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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이 된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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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4-11-13 | 조회조회수 : 6,90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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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 번씩 제게 카드를 보내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존경하는 이창민 목사님!’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카드에는 신문에 실린 제 글을 잘 보았다는 인사와 함께 한 달에 한 번씩 신문에 실리는 제 칼럼이 깔끔하게 오려져 동봉되어 있었습니다. 또 그 카드에는 평생 섬기던 교회에 나오지 못하는 서운함, 오랜 세월 함께 신앙생활 했던 교우들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 그리고 건강히 잘 지내라는 당부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 카드를 보내시던 분은 정정옥 장로님이십니다. 정 장로님께서는 몇 년 전 라구나 우즈에 있는 시니어 커뮤니티로 이사하신 후부터 교회에 나오시는 것이 더 어려워졌습니다. 그전에 사시던 곳에서는 그나마 근처에 사시는 교우와 함께 교회에 오셨는데, 이제는 거리도 더 멀어졌고, 교회에 같이 올 친구도 없었습니다. 나이 들면서 따님 댁 가까이 이사해야만 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큰 집에서 사시다가 작은 집으로 갑자기 이사하면서 생긴 마음의 허전함을 채울 수 없어서 늘 어려워했습니다. 


그 카드를 받으면 꼭 전화를 드렸습니다. 카드 잘 받았다는 인사와 함께 시작된 통화는 늘 옛날이야기로 이어졌습니다. 정 장로님께서 병원에서 일하시다 은퇴하신 이야기, 교회에서 여러 부서를 맡아 활발하게 사역하신 이야기 등 옛이야기를 신나게 한 후에는 교우들 형편을 물으면서 한 사람 한 사람과의 인연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수십 년 전 일을 마치 어제 일처럼 말씀하시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한 시간이 금세 지나갔습니다. 


그러다가 이사 하셔서 힘들다는 푸념까지 한 번 시작된 통화는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한 번은 속상한 일이 있으셨는지 전화로 한참 동안 넋두리를 늘어놓으시길래 다 듣고 함께 기도했습니다. 얼마 후에 보내온 카드에는 ‘목사님께 답답한 마음 털어놓고, 기도 받고 진정하고 지냈습니다.’라는 인사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렇게 통화한 것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정 장로님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흔이 가까워지면서 몸이 많이 약해지셨다고는 했지만, 아직 정신도 맑으시고, 말씀도 잘하시고, 기억력도 좋으시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을 그렇게 살피시고 챙기시던 장로님이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몸이 안 좋아지셔서 병원에 들어가셨다가 지난 10월 10일, 폐렴으로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정 장로님을 황망히 떠나보내면서 그분의 삶을 돌아보며 기도했습니다. 정 장로님의 삶에는 늘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있었습니다. 몇 년 전에 정 장로님과 함께 오랫동안 한 속회에서 신앙생활 하시던 조옥희 사모님을 찾아뵌 적이 있었습니다. 그날 심방 예배를 드리고 나오는데, 정 장로님께서 조그만 선물 가방을 조 사모님께 드렸습니다. 그 안에는 플래시 라이트, 손 비누, 그리고 로션이 담겨 있었습니다. 


플래시 라이트는 밤에 옆 사람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화장실 갈 때 사용하시고, 또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했습니다. 비록 조옥희 사모님께서 그날 저녁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기에 그 플래시 라이트는 사용도 못 하셨지만, 정 장로님께서 주신 선물은 천국 가는 길을 밝히는 플래시 라이트가 된 것 같았습니다. 


정 장로님은 그토록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사랑하시면서 평생을 사셨습니다. 정 장로님의 삶을 기억하면서 ‘선물’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선물은 자신을 드려 누군가를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정 장로님은 일찍이 미국에 오셔서 평생 열심히 일하셨습니다. 55세라는 젊은 나이에 은퇴하신 후에도 교회에서 여러 사역을 도맡아 하시면서 자신의 삶을 세상과 이웃을 위한 선물로 드렸습니다. 교회 장학기금을 모으는 데 힘을 보탰고, 클레어몬트 신학대학원과 샌프란시스코 스테이트 대학에도 장학금을 희사하셔서 미래의 지도자를 키우는 일을 도우셨습니다. 


이제 정 장로님을 우리 곁에서 떠나보내지만, 정 장로님이 보여주셨던 사랑과 헌신의 삶은 여전히 우리 마음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정 장로님을 우리 곁에 보내셔서 오랜 시간 좋은 선물로 지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누군가의 삶을 선물로 받은 사람이 갚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은 우리도 누군가의 선물이 되어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선물로 보내셨고,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 세상의 선물로 살라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 귀한 가르침을 평생 삶으로 실천하시다 주님 품에 안기신 고 정정옥 장로님을 추모하며, 이제 우리도 세상의 선물로 사는 인생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창민 목사(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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