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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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감리교회 한인 총회가 지난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3박 4일간 우리 교회에서 열렸습니다. ‘다시 은혜 앞에’라는 주제로 미전역에서 모인 300여 명의 목회자들과 평신도 대표들은 예배와 워크숍, 소그룹 모임을 통해 은혜의 시간을 가졌고, 식사와 교제를 통해 만남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한인 총회가 한창 이어지고 있을 때였습니다. 참석자 중 한 분이 속보라고 하면서 ‘한강’이라는 이름의 한국인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고 속삭였습니다. 어릴 적부터 언젠가는 한국 사람 중에서 노벨상을 받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간혹 한국 사람의 이름이 노벨상 후보로 오르내린 적은 있었지만, 수상 가능성이 희박한 막연한 기대 정도였고, 한국 사람에게 노벨상은 넘을 수 없는 벽처럼 여겨졌습니다.
2000년에 한국의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한국 및 동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을 위한 노력과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증진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으면서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노벨상을 받은 후, ‘한강’ 씨가 이번에 두 번째로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한국 사람이 다른 분야도 아닌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는 말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제 기억 속에 있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들은 헤르만 헤세, 앙드레 지드, 윌리엄 포크너, 어니스트 헤밍웨이, 알베르 카뮈, 존 스타인벡 등 세계적으로 알려진 기라성같은 작가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한강’ 씨가 ‘채식주의자’를 통해 한국인 최초로 맨부커상을 수상하면서 국제적 주목을 받았지만, 노벨 문학상까지 받으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안데르스 올슨 노벨 문학상 심사 위원장은 수상자를 발표하면서 “한강의 작품들은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규칙에 맞서고, 각 작품에서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한다”며 “그녀는 신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연결에 대한 독특한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되었다”는 말로 선정 이유를 밝혔습니다.
한국의 언론에서는 ‘한강’ 씨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전하면서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는 말로 요약해서 보도했습니다. 과거에 겪은 고통이나 정신적인 충격 때문에 유사한 상황이 나타났을 때 불안해지는 증상을 ‘트라우마’라고 합니다. ‘역사적 트라우마’는 역사적 사건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겪는 집단적 트라우마, 후세대에 전승되는 이차적 트라우마, 비경험자가 겪게 되는 후천적 트라우마를 통틀어서 말합니다. ‘한강’ 씨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도 놀라웠지만, 제게는 노벨문학상 선정 위원회가 선정 이유로 내세운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는 말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지난 몇 년간 우리가 지나며 겪었던 삶의 여정도 역사적 트라우마로 불리기에 충분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도 그렇고, 교단 탈퇴 이슈로 인한 교회 안팎의 갈등도 그렇습니다. 지난주에 열렸던 한인 총회에서도 그런 역사적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했습니다. ‘한강’ 씨가 노벨상을 받은 이유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면, 교회에서 나눔과 섬김, 선교를 통해 펼쳐지는 은혜의 이야기는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는 은혜의 산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한인 총회를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고민했던 것이 바로 그 부분이었습니다. 역사적 트라우마에만 머물 수 없었습니다. 가벼운 위로나 일시적 처방이 답이 될 수 없었습니다. 이번 한인 총회에서는 연합감리교회에 속한 한인 공동체의 역량을 모아 역사적 트라우마와 맞서는 하나님의 선교 이야기를 써 나가기로 했습니다. 한인 총회는 2025년부터 3년간 연합감리교회 세계선교부에서 파송한 140명의 장기 선교사에게 1인당 $100의 재정적 지원을 포함한 영적, 정서적, 선교적 후원을 약속하는 선교 협약식을 체결했습니다.
물론, 선교사 한 사람에게 한 달에 $100이라는 지원금은 그리 크지 않게 여겨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 재정적 후원만이 아니라 우리의 기도와 관심이 더해지면 분명 큰 격려가 될 것을 기대하며 협약을 맺었습니다. 이제 한인 공동체가 감당해야 하는 짐이 또 하나 늘었습니다. 하지만, 이 짐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우리에게 맡기신 거룩한 부담입니다. 그 은혜의 짐을 지고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는 하나님의 선교 이야기를 여러분과 함께 써 나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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