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국 목사의 음악목회 이야기] 예레미야의 슬픈 노래(Lament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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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여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애 3:22).
사랑하는 사람이 말기의 환자라는 것을 우리가 미리 안다고 해도 막상 죽음의 순간은 여전히 우리를 압도하여 억누릅니다. 통상적으로 이 애가의 저자라고 생각되는 예레미야는 수년 동안 자신의 동족의 다가올 운명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마침내 멸망이 예루살렘에게 닥쳐왔을 때 슬피 울었습니다. 그는 이 짧은 책을 통하여 그의 슬픔을 드러내고 히브리어로 어찌하여(How?)라는 뜻을 가진 맨 처음 단어로 그 슬픔의 기조를 정하였습니다. 이 표현은 책의 명칭이 되었습니다.
첫 질문인 “어찌하여”(How?)는 저자와 함께 우리가 예루살렘의 멸망에 관하여 깊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어찌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그렇게 멀리 떠나 헤맸단 말인가? 흥미롭게도 저자는 예루살렘의 멸망이 명백하였기 때문에 그 이유를 결코 이상히 여기지는 않았습니다. 수년 동안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이 우상 숭배와 사악함을 회개치 않으면 그러한 운명이 그들에게 닥칠 것임을 예언하여왔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그 성이 무너지기 직전까지 그들의 회개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파괴된 예루살렘성을 바라보며 “어찌하여”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어찌하여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사악함에 대하여 언젠가는 심판하실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었었단 말입니까? 어찌하여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비록 그의 백성이 고통스러운 징벌을 받게 되더라도 그의 말씀을 지키실 것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없었단 말입니까?
잔학무도한 예루살렘의 비극적 심각성은 저자로 하여금 이 대단했던 성의 소멸에 관한 훌륭한 애가를 쓰도록 충격을 주었습니다. 다섯 장 중에 네 장은 각 행의 첫 글자가 히브리 알파벳의 연속적인 글자를 따르는 아크로스틱 형식으로 쓰여졌습니다. 이 잘 짜여진 시에서 저자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경고도 포함시켰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징계는 공의로운 것(3:34-42)임을 단언하였지만 또한 하나님께 긍휼을 호소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대한 저자의 호소는 그의 불변의 성품과 영원한 주권에 대한 찬양과 경배로 시작하는 것이 어울리고 적절합니다(5:19).
예배로서의 애가
구약 시대의 예배자들은 종종 죄에 대한 그들의 슬픔을 애가를 통하여 나타냈습니다. 애가는 성경의 시가서 특히 욥과 시편, 그리고 때로는 역사서에서도 빈번하게 나타납니다. 대부분의 애가는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되어있습니다. (1) 기원(invocation)(애 5:1-17참조), (2) 애통하는 자의 슬픔(애 1:1-10 참조), (3) 구원을 위한 탄원(애 5:21 참조). 그러므로 애가는 하나님께서 애통하는 사람들의 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을 구원하여주실 것이라는 확신으로 인하여 슬픔이 누그러지게 되기 때문에 예배의 표현이 되는 것입니다. 성서의 애가는 종종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를 추모하는 예배의식에서 낭독되고 불렸습니다.
애가서로부터 얻는 예배 Insight
• 애가서는 주의 깊게 공들여 쓰여진 시가이기 때문에 우리의 예배를 예술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하도록 우리에게 영감을 줍니다.
• 예배에서의 고백과 회개는 다른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립니다(1:18-19).
• 하나님의 거룩성은 타락한 우리의 성정과 너무나 대조적이어서 우리가 마땅한 징벌을 받을 때 그는 우리의 원수(enemy)로 나타나십니다(2:4-5).
• 예배는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성실하심을 기억하는 것을 포함합니다(3:22-23).
• 어렵고 낮고 천한 경험은 하나님과 우리 자신에 대한 성숙한 견해를 갖도록 도와줍니다(3:26-30).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
• 우리를 완전한 파멸에서 지켜주시는 그의 사랑과 성실하심(3:22-23).
• 우리가 징벌을 받는 동안에도 우리의 울부짖음에 주의하고 계심(3:55-57).
• 우리의 죄에 대하여 징벌이 요구될 수 있다 할지라도 우리의 의에 대하여 가지시는 그분의 관심(5:15-16).
찬양과 경배 5분 큐티
하나님의 사랑은 무궁하며 확실합니다
얘 3:22-23 - 세상의 모든 폭력과 불의를 볼 때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 모두를 그냥 없애버리지 않을까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애가의 저자는 하나님의 인내의 이유를 이렇게 노래합니다. "그의 사랑이 철저하고 완전한 파멸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신다." 우리의 매일의 삶이 은혜의 선물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기회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심판하기 위하여 아직도 오시지 않고 있는 같은 이유입니다(벧후 3:9). 이 선물을 생각하며 그에게 예배하며 그의 훈계의 멍에에 순종합시다.
긍휼의 주님, 우리에게 주시는 매일의 삶을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사랑은 무궁하고 확실하기에 비록 당신께서 우리를 징계하실 때에도 당신의 백성에게 향하신 노하심은 영원히 계속되지 않을 것을 알며 우리가 위로를 누립니다. 아멘.
주님은 영원히 다스리십니다
애 5:19-21 - 헨델의 할렐루야 코러스의 정점은 주께서 영원토록 다스리실 것을 선포합니다. 이 위대한 진리는 이 애가의 저자와 함께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의 영원한 위로와 소망의 원천입니다. 하나님은 왕이실 뿐만 아니고 그는 영원한 왕이시며 그의 완전한 성품은 결코 변함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을 회복시키고 그들에게 또다시 기쁨을 주실 그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완전한 공의로 영원히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합니다.
영원하신 왕이시여, 당신은 영원토록 통치하십니다. 당신은 우주의 주권자이시기에 언젠가는 만물이 당신의 뜻을 따를 것입니다. 때로 우리가 타락한다고 하더라도 당신께 돌아오도록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우리가 당신 안에 갖고 있는 소망을 인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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