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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던지는 자의 실로암] 제주에서 만난 45년 전의 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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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4-09-05 | 조회조회수 : 2,52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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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부부와 제주도에서 한 주일의 휴가를 보냈습니다. 제주는 자연의 경이로움으로 가득합니다. 마지막 이틀은 성산 일출봉을 창밖으로 보면서 지냈습니다. 화산섬 제주도는 전체가 현무암 덩어리입니다. 일 년이 지나도 다 못 볼 경이로운 자연환경이 너무 많습니다. 검은 해변, 돌담과 돌하루방, “오름”이라는 기생화산, 주상절리와 이국적인 나무, 폭포와 용천수, 수많은 용암 동굴과 생물 등 부지기수입니다. 하나님의 경이를 체험하는 중에 오래 전 추억의 친구를 만났습니다. 

   

나주가 고향인 친구, 나윤엽은 70년대 말 학군단 훈련받을 때 만났습니다. 홍익대 미대생인 그는 나름의 미학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980년 초, 전남 광주에서 초등군사교육반을 이수하며 그를 다시 만났습니다. 바쁜 훈련 중 어떤 주말, 우리는 완도의 정도리 몽돌해변으로 갔습니다. 아름다운 영암 월출산을 지났습니다. 그 산의 불꽃 같은 윤곽을 바라보며, 나는 “인생이라 이름짓고 싶다” 했습니다. 그는 “인생이 이 산과 같으면 대성공”이라 말했습니다.

   

해변의 여인숙에서 일찍 일어나, 우리는 자갈로 이루어진 그 몽돌해변으로 그림을 그리러 나갔습니다. 그 친구의 코치를 받으면서 함께 풍경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저는 몇 시간을 보내면서 시간에 따라 변화되는 명암, 색조, 바다와 바위의 민물과 썰물을 보고,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을 무딘 붓으로 그려내는 것이 불가능함을 이내 알았습니다. 그 친구는 자연을 본 자신의 “인상(impression)을 그리는 것”이며, 그것은 결국 “자신을 담아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 했더니, 그는 “전공자를 절망시키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가 특전사로 부임한 것을 알고 헤어졌습니다. 그 후 군 생활, 대학원 공부, 유학과 목회의 45년이 흘렀습니다. 얼마 전 미국 목회 중에 얻은 친구의 전화번호로 수십 년 만에 전화했습니다. 그는 변하지 않은 목소리로 제주도에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꼭 찾아보겠다고 다짐했는데, 제주도 일출봉 근처의 표선에서 농사를 짓는다고 했습니다. 그는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함께 저녁을 같이 먹었습니다. 45년 만에 본 친구의 모습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오랜 시간 그는 길들지 않은 모습으로 자연을 사랑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는 특전사, 한미 연합사의 장교로 군 생활을 했고, 인도네시아와 남아공에서 무관으로 근무한 뒤 대령으로 예편하였습니다. 그는 국가를 위하여 불꽃 같은 삶을 살아내고 나서, 겸손하게 국가의 도움으로 잘 살아왔다고 말했습니다. 식사 후, 그가 경영하는 2만 평 농장으로 가서 그가 타 주는 커피를 마시면서 그의 부부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농장에 몇 채의 집을 지었고, 몇몇 사람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섬세하게 환경을 배려하는 농군이었습니다. 그는 농장에서 3마리의 말을 기른다고 하였습니다. 채소 농사를 지어 각지에 사는 지인에게 먹거리를 공급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원초적인 농사 방법을 찾아 생산하는 것 같았습니다. 차분한 그의 아내는 자연과 원시림 사이에서 살며, 직장생활을 하는 두 자녀에게 왕복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유기농으로 농사하는 사람은 처음 보았습니다. 그는 나주에서 부농이었으며, 자신은 머슴들보다도 더 농사를 잘 지었다고 했습니다. 

   

인간과 환경의 관점에서 보면 세 종류의 인간이 있습니다. 환경을 개발의 대상으로 보는 개발론자, 인간과 환경의 공존을 주장하는 환경관리론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환경을 그대로 보존하자는 생태론자(ecologist)입니다. 제가 2번째에 속한다면, 친구는 확실히 3번째 부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먼저 천연의 삶을 즐기며, 비료와 농약 없는 작물을 생산, 공급하고 있었습니다. 추억이 경이로움으로 바뀌는 중에 밤이 되어 어두운 밀림을 아쉽게 나서야 했습니다.


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 목사 및 KCMUSA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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