘풋과일, 풋사과, 풋마늘, 풋배추, 풋김치, 풋나물’에서처럼 ‘처음 나온’ 또는 ‘덜 익은’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입니다. 또, ‘풋’이라는 접두사는 ‘풋내기(경험이 없거나 나이가 어려서 일에 서투르거나 물정을 모르는 사람)’, ‘풋사랑(어려서 깊이를 모르는 사랑)’, ‘풋바둑(배운 지 얼마 안 되는 서투른 바둑 솜씨)’처럼 말 앞에 붙어 ‘익숙하지 않은, 깊지 않은’이라는 뜻을 더합니다.
‘풋고추'를 ‘풋서리’ 해서 병원에 계신 교우에게 가져다드렸는데, ‘처음 나온, 덜 익은’이라는 뜻의 ‘풋’과 ‘익숙하지 않은 솜씨’라는 뜻의 ‘풋’이 만나 ‘풋내와 같이 싱그럽다’는 뜻을 가진 ‘풋풋한’이라는 말이 되었습니다. ‘풋고추’를 ‘풋서리’ 해서 병원에 가져갔을 때, 재활 중인 교우의 영혼을 울리는 ‘추억의 음식(Soul Food)’이 되어 건강을 찾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리라는 생각이 풋풋함으로 다가왔습니다.
덜 익은 것 같은 ‘풋믿음’을 갖고, 여전히 어리고 서툰 영적인 ‘풋내기’로 살고 있지만, 우리도 삶 속에서 ‘풋풋한’ 신앙의 향기를 내며 살기를 기도합니다.
이창민 목사 (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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