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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시피 하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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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4-08-09 | 조회조회수 : 2,03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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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을 싱그러움으로 채우며 시작된 5월이었는데, 제 마음에는 분주함만 가득했습니다. 노스캐롤라이나 총회 참석을 비롯한 여러 일정을 끝내고 5월의 첫 주일을 지내고 나서야 조금 쉴 수 있는 월요일을 맞았지만, 그날따라 여러 일정이 잡혀 있었습니다. 아침, 오후, 저녁까지 이어지는 일정 속에서 교우 한 분이 제 마음속에 찾아오시더니 떠나지 않았습니다.  


제 마음속에 찾아오신 분은 오삼열 장로님이셨습니다. 오 장로님은 오랫동안 바깥출입을 못 하셨지만, 식사도 잘하시고 아픈데도 없이 편안히 잘 지내고 계셨습니다. 부인되시는 오영숙 권사님께 안부를 물을 때마다 그저 잘 지내고 있다고만 하셨습니다. 제가 찾아뵙겠다고 여러 번 말했지만, 늘 다음에라는 말로 미루셨습니다. 


물론, 바쁜 저를 배려해서 하시는 말씀인 줄 알기에 기다렸는데, 그날은 오 장로님을 꼭 찾아봬야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오 권사님은 그날도 오지 말라고 하셨지만, 그냥 밀어붙이면서 오 장로님 댁으로 갔습니다. 오 장로님은 전보다 많이 약해지셔서 말씀도 못 하시고 침대에 누워만 계셨습니다. 음식도 예전처럼 드시지 못했기에 몸은 많이 야위셨지만, 주름 하나 없는 얼굴은 94년을 살아온 사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했고 평안해 보였습니다. 


오 장로님이 좋아하시는 찬송을 불렀습니다.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몇 달 전에 찾아뵙고 예배드릴 때 함께 불렀던 찬송이었습니다. 그때는 찬송을 외워서 부르셨는데, 이번에는 듣기만 하실 뿐 입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입 대신에 목이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비록 소리는 내지 못하셨지만, 찬송을 열심히 따라 부르셨습니다. 오 장로님과 그렇게 예배드린 후, 다음에 또 찾아뵙겠다는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그 이튿날 오 장로님께서 평안한 가운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는데, 전날 저를 장로님 댁으로 이끄신 분이 성령님이시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가족들의 일정에 맞춰 5월 말에 장례 예배를 드렸습니다. 평소에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을 꺼리셨던 장로님의 뜻에 따라 가족들만 모여서 드린 조촐한 장례 예배였습니다. 장례 예배를 마친 후에 평소에 장로님을 사랑하고, 정을 나누었던 이들과 몌별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추모예배를 따로 드리기로 하면서, 그때는 오 장로님에 관한 재미있는 추억만 나누기로 약속하고 헤어졌습니다. 


지난 7월 27일 오후에 가족과 교우들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 예배를 드렸습니다. 약속대로 장로님에 관한 유쾌한 기억들이 오갔습니다. 가족들이 정성으로 마련한 추모 테이블에는 장로님의 인생을 말해주는 여러 물건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공로로 받은 훈장과 1959년에 받은 페퍼다인대학 졸업장, 그리고 성경책이 있었습니다.  


추모 예배 말씀을 전하면서 오 장로님의 일생을 알파벳 ‘H’로 시작하는 3개의 단어로 정리하면 ‘Humility(겸손)’, ‘Humor(유머)’ 그리고 멋이라고 할 수 있는 ‘Handsome’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장로님은 늘 겸손하셨고,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으셨습니다. 외모만이 아니라 내면적으로도 참 멋진 분이셨음을 기억하면서 장로님을 우리 곁에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장로님의 사진 옆에 놓인 장로님이 평소에 좋아하셨던 것들도 모두 ‘H’로 시작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장로님께서 평소에 즐겨 쓰셨던 ‘모자(Hat)’와 1950년대 초, 화물선을 타고 미국에 오는 길에 맛보았던 ‘Hershey(허쉬 초콜릿)’였습니다. 장로님은 배에서 먹었던 그 초콜릿 맛을 영원히 잊을 수 없다는 말씀을 기억이 멈출 때까지 하셨습니다. 


마지막 물건은 미시시피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찍힌 ‘Harmonica(하모니카)’였습니다. 블루스의 고향이라고 알려진 미시시피에서 사람들이 비싼 악기 대신 하모니카를 불었기에 하모니카를 ‘미시시피 색소폰’이라는 별칭으로 부릅니다. 미시시피에 살던 사람들이 미시시피라는 상표가 찍힌 하모니카를 불면서 가난한 일상의 고단함을 달랬듯이, 오 장로님도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이 하모니카에 담아 달랬을 것입니다. 지금쯤 천국에서 하모니카를 불며 하나님을 찬송하고 계실 장로님, 이 땅에서 수고 참 많이 하셨습니다. 이제 천국에서 편히 쉬시기를 기도합니다. 


이창민 목사(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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