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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마디에 은혜를 새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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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5-01-03 | 조회조회수 : 5,97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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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인류 역사상 최초의 원자폭탄이 떨어졌습니다. 원자폭탄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원자폭탄이 떨어진 곳을 중심으로 수 킬로미터 내 모든 것이 폐허가 되었고, 14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로부터 사흘 후, 나가사키에 또 하나의 원자폭탄이 떨어졌고, 일본의 항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습니다. 


비록 전쟁은 끝났지만, 고통마저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생존자들은 방사능 후유증으로 오랜 세월 시달렸으며, 원자폭탄이 떨어진 히로시마 시내는 모든 것이 뜨거운 열에 녹아내린 채 폐허가 되었습니다. 도무지 생명이 살아날 수 없을 것 같았던 척박한 땅에도 시간이 지나면서 생명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가장 먼저 나온 식물이 대나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히로시마의 원폭 피해 지대에서 자란 대나무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자연의 회복력과 인간의 재건 의지를 상기시키는 희망과 회복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 희망의 크기만큼이나 대나무는 높이 자랍니다. 늘 푸르고 좌우로 잘 휘지도 않으면서 곧게 뻗으며 하늘 높이 자라는 대나무는 올곧음과 강인함을 상징합니다. 가늘고 속이 빈 대나무가 수십 미터 높이까지 자랄 수 있는 이유는 뿌리를 단단하게 내리기 때문이고, 중간마다 마디를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죽귀유절(竹貴有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나무는 마디 있음을 귀히 여긴다’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마디는 중간에 성장이 멈추었음을 의미하고, 모양도 반듯하지 않기에 높이 솟아오르는 대나무에는 거추장스럽게 여겨질 때도 있지만, 그 마디가 있으므로 대나무가 높이 자랄 수 있기에 마디 있음을 귀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마디가 생깁니다. 고난을 통과하면서 마음에 생채기가 나기도 하고 굳은살이 박이기도 합니다. 슬픔과 아픔이 새겨진 상처가 마디가 되어 치열하게 살아온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기도 합니다. 큰 재해나 정치적 사건이 역사의 마디가 되기도 하고, 개인적인 시련과 도전이 우리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기도 합니다. 마디 그 자체로는 고통스럽고 불완전하게 보일 수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이 우리 삶의 성장과 성숙을 가능하게 한 요소임을 깨닫게 됩니다. 대나무가 마디를 통해 더욱 견고해지듯이, 우리 역시 삶의 마디를 통해 더 깊고 단단한 사람이 되어갑니다. 


인생에만 마디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세월에도 마디가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유유히 흐르는 세월을 24개로 나누면서 ‘절기’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절기’는 ‘마디 절(節)’과 ‘숨, 기운 기(氣)’가 합쳐진 말로 자연의 숨결에 마디가 생겼음을 뜻합니다. 늘 똑같이 지나는 세월이지만, 절기에 따라 봄이 오고, 비가 내리고, 더위가 왔다가 가고, 서리와 눈이 내리고, 어김없이 추위가 찾아오는 것을 보면서 세월의 마디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강물처럼 흐르는 시간속에서 하루가 켜켜이 쌓여 한 달이라는 작은 마디를 이루고, 한 달을 열두 번 모으면 일 년이라는 커다란 마디가 생겨납니다. ‘마디 있음을 귀히 여긴다’라는 말이 대나무만이 아니라 시간의 마디에도 적용되는 이유는 시간의 마디에는 과거에 대한 반성과 미래에 대한 다짐이 있고, 그 사이에서 조금씩 발전하는 오늘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2024년이라는 한 해를 마무리하며 세월의 마디를 돌아볼 때입니다. 세월의 마디에 새겨진 은혜를 기억할 때입니다. 그 마디 속에는 우리가 걸어온 삶의 발자취와 인생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소망의 이야기가 녹아 있고, 감사와 사랑으로 빚어낸 따뜻한 이야기가 스며 있습니다. 


올 한 해, 우리는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크게 체험했고, 세상의 비정함을 감사로 녹이며 살았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았기에 크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랄 수 있었습니다. 이제 세월의 마디에 은혜를 새기며 한 해를 마무리하고 2025년이라는 새해를 맞습니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시간의 마디를 더욱 귀히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시간의 마디마다 하나님의 은혜가 새겨져 있음을 기억하고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고난의 순간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성숙을 이루어 가시기를 기대합니다. 또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반성과 다짐을 통해 더 나은 내일을 준비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새해에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기쁨과 감사가 충만한 삶을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이창민 목사(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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