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환의 쓴소리 단소리] 장례식에서 받은 꽃다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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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예배를 마치고 나오는데 교회 측에서 나가는 조문객들에게 작은 꽃다발 하나씩을 건네 주었다. 아마도 찾아온 분들에게 돌아가신 분이 세상에 남기고 싶은 메시지인 듯 느껴졌다.
“오늘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은 인생, 꽃처럼 예쁘고 향기롭게 살아가세요.”
그렇게 생각하니 그 꽃다발이 너무도 황송하게 느껴졌다. 시들지 말라고 차 뒷자리에 놓고 신문지로 그늘을 만들어 가며 집까지 모셔왔다. 그리고 지금 우리 집 식탁 위에 올려놓고 그 꽃을 바라보고 있다.
장례식 조문객에게 꽃다발 선물이라니! 이건 신선한 충격이었다. 미국에 살면서 수많은 창립예배, 임직예배, 장례예배를 다녀봤지만 목욕 타올이나 머그 컵 말고 꽃다발을 받아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신선함을 넘어 기분 좋은 충격이었다.
미주평안교회 장으로 지난주 열린 고 송순애 사모님의 장례예배에서는 또 하나의 신선한 장면이 있었다. 상주인 남편 송정명 목사님이 직접 조사에 나서 아내의 평생을 소상하게 회고하고 추모하는 모습이었다.
남편이나 아내가 먼저 떠나면 상주는 그저 묵묵히 조문객들과 눈인사만 나누는 것이 전통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오래된 전통이 깨지는 현장을 목격한 것이다. 사실 돌아가신 분의 인생 여정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배우자 말고 또 누가 있겠는가. 그래서 배우자의 마지막 추모의 언어야말로 고인의 가장 진솔한 자서전이요, 감동의 다큐멘터리가 아니겠는가.
예전에 송 목사님을 만났을 때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아내가 조 목사님 ‘쓴소리 단소리’를 제일 좋아합니다. 조 목사님 팬이에요.”
그 한마디 말 때문에 나는 며칠 동안 행복한 인생을 살았던 기억이 있다. 그런 분이 나를 위해 꽃을 남기고 가셨다고 생각하니 그 꽃다발이 더욱 마음 깊이 다가왔다. 그래, 남은 인생 나도 꽃처럼 살아보자.
신선한 감동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송 목사님의 추모사에서 소개된 사모님의 일생이 마치 한 편의 단편영화처럼 펼쳐졌다.
무엇보다 세 딸을 꿋꿋하게 키워낸 장한 어머니였다. 목회에 바쁜 남편 대신 육상 스포츠를 좋아하는 딸들을 차에 태워 이곳저곳 안 다닌 곳이 없었다고 한다. 이 땅에 이민 와 살아온 한국 어머니들의 공통된 DNA가 바로 그것이다. 자식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때로는 수모도 마다하지 않고, 때로는 체면도 내려놓으며 자식의 앞날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내던 용감한 어머니들. 사모님도 바로 그런 어머니였다.
게다가 지금 섬기던 교회에 처음 부임했을 때 월급이 1,500달러 정도였다고 한다. 집 모기지 페이먼트 1,200달러를 내고 나면 마음 놓고 마켓에 가기도 어려운 형편이었다. 그래서 몸에 밴 검소함이 평생 습관이 되었다. 브랜드 옷 대신 헌 옷을 파는 ‘굿윌’에서 쇼핑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졌고, 넓은 식탁 냅킨을 반으로 잘라 사용하는 습관도 그 때부터였다.
그렇다고 구두쇠처럼 살지는 않으셨다. 선교지에 헌금을 보내는 일, 선교사들을 후원하는 일에는 베벌리힐스 부자처럼 넉넉한 마음을 쓰며 살아오셨다.
사모님은 무엇보다 성가대에서 찬양하기를 좋아하셨다고 한다. 미주평안교회 성가대 자리가 그분의 한결같은 섬김의 자리였다. 암 투병으로 키모 치료를 정기적으로 받다 보면 의지가 약해지고 기력도 따라주지 않아 하던 일을 쉽게 포기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사모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그 자리를 지켜냈다고 한다.
이날 예배에서는 이화여고 남가주 동문 합창단이 조가를 불렀다. 사모님이 교회 성가대와 함께 봉사했던 또 하나의 자리였다. 나는 그날 동문 합창단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안 가면 천국에서 어찌 볼까?” 아마 그런 마음으로 단원들이 총동원된 것 같았다.
이날 설교에 나선 박병열 목사님은 사모님과의 마지막 작별의 순간을 회고하며 이런 말을 전했다. “당뇨가 있는 우리 원로 목사님, 내가 먼저 가면 챙겨줄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담임 목사님이 잘 챙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말을 전하면서 박 목사님도 눈물을 훔쳤고, 나 역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좋은 아내, 사랑스러운 어머니, 끝까지 섬김의 자리를 지켰던 아름다운 성도. 그러고 보니 송순애 사모님은 ‘축복의 삼박자’ 인생을 살다가 단아하고 아름다운 발자취를 남기고 세상을 떠나신 것이다.
인생은 결국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매한가지다. 화려하게 봄날을 알리는 목련도 얼마나 서두르는지, 피었다 하면 바람에 꽃잎을 흩날리며 이내 사라지고 만다. 주님이 부르시면 우리도 그래야 한다. 그런데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송순애 사모님, 이제 더 이상 키모 치료받지 않아도 되는 주님 나라에서 한평생 섬기던 그 모습 그대로 찬양하시며 영원한 안식을 누리소서.
조명환 목사(크리스천 위클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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