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던지는 자의 실로암] 사사시대는 이상 사회인가 무정부 상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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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마일에 이르는 요세미티 계곡이나 킹스 캐년의 절경을 보면, 마치 자연 속에 펼쳐진 천상의 신비를 마주한 듯합니다. 캘리포니아를 떠나 밤새 달려 도착한 그랜드 캐년에서 바라본 수백 마일의 거대한 파노라마는 우리의 언어로 다 담아낼 수 없는 장관입니다. 엔젤스 랜딩 위에서 내려다본 자이언 캐년의 절벽, 브라이스 캐년 사이를 걸으며 마주한 수많은 바위 탑, 물길에 의해 조각된 앤틸롭 캐년의 정교함은 지워지지 않는 인상으로 남습니다.
성경 속에도 이와 같은 ‘신성한’ 계곡이 있습니다. 출애굽에서 예수에 이르는 인류 역사 속에는 가장 깊고 정교한 신비의 계곡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종 모세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 사이에 놓인 깊은 계시의 계곡이라 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 해방과 가나안 정착, 다윗 왕권의 확립과 부흥, 솔로몬 성전의 건축과 파괴, 스룹바벨 성전의 건립과 제2 성전 시대, 그리고 예수에 이르기까지, 약 1,500년에 걸친 영성의 거대한 계곡이 이어집니다. 1세기 이후 계시가 더 이상 더해지지 않는다고 보는 이유는, 예수 자신이 계시의 완성이자 궁극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 원대한 계곡 속에서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덜 주목하는 구간이 바로 여호수아 시대와 사사시대입니다. 여호수아 시대는 가나안 정복과 정착의 시기였고, 사사시대는 하나님이 직접 왕으로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때였습니다. 이 시기에는 군대도, 세금도, 중앙 정부도 없는 상태에서, 12지파가 느슨한 연맹을 이루며 살았습니다. 어떤 이는 이를 목가적 이상 사회로 보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무정부 상태로 평가합니다. 여호수아에서 마지막 사사 사무엘에 이르는 약 400년 동안을 우리는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할까요?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사사시대를 단순한 무정부 상태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고대 유대주의』라는 저술을 통해, 이 시기를 “여호와 신앙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 사회”로 이해했습니다. 또한 이 공동체는 카리스마적 지도자인 사사(judges)에 의해 인도된, 종교와 사회가 결합된 구조라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20세기 전반, 마르틴 노트(Martin Noth)의 『이스라엘 12지파 체제』에서 더 구체화 됩니다. 노트는 사사시대의 이스라엘이 그리스의 도시국가 안보동맹인 “앰픽티오니”(amphictyony)에 가까운 종교적 연합체로 설명합니다. 이 견해는 게르하르트 폰 라드에 의해 발전되고, 월터 브루그만에 의해 비판적으로 수용됩니다.
노트의 견해는 고고학, 성서학과 역사학적 관점에서 거센 비판을 받았지만, 월터 브루그만은 그의 앰픽티오니 개념을 재해석하여, 하나님이 왕으로 통치하시는 왕정 이전 시대에 “대안 공동체”가 존재했다고 보았습니다. 비록 과학적ㆍ역사적 증거로 완전히 입증된 것은 아니지만, 브루그만은 이것이 이집트나 가나안의 억압적 도시국가와는 다른 자비로운 사회질서였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시각으로 사사시대를 보면, ‘실로’(Shiloh)에 있는 성막과 법궤를 중심으로 절기마다 모인 공동체, 여호와의 임재를 카리스마적 지도력으로 드러낸 예언자와 사사들, 그리고 하나님이 이끄는 거룩한 전쟁을 통해 결속된 지파 연합체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브루그만은 이러한 신학적 상상력과 서사가 사무엘과 다윗의 시대로 이어진다고 봅니다.
물론 사사시대의 후반에는 무정부적 혼돈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드보라와 바락, 기드온, 입다, 삼손과 같은 인물들의 전투적 신앙은 분명한 빛을 발합니다. 레위인의 타락과 우상 숭배가 겹치며 결국 왕정의 필요성이 대두됩니다. 사사시대 말기를 배경으로 한 룻기는 어지러운 시대에도 여전히 율법에 따르는 “친족 구속자”의 역할이 살아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잃어버린 토지를 되찾고, 끊어진 혈연을 회복시키는 자비로운 전통이 살아있었기에 보아스가 룻의 보호자가 됩니다. 다윗의 증조모인 룻의 이야기는 어두운 시대의 빛이 되어, 다윗 왕조의 여명을 엿보게 합니다. 무정부적 혼돈 속에서도 새 시대의 서사는 조용히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목사, KCMUSA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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