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로 물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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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이지만 한국에 머물면서 익숙하지 않은 풍경을 여럿 만났습니다. 자동차가 밀리는 것이야 LA도 마찬가지기에 새롭지 않았지만, 사람에 밀려다니기는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시장에도 지하철에도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물결이 세상을 활기차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뚫고 다니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며칠 지나면서 요령이 생겼다고 사람들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다니면서 지하철도 타고, 버스도 타면서 지냈습니다.
돌아올 때쯤 되니 어떤 분이 저에게 길을 물었습니다. 낯선 곳에서 받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하면서 “죄송합니다. 저도 처음입니다.”라고 답하자 오히려 그분이 ‘알려주기 싫으면 싫다고 하지, 알만한 사람이 왜 모른 척하지’라는 마음이 담긴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분의 뒷모습을 보면서 어느새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만든 파도의 일부가 된 저를 느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지갑이나 전화기를 지하철 개찰구나 버스 앞 계산대에 대고는 ‘삑’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통과했습니다. 저에게는 그 소리가 합격을 고지하는 소리처럼 들렸습니다. 교통 카드를 사서 미리 일정액을 적립한 후에 사용하면 되는 것을 몰라서 표를 사겠다고 매표소 앞에서 얼쩡대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돌아올 때가 되니 제법 익숙해져서 자신감이 붙었을 때였습니다. 지난번에 저희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하셨던 김기석 목사님이 은퇴하시고, 서울 근교에 서재를 마련하셨다고 해서 찾아뵙고 점심을 같이 하기로 했습니다.
서울 사람들의 속도에 맞춰서 빠른 걸음으로 지하철 타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개찰구를 통과하는데 지하철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사람들이 달리기에 저도 함께 뛰어서 그 지하철에 겨우 올랐습니다. 뿌듯한 마음으로 최대한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처럼 전화기를 보면서 지하철을 갈아타야 하는 정거장에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전화기에는 지하철 노선도가 나오고 제가 선 위치가 표시되는데, 점점 목표 지점에서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반대 방향으로 가는 지하철에 오른 것이었습니다. 바로 지하철에서 내려 다시 제 방향으로 가는 지하철에 올랐습니다. 지나온 몇 정거장이 왜 그리도 멀게 느껴지던지요. 그렇게 약속 장소에 도착했지만 만나기로 했던 시간보다 한참이나 지난 후였습니다.
그렇게 한국에서 지내는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지만, 그사이 한국살이에 익숙해지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길거리에서 파는 음식도 맛보고, 집 앞까지 배달되는 음식도 시켜보고, 아침 산책 겸 나가서 동네 커피가게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사서 옆 가게에서 바로 튀겨주는 도넛과 또 그 옆에 붙어있는 김밥가게에서 즉석에서 말아주는 김밥 한 줄로 아침을 대신하는 호사를 누리다 보니 한국살이에 슬그머니 물들고 있었습니다.
‘물들다’는 말은 참 고운 우리말입니다. ‘빛이 스미거나 옮아서 색깔이 변한다’는 뜻입니다. 해 질 녘 하늘은 붉게 물들고, 여인들은 손톱 발톱에 봉숭아 물을 들입니다. 가을이면 나무들은 새로운 생명을 기약하며 아름다운 빛깔로 세상을 물들입니다. ‘물들다’는 말이 가진 또 하나의 뜻은 ‘사상·행실·버릇 따위를 닮아 가다’는 뜻입니다. 이때는 주로 부정적인 의미를 담아서 ‘나쁜 사람에게 물들다. 악에 물들다.’와 같이 사용됩니다.
우리는 일생 수많은 일과 사람에 물들고 또 다른 사람을 물들이며 살아갑니다. 싫든 좋든 우리는 누군가의 영향을 받으며 살고, 또 누군가는 우리를 보고 닮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으로 사는 우리에게는 세상을 은혜로 물들일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은혜 안에 살아야 합니다. 은혜받은 사람이 은혜로 세상을 물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는 해마다 11월이면 세상을 은혜로 물들이기 위해서 우리가 먼저 은혜로 물드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 시간은 바로 ‘다니엘 기도회’입니다. 11월 1일부터 매일(월-금) 저녁 7시, 찬양과 간증, 기도를 통해서 은혜를 받고, 그 은혜로 세상을 물들이게 될 ‘다니엘 기도회’가 올해도 열립니다. 이번 ‘다니엘 기도회’를 통해서 하나님은 예비하신 은혜로 우리를 물들이실 것입니다. 그 은혜를 누리고, 세상을 은혜로 물들일 이번 ‘다니엘 기도회’가 되기를 기도하며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이창민 목사(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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