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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국 목사의 음악목회 이야기] 예배의 정신 By Mike Herron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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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4-10-11 | 조회조회수 : 7,35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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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에 대한  신약성경의 개념 -2 


2) 세보마이(Sebomai) 


예배를 뜻하는 이 그리스어는 마태복음 15:9절에서 발견됩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형태의 예배를 다음과 같이 비판했습니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주께서 언급하시는 헛됨과 공허함이 바로 세보마이(sebonai)의 그 의미에서 발견됩니다 -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신을 예배하는 것.”


타당한 예배에 관련된 신약성경의 모든 언급에는, 사용된 단어는 명사가 아니고 동사입니다. 예배는 하나의 사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이 행하는 일입니다. 자신을 많은 사람들의 무리와 구별할 수 있는 하나의 결정적인 행위입니다. 다니엘서에 나오는 세 명의 히브리인 자녀들은 우상숭배의 예배 행위에 참석하지 않음으로 불타는 용광로에 들어가기로 그들의 운명을 결정했습니다. 진정한 예배자들은 그들이 행하는 바로 구별되는 것이지, 그들의 마음의 의도와 뜻만으로 식별되지 않습니다.  


3) 세바조마이(Sebazomai)


세 번째 단어는 “종교적으로 존경하는” 의미입니다. 진정한 예배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정규적이며 일관된 찬미자일 것이며,  그의 마음에 참 하나님을 쉼 없이 예배하려는 의무감을 간직할 것입니다. 이 단어는 로마서 1:25에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됩니다: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짖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하나님을 예배하기를 거절하는 결과는 우리로 하여금 경각심을 불러일으켜서 우리의 마음을 살피게 하며 성령의 예배에의 부르심에 응답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롬 1:21은 다음의 두 가지로 이 예배에 대한 거부를 기술합니다: 

(i)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ii) “그에게 감사치도 아니하고…” 이것은 하나님을 알거나 인정하는 것에 관한 문제가 아니었고, 예배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관련된 문제였습니다.


감사는 예배의 핏줄이며 힘줄입니다. 예배의 신실함의 방향이 잘못될 때, 거기에서 불의(29-32절),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등을 실현하는 결과가 초래되는 “멸망의 과정”이 시작됩니다. 


참된 예배가 거부될 때, 마음 역시 퇴행적인 과정을 겪습니다.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21절). 그리고 마침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버려두사…”  그들은 최종적인 퇴행의 나락으로 떨어져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공백과 함께 타락한 마음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28절).  


4) 에셀로스레스케이아(Ethelothreskeia, ἑθελοθρησκεια)


이 마지막  헬라어 단어는 “스스로 규정하고 지시하는 예배”를 의미합니다. 골 2:16-23에서 우리는 이러한 형태의 예배의 세가지 징후를 발견합니다.  


a) 외형적 예배 (Exterior Worship) (골 2:16,17)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실체를 가리키고 있지만, 용납할 수 없는 예배의 그림자로서 제사법(Levitical laws)의 자연적, 외면적 관찰을 대비시킵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일이나 명절이나 초승달 축제나 안식일 문제로, 아무도 여러분을 심판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이런 것은 장차 올 것들의 그림자일 뿐이요, 그 실체는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예배는 그리스도에게  촛점을 맞추는 것이지, 행위(performance, 연기)에 집중하는 것이 아닙니다!   


b) 천사 숭배 (Angelic Worship) (골 2:18)

바울은 이 잘못된 형태의 영성을 이런 말로 불신합니다: “아무도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주장하면서 여러분의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십시오”(역자의 역). 예배는 그리스도의 우월성 중심에 있지, 영적 징후에 있지 않습니다. 


c) 인본주의적 예배(Humanistic Worship) (골 2:22-23)

인간의 명령과 가르침에 근거한 예배도 역시 참 믿는자에게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는 것으로 불신됩니다. “이런 것들은 다 한때에 쓰다가 없어지는것으로서, 사람의 규정과 교훈을 따른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꾸며낸 경건과 겸손과 몸을 학대하는 데는 지혜를 나타내 보이지만, 육체의 욕망을 억제하는 데는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분명하게, 우리는 이 구절로부터, 예배는 그리스도의 임재에 중심을 두는 것이지, 인간의 의식 절차나 의례에 두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예배의 정신의 특징


1) 크게 즐거워함과 기쁨


예배의 정신은 동방으로부터 온 동방박사들의 이야기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마 2:10-11 참조).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10절). 예배는 배타적으로 엄숙하고 무겁고 진지하지만은 않습니다. 그것은 기쁨의 극치입니다!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 16:11). 예배는 기쁨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지체를 강화하기 위해 디자인된 것입니다!(느 8:10 참조…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계 19:4에서 우리는 하늘의 예배를 봅니다: “또 이십 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또 5절에서는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무론대소하고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는 찬양을, 그리고 7절에서는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라는 주님에 대한 기쁨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같이 그 속성에 있어서 분리할 수 없지만 구별되는 계시록 예배의 모습입니다.  


2) 그리스도의 계시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마 2:11). 주님의 집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우리에게 드러내시는 곳입니다.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려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시 63:2). 우리가 하나님의 집으로써 함께 모일 때, 우리는 이사야와 함께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사 6:1). 예배는 하나님의 것에 더 큰 실재를 가져옵니다. 


3) 엎드림(Falling down)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마 2:11). 성경 전체에 걸친 예배의 장소는, 엡 1:22에 기록된 바대로 하나님의 변경할 수 없는 법령이 성취되는, 그리스도의 발 앞에 입니다: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예배에서 우리는 우리의 정당한 합법적 위치에 섭니다 - 예수의 발 앞에 입니다 - 우리는 주님의 발 아래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자리는 주님의 원수들을 위해 준비된 장소입니다! <끝>


필자 김영국 목사는 대광고와 한양대학을 졸업하고 1974년 미국으로 이주, Hope International University에서 신학과 음악목회를 공부하였고, 척 스윈돌 목사와 그의 음악목사이며 스승인 하워드 스티븐슨의 영향을 받았으며, 27년 동안 남가주 오렌지카운티의 큰빛한인교회에서 사역하였다. 지금은 저서와 번역, 그리고 웹사이트 매거진 “예배음악”(Worship Music)에서 음악목회에 관한 칼럼을 쓰면서 자신의 음악목회 경험과 사역을 나누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장로교출판사가 펴낸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음악목회 프로그램”,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찬양과 경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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