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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목일기] '그니까, 모든 게 다 관계 맺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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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6-03-19 | 조회조회수 : 1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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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de, it's all about relationships."(이봐, 결국 모든 건 관계 문제라고.)


수년 전 원목 레지던트 훈련을 받을 때, 저의 멘토였던 CPE 수퍼바이저가 입버릇처럼 해주던 말입니다. 수많은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원목 훈련은 '관계 맺기(Making relationships)'와 그 속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결해야 하는가에 가히 80~90%의 에너지를 쏟습니다.


훈련 중에 존 가트만(John Gottman) 박사의 저서 『Relationship Cure (관계 치유)』를 읽으며 큰 도움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가트만 박사는 부부간의 갈등, 삐걱거리는 우정, 직장 동료와의 마찰 등이 사실은 각자가 가진 '대화 패턴'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온다고 진단합니다. 즉, 자신과 상대방의 패턴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대응을 하면 관계 회복에 큰 전기가 마련된다는 것이죠.


한 번은 병원에서 중년의 백인 간호사와 가벼운 언쟁이 있었습니다. 위중한 환자의 요청으로 영적인 위로와 소망을 담아 간절히 기도해 주었는데, 응급의료팀 리더였던 그녀가 제 기도를 곁듣고는 마음이 불편했던 모양입니다. 나중에 로비에서 마주친 그녀는 왜 환자에게 죄 고백의 시간을 갖지 않은 채 하나님의 선하심과 위로만을 전했느냐며, 제가 '복음적이지 않다'고 따지듯 물었습니다.


그녀의 눈에는 참회 없는 용서가 너무 쉬워 보였을지 모릅니다. 일견 날카로운 신학적 질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생사를 다투는 급박한 상황에서 영적 돌봄이 간절한 환자에게 죄 고백을 강요하는 것은 목회적으로 과도할 뿐 아니라, 이미 기도를 요청하는 환자의 마음은 충분히 겸비해진 상태였다고 저는 판단했습니다. 게다가 병원이라는 전문 조직에서 각자의 영역은 존중받아야 마땅합니다. 제가 의료 절차에 관여하지 않듯 원목의 영적 판단 역시 존중받는 것이 암묵적 합의인데, 그녀는 왜 자신의 비전문 분야인 영적 돌봄에 대해 그토록 서슬 퍼런 비난을 던졌던 것일까요?


그날 이후 그녀를 마주칠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고, 그녀 역시 저를 피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그러던 중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중환자실(ICU) 복도에서 환자 기록을 하고 있는데 마침 그녀가 혼자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먼저 말을 걸었습니다.


"헤이, 잘 지냈어?"

"헤이, 너도 잘 지내지?"

"응, 아주 잘 지내. 그런데 잠깐 시간 돼? 내가 뭐 좀 도움을 구하고 싶은 게 있어서..."


도움을 청한다는 말에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귀를 기울였습니다.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기대감이 경계심을 무너뜨린 것이죠. 저는 병원 생활이 베테랑인 그녀에게 병원 재정 악화로 인한 인원 감축 소식을 전하며 의견을 물었습니다.


그녀는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병원 사정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자신도 예전 병원에서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했던 아픈 경험을 나누며, "모든 것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으니 그분을 믿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자"고 오히려 저를 격려해 주었습니다. 저는 진심을 담아 "아멘"으로 화답했습니다. 꼬였던 실타래가 술술 풀리는 순간이었습니다.


대화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제가 칼빈 신대원 출신 목사라는 말에 그녀는 자기 형부도 장로교 목사라며 반가워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녀는 십수 년 전 아주 어린 자녀를 병으로 잃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버텨온 절절한 가정사를 털어놓았습니다. 그녀의 엄격한 신앙적 감수성은 사실 그녀가 통과해온 삶의 아픔과 깊이 연결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 대화 이후, 우리 사이의 공기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제 그녀는 멀리서도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줍니다. 그녀의 동료들에게도 저에 대해 좋게 이야기를 해주었는지, 늘 바빠서 눈길 한 번 안 주고 지나치던 의료진들이 이제는 저를 보면 먼저 미소를 지어줍니다.


그때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역시 모든 게 다 관계 맺기입니다! 관계가 맺어지고 서로의 사정을 알게 될 때, 우리는 오해와 거부감 대신 깊은 이해와 친밀감에 도달합니다.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 '관계 맺기'가 답이었습니다.


신동수 목사(병원/호스피스 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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