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던지는 자의 실로암] 전쟁의 시대에 이사야, 제국의 품격을 묻다 > 칼럼 | KCMUSA

[창 던지는 자의 실로암] 전쟁의 시대에 이사야, 제국의 품격을 묻다 > 칼럼

본문 바로가기

칼럼

홈 > 목회 > 칼럼

[창 던지는 자의 실로암] 전쟁의 시대에 이사야, 제국의 품격을 묻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 작성일2026-04-17 | 조회조회수 : 122회

본문

오늘날 제국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은 ‘황제의 유무와 상관없이, 자국 영토를 넘어 다수의 국가와 민족 위에 강력한 군사·정치·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초국가적 실체’라 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러한 정의에 부합하는 국가는 미국과 중국 정도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미·중 패권 전쟁이라는 제국적 충돌 속에서 세계 질서는 급격한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작금의 상황은 전쟁의 풍파를 막고 억제하는 힘, 즉 칼 슈미트(Carl Schmitt)가 언급한 ‘카테콘(Katechon, 살후 2:6-7)’이 그 기능을 상실하여 전쟁의 고삐가 풀려버린 듯합니다. 이 혼돈의 시대에 제국의 개념을 역동적으로 재정의한다면, “본토가 아닌 곳에 전선을 형성하고, 그곳에서 효과적으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초국가적 실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제국은 본래 자신의 영토가 아닌 곳으로 영향력을 확장하기 마련이며, 본토에서의 전쟁은 제국이 종말에 이르렀을 때나 일어날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행정부 이후 일관된 미국의 외교적 노력 역시 파나마, 그린란드, 멕시코, 캐나다 등 패권 격돌지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차단하고, 베네수엘라, 쿠바, 이란 등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복구하려는 시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는 종교가 인간의 개인적인 심성과 영성에만 국한된 가르침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놀랍게도 신구약 성경은 개인의 내면에서 시작하여 국제정치에 관한 풍요로운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로마서는 제국의 심장부에 거주하던 신자들을 향한 가르침이며, 요한계시록은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시기에 주어진 로마 제국주의(바벨론)에 대한 통렬한 비판입니다. 구약의 선지서 또한 제국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핵심 요소의 하나로 다룹니다. 나훔, 요나, 하박국은 당대 강대국이었던 앗시리아와 바벨론을 향한 신적 징계를 선포하며,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역시 거대 제국들을 배경으로 예언자적 가르침을 전했습니다. 이처럼 선지자의 시야는 늘 세계를 향해 열려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은 곧 열방의 하나님이시며, 그분의 관심사는 인류 전체의 구원에 닿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이사야서는 제국과 제국주의에 대한 정치비평의 결정체라 할 수 있습니다. 왕족 출신인 이사야의 예언은 일반 백성뿐만 아니라 왕과 고위 관료를 향한 정교한 조언들로 가득합니다. 그는 당대의 패권 세력이었던 앗시리아와 미래의 제국인 바벨론과 페르시아까지 조명합니다. 이사야서 66장은 제국 질서의 변천에 따라 앗시리아(1-39장), 바벨론(40-55장)과 페르시아(56-66장) 시대에 관한 메시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즉, 세계사의 주요 5대 제국 중 그리스와 로마를 제외한 세 제국을 비평하고 있는 셈입니다.

   

마이클 왈저(Michael Walzer)는 선지자를 “사회비평가”로 해석한 바 있지만, 그의 저서 『전능자의 그늘 아래: 구약의 정치(In God’s Shadow)』에서는 선지자를 국제정치의 전문가로도 조명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현대 국제정치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은 마땅히 예언자들의 비평을 경청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앗시리아의 공격 앞에서 아하스와 히스기야 왕에게 정치적 조언을 건네고, 바벨론의 철권통치와 이스라엘의 포로 생활, 그리고 페르시아 고레스 왕에 의한 회복을 예견했듯이 말입니다.

   

이사야가 언급한 세 제국은 각기 독특한 통치의 특성을 가집니다. 앗시리아가 강력한 군사력을 통한 ‘철권통치’의 상징이라면, 바벨론은 무력을 배경으로 하되 다니엘과 같은 유대 인재를 등용하여 체제를 유지하는 ‘문화적 통치’를 도입했습니다. 반면,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의 고레스 대왕은 피지배 민족의 종교와 문화를 인정하는 ‘관용 정책’을 펼쳤습니다.

   

저는 미국이라는 거대 제국이 단순한 도덕적 국가가 되기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다만 미국은 앗시리아와 같은 압도적 군사력을 지녔고, 바벨론과 같은 경제·문화적 헤게모니를 보유하고 있으며, 동시에 페르시아가 보여준 관용과 자유의 전파자로서의 가능성 또한 품고 있습니다. 미국은 이란을 비롯한 전 세계에 군사적·경제적 압력을 가할 수도 있지만, 관용과 인도주의적 정책을 선택할 수도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저는 트럼프 정부와 미국이, 과거 페르시아가 보여주었던 그 예외적인 ‘제국의 품격’을 넘어, 21세기에 걸맞은 제국의 긍정적 전형을 보여주기를 기대하며 기도할 뿐입니다. 


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목사, KCMUSA 이사장)

  • 이 기사를 공유하세요

KCMUSA,680 Wilshire Pl. #401, Los Angeles,CA 90005
Tel. 213.365.9188 E-mail: kcmusa@kcmusa.org
Copyright ⓒ 2003-2020 KCMUSA.org.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