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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목일기] 마약과 진통제, 그리고 인간의 마지막 존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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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6-04-15 | 조회조회수 : 3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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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필리핀에서 마약왕으로 검거되어 징역을 살다가 한국으로 임시 구인된 박왕열로 인해 마약에 대한 경각심이 다시 한 번 커지고 있습니다. 


양귀비의 덜 익은 열매에서 채취하는 아편에서부터, 전장에서 사용되는 모르핀, 그리고 널리 퍼진 마약 코카인과 히로뽕, 그리고 펜타닐에 이르기까지, 마약은 이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유명 진통 향정신성 약품들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원래 마약은 쾌락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고통을 줄이기 위한 진통약으로 시작되었다는 점입니다. 인류는 2200년 이전부터 고통을 줄이기 위해 아편을 사용해 왔다고 이집트 문헌 등에 밝혀져 있습니다. 고대로부터 천연 진통제로 알려진 아편이 본격적인 의약품으로 개발된 것은 1804년 아편에서 정제된 몰핀(Morphine)이 등장했을 때였고, 사람들은 그것을 기적의 약이라고 불렀습니다.


예를 들어, 전쟁터에서 폭탄에 팔다리를 잃고 극심한 고통에 신음하던 병사가 몰핀 한 번으로 고통에서 벗어나 편히 치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숨 쉬는 것조차 고통이던 말기 환자가 몰핀 투여 후 편안하게 호흡하며 가족과 마지막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 현대인들이 두통이나 치통이 있을 때 일반적으로 먹는 진통제 타이레놀(Tylenol). 몰핀은 그 진통 강도에 있어서 타이레놀의 100배의 효과를 발휘합니다. 그런데 이런 아편성 진통제는 통증을 잠재우는 그 기적의 효과뿐만 아니라 심각한 부작용이 있었습니다. 바로 중독입니다. 환상적인 진통 효과는 거듭된 투여로 이어지고 심각한 중독을 낳게 되었습니다. 진통 치료가 파괴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몰핀의 강력한 진통 효과에도 중독이 잦은데, 최근 “좀비 마약”으로 알려진 펜타닐은 몰핀보다 100배, 몰핀을 개량한 마약 헤로인보다 50배 강력한 효과를 냅니다. 제조 비용이 싸서 다른 마약인 코카인 등에 몰래 섞어 팔기도 하는데, 심지어 초등학교 등에서 아이들에게 공짜로 나눠주고 중독을 시켜 돈을 주고 사게 만드는 경악할 일이 벌어지고 있기도 합니다. 


원래 말기 암 환자나 중증 희귀질환자를 위한 극강의 진통제가 정상인 사람이 하게 될 때 온 몸이 마비되며 환각이 일어나게 됩니다. 결국 이렇게 불법으로 유통된 약품들이 일반인들 사이에서 손쉽게 구입하는 마약으로 급속도로 퍼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와 필라델피아의 켄싱턴 등은 펜타닐에 중독된 사람들이 좀비처럼 거리에 널려 있다고 합니다. 큰 일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깁니다. 몰핀과 펜타닐이, 왜 어떤 경우에는 사람을 극심한 고통에서 해방시켜 치료에 도움을 주고, 또 어떤 경우에는 인간을 파괴하는 도구가 되는 것일까요? 


차이는 약 자체에 있지 않습니다. 목적과 사용 방식에 있습니다. 제가 일하는 호스피스에서도 마약성 진통제가 항상 사용됩니다.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 입니다. 삶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됩니다. 그리고 반드시 의료진의 통제 아래에서 정확하게 조절됩니다. 마약은 현실을 잊기 위해 사용되지만, 진통제는 고통 속에서도 현실을 살아가기 위해 사용됩니다.


호스피스 현장에서 자주 듣는 질문이 있습니다. “이거 마약 아닌가요?” “이걸 쓰면 중독되는거 아닌가요?” “이걸 쓰면 더 빨리 돌아가시는 것 아닌가요?”


임상적으로 분명한 사실은, 적절하게 사용된 마약성 몰핀과 펜타닐은 중독의 위험이 매우 낮으며, 특히 말기 환자에서는 중독이 임상적 문제가 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또한 이 약들이 죽음을 앞당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통증을 줄여, 환자가 더 안정되고 편안하게 남은 시간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습니다. 


말기 환자의 통증은 단순한 불편함이 아닙니다. 몸을 파고드는 통증과 숨조차 쉬기 힘든 호흡곤란은 인간의 존엄 자체를 무너뜨릴 수 있는 고통입니다. 이때 몰핀이나 펜타닐은 단순한 약이 아닙니다. 남은 삶을 평안하게 살아가게 하는 필수조건이 됩니다. 통증이 줄어들면, 환자는 다시 눈을 뜹니다. 가족을 바라보고, 말을 건넬 수 있게 됩니다.


제 환자 중 한 분은 극심한 통증으로 신음하시던 분이었습니다. 너무 아파서 저만 보면 하나님께 기도해 자신을 빨리 죽게 해 달라고 간청하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환자분이 펜타닐을 사용한 후 조용히 숨을 고르고, 가족의 손을 잡으며 말했습니다: “이제 좀 괜찮다…” 


이 약은 제때에 적절하게 사용될 때 단순한 약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지켜주는 도구가 됩니다. 고통이 극심하면 사람은 관계를 잃어버립니다. 그러나 통증이 조절되면,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마음에 남아 있던 말을 전하고,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시간이 열립니다. 그래서 호스피스에서 진통제는 단순한 치료가 아니라, 관계를 회복시키는 통로가 됩니다.


결국 차이는 분명합니다. 마약은 인간을 무너뜨립니다. 그러나 진통제는 인간성을 지켜줍니다. 마약은 삶을 소비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진통제는 남은 삶을 살아낼 수 있게 만듭니다. 어떤 손에 들리느냐에 따라, 그것은 파괴가 되기도 하고 평안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약들을 두려움이 아니라, 지혜와 책임, 그리고 사랑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신동수 목사(병원/호스피스 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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