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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의 쓴소리 단소리] 이름은 거룩한데 삶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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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6-04-13 | 조회조회수 : 3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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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산타 이네즈(Santa Inez)에서 며칠을 묵은 적이 있다. 중가주에 있는 덴마크 민속촌 ‘솔뱅’ 근처였다. LA로 내려오다 보니 금방 산타 바바라가 나오고 벤추라 카운티 쪽에서는 산타 폴라를 거쳐 내가 사는 도시, 샌퍼난도 밸리로 돌아왔다. 아니 웬 지명 가운데 이렇게 샌과 산타가 많은 거지? 우리는 너무 익숙하게 부른 나머지, 그 이름들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지나칠 때가 많다.


캘리포니아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다 보면 남쪽 샌디에고에서부터 산타모니카, 산타바바라, 산타 마리아, 산호세, 샌프란시스코…… 마치 하나의 공통된 언어처럼 ‘San’과 ‘Santa’라는 이름이 도시 곳곳에 새겨져 있다. 샌은 남성 성인을, 산타는 여성 성인을 의미한다


이 이름들은 단순한 지명이라기보다 스페인 식민지 시대, 신앙을 품고 이 땅에 들어왔던 사람들이 붙인 ‘성인’과 ‘성녀’의 이름들이다.


산타모니카는 성녀 모니카를 가리킨다. 히포의 모니카, 누구인가? 그 이름도 유명한 성 어거스틴의 어머니, 아들을 회개시켜 위대한 기독교 지도자로 만든 그 어머니다. 산 호세는 예수님의 양아버지 성 요셉을 뜻한다. 샌디에고는 성 디에고에서 따온 이름이다. 디에고 성인은 프란치스코 수도회 선교사로서 가난한 이들의 아버지였다. 샌프란시스코는 ‘평화의 사도’이자 ‘제2의 그리스도(Alter Christus)’라고 불렸던 성 프란시스에서 온 이름이다.


스페인 식민지 시대 캘리포니아엔 무려 21개나 되는 ‘미션(Mission)’이 있었다. 미션이란 아메리카 원주민을 교화하기 위해 스페인에 의해 세워진, 가톨릭 수도원 형식의 공동체였다. 신앙생활의 중심이자 동시에 농업과 교육의 중심이기도 했다. 이 미션을 중심으로 도시가 생길 때마다 성인과 성녀들의 이름을 따서 ‘작명’을 한 것이다. 그러니까 도시 하나하나가 사실은 한 사람의 믿음과 삶을 기념하는 이름 위에 세워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캘리포니아의 많은 도시들은 처음부터 “거룩한 이름”으로 불려지도록 의도된 공간이었다. 단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의 뜻을 따라 살기를 소망했던 흔적이 지명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날 우리는 이 이름들을 어떻게 부르고 있는가.


샌프란시스코를 말할 때 우리는 자유와 다양성을 떠올리고, 산타모니카를 말할 때는 바다와 여유를 생각한다. 물론 그것도 그 도시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 이름이 처음 담고 있었던 뜻 - ‘거룩함, 헌신, 믿음’ - 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는 것이다.


도시의 이름은 여전히 ‘성인’을 부르고 있지만, 도시의 삶은 그 이름을 닮아 가기는커녕  이름의 근원 따위는 관심조차 없다는 듯 냉소적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도시를 바꾸는 거창한 정책 이전에, 이름을 다시 읽는 일인지도 모른다. 샌디에고를 부를 때, 단순한 도시가 아니라 한 신앙인의 삶을 떠올리고, 산타클라라를 말할 때 한 성녀의 헌신을 기억하는 것. 그렇게 이름 속에 담긴 이야기를 되살리는 일이다.


이름은 방향을 제시한다. 그리고 방향은 결국 삶을 바꾼다.


캘리포니아의 도시들은 이미 그 출발점에서 ‘거룩’을 향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 방향을 잃어버린 채 속도만 내며 달려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일지 모른다.


그래서 다시 묻고 싶은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들은, 그 이름처럼 거룩을 사모하는 도시인가.


정직과 정의, 배려와 책임,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경외가 도시의 문화 속에 스며들 때, 비로소 이 땅은 이름에 걸맞은 모습으로 회복될 것이다. 거룩은 교회 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거리와 직장과 가정 속으로 흘러가야 하기 때문이다.


San과 Santa로 시작하는 이 수많은 도시들이, 단지 과거의 신앙 유산이 아니라 오늘의 살아 있는 고백이 된 다면 얼마나 좋을 세상이 열리겠는가?


그래서 이 땅의 이름들이 더 이상 장식이 아니라, 삶이 되고, 문화가 되고, 방향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날이 올 때, 우리는 비로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캘리포니아는 이름만 거룩한 땅이 아니라, 거룩을 살아내는 사람들이 사는 땅이라고.


“아니, 가톨릭에서 기원이 된 지명 가지고 뭘 그리 신앙적으로 확대 해석하고 그러십니까?” 그렇게 꼬투리를 잡으려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내가 묻고 싶다. 가톨릭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개신교에서만 구세주이고 가톨릭교회는  다른 구세주를 모시고 삽니까?  


조명환 목사(크리스천 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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