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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의 쓴소리 단소리] 예루살렘 십자가: 신앙과 권력의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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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6-04-20 | 조회조회수 : 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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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성지순례자들이 거리에서 파는 십자가 중 가장 많이 선택하는 것이 바로 ‘예루살렘 십자가(Jerusalem Cross)’다. 나도 성지순례를 갈 때마다 그 십자가를 목에 걸고 다니며 순례자들을 안내하곤 했다.


큰 십자가 하나를 중심으로 주변에 작은 네 개의 십자가가 배치된 독특한 형태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책상 앞에도 예루살렘 십자가가 놓여 있다.


우선 다섯 개의 십자가는 예수님의 상처 다섯 군데, 즉 발, 손, 옆구리를 의미하기도 하고, 그리스도와 사복음서 저자, 혹은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복음 등 여러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십자가는 뼈아픈 역사와도 연결된다. 십자군 전쟁 시 등장한 이 십자가는, 십자군들이 성지 탈환을 위해 전쟁을 벌일 때 펄럭이던 깃발이었다. 제1차 십자군이 예루살렘에 세운 예루살렘 왕국의 공식 문장이기도 했다. 왕과 기사들은 이 예루살렘 십자가를 깃발과 방패에 사용했다. 이미 고인이 되신 고 조찬선 목사님의 『기독교 죄악사』에 따르면, 십자군 전쟁은 죄악사 중에서도 특히 죄악적인 사건이었다. 그 전쟁의 군사적 상징이 바로 예루살렘 십자가였다.


여기서 고민이 생긴다. 예수님의 거룩한 죽음을 상징하는 십자가가, 십자군이라는 군사적 폭력의 깃발이 되고 방패가 되었다는 사실에서 모순을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국방부 장관 피트 헤그세스의 가슴에도 이 예루살렘 십자가가 문신으로 새겨져 있다. 그 모습을  TV를 통해 본 적이 있다. 그는 미국 전투기가 이란을 공격할 때  미국인들을 향해 “전쟁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로마 교황청은 즉각 반응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교황 레오 14세는 올해 부활절 아침 미사 강론에서 기독교 신앙이 전쟁에 동원되는 것에 깊은 우려를 표했다. 군사적 지배는 예수 그리스도의 길과 전혀 무관하다는 것이다. 교황은 지난달에도, 예수의 이름을 전쟁에 내세우는 것을 경계하며 “예수는 전쟁을 벌이는 자들의 기도를 듣지 않고 오히려 거부한다”고 국방장관의 기도 요청을 직격했다.


예루살렘 십자가는 누군가에게는 신앙의 고백이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역사 속 폭력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상징이다. 같은 십자가가 전혀 다른 의미로 읽힌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종교적 상징은 언제 축복이 되고, 언제 위험이 되는가.


성지 탈환이란 명분 아래 시작된 십자군 전쟁은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고, “하나님의 이름”이 폭력 정당화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신앙이 순수한 헌신을 넘어 권력과 결합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물론 현대 전쟁은 종교적 명분보다는 정치, 안보, 경제적 이해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특정 상황에서 십자군을 떠올리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것은 단순한 역사적 비교가 아니라, 종교와 권력이 결합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한 직관적 경고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은 상징 그 자체가 아니다. 십자가는 본래 사랑과 희생, 구원의 상징이다. 그러나 그 상징이 권력과 결합하는 순간 의미는 쉽게 변질될 수 있다. 신앙은 개인의 내면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게 만드는 통로이지만, 집단적 힘과 결합하면 배타성과 폭력의 정당화로 흐를 위험을 안고 있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종종 비슷한 방식으로 되풀이된다. 십자군 전쟁을 단순히 과거의 잘못으로 치부하는 것은 충분치 않다. 오히려 그것을 ‘거울’로 삼아 오늘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비추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여전히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고, 정의를 말하며, 때로는 그것을 위해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반드시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지금 우리는 무엇의 이름으로 행동하고 있는가?”


신앙이 권력의 도구가 되는 순간, 본래의 빛을 잃는다. 반대로 신앙이 겸손과 사랑, 자기희생으로 드러날 때, 그것은 세상을 살리는 힘이 된다. 십자군 전쟁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중요한 교훈은 바로 여기에 있다. 문제는 십자가가 아니라, 그 십자가를 드는 인간의 방식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를 정죄하는 일이 아니다. 그 역사를 통해 스스로를 성찰하는 일이다. 종교적 상징이 다시 권력과 결합하려는 순간마다, 우리는 그 상징의 본래 의미를 되묻고 지켜내야 한다. 그때야 비로소 십자군의 어두운 그림자는 반복되지 않고, 역사 속 교훈으로 남게 될 것이다.


그 예루살렘 십자가가 중세시대를 거치면서 지금에 와서는 예루살렘 성지순례자들의 가장 사랑받는 성물이 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조명환 목사(크리스천 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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