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목일기] 언어가 사라진 곳에서 피어나는 선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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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스 현장은 언어가 사라진 이들로 가득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말을 잃어버리고 생의 마지막을 지내십니다. 그런데 이분들에게도 언어의 벽을 넘어 마음과 마음이 닿게 하는 언어가 있습니다. 바로 음악과 노래입니다. 음악과 노래로 인해 무너진 기억의 틈이 메워지며 영혼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열정과 아름다움과 사랑이 흘러나옵니다.
작년에 제가 섬기던 한 환자분이 계셨습니다. 1968년생으로 저보다 고작 두 살 밖에 많지 않은 분이셨습니다. 갑작스러운 심장마비 이후 전신마비와 언어 상실이라는 혹독한 시련을 겪었고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채 저를 처음 만나셨습니다. 침대에 누워 계신 그분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꺼질 듯 위태로웠고, 언어장애로 고갯짓으로만 간신히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저는 고작 50대 중반에 호스피스 침상에 누운 그분과 뭔가 소통하고 싶었습니다. 같은 시대를 지나온 동료 인간으로서, 그분 안에 잠들어 있을 7080 청년의 기억을 다시 깨우고 싶었습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비틀즈 음악을 틀어드렸습니다. 그리고 퀸과 핑크 플로이드를 연이어 틀었습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그는 하나 하나의 노래를 음미하며 즐겼습니다. 제가 밴드 활동을 하셨냐고 묻자, 기타를 치는 시늉을 하며 환하게 웃으셨습니다. 아내분께 들으니 실제로 학창 시절 밴드에서 기타를 쳤다고 했습니다.
그날 이후 우리는 7080 밴드 음악을 벗 삼아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딥 퍼플의 강렬한 기타 리프가 흐르면 밴드의 기타리스트처럼 서로 기타를 치는 시늉을 하며 함께 웃었습니다. 그는 그룹 Queen의 “Bohemian Rhapsody”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마치 밴드 시절의 동료처럼 함께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분은 놀랍게도 6개월이라는 진단을 넘어 건강을 회복했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제게는 음악, 그리고 노래가 그분에게 다시 살아갈 이유 하나를 건네준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음악과 뗄레야 뗄 수 없는 할머니 한 분이 계십니다. 1940 년생으로 여든여섯의 할머니입니다. 치매 말기를 지나고 계신 이 할머니에게 세상은 이미 오래 전부터 낯선 곳이 되었습니다. 본인의 이름조차 희미해졌고, 2년째 정기적으로 찾아가서 뵙지만 언제나 저를 처음 보는 ‘젊은 청년’ 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할머니께도 당신만의 안식처가 있습니다. 바로 1965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입니다. 마리아 수녀로 분한 줄리 앤드류스의 맑은 목소리가 방 안을 채우기 시작하면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자기 이름 외에는 거의 기억하지 못하시던 할머니께서 노랫말을 또박또박 기억하고 따라 부르시는 겁니다.
The hills are alive with the sound of music
With songs, they have sung for a thousand years
The hills fill my heart with the sound of music.
그 순간 할머니 얼굴에서는 치매의 그늘이 잠시 걷힙니다. 영화 속 줄리 앤드류스처럼 맑고 명랑한 표정이 떠오릅니다. 그 짧은 시간만큼은 치매도, 세월도, 쇠약함도 그분의 영혼을 가두지 못합니다.
사람의 기억은 연약하여 쉽게 흩어집니다. 그러나 음악은 영혼 깊은 곳에 쉽게 지워지지 않는 길을 냅니다. 말이 사라진 자리에 음악이 흐르고, 기억이 무너진 자리에 노래의 감동이 다시 피어납니다. 제가 만나는 분들에게 음악은 단순한 소리가 아닙니다. 그들이 다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게 해주는 통로이며, 삶을 향한 마지막 아름다운 응답입니다.
음악은 언어가 멈추는 곳에서 시작되어, 생명의 가장 마지막 깊은 자리까지 내려갑니다. 그리고 때로 노래는 인간이 끝내 잃지 않는 마지막 기억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음악을 틀고 노래를 함께 부릅니다. 누군가의 희미해진 기억 속에서 다시 한 번 마지막 열정과 아름다움의 불꽃을 피우기 위해서.
신동수 목사(병원/호스피스 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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