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목일기] 사람들은 임종의 순간에도 정치에 관심을 가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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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있는 동안 마침 선거 기간이어서인지 사람들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정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누구를 지지하는지, 민주당이냐 국민의힘이냐를 두고 어느 정당이 옳은지, 이번 선거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뜨거운 대화들이 이어졌습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도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과 참여 의식이 매우 높은 나라입니다. 'K-민주주의' 라고도 하더군요. 이러한 국민의 정치 참여는 그 자체로 건강한 면이 있습니다. 정치에 무관심한 사회보다 공공선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사회가 더 바람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정치 참여 (Political Engagement) 와 정치 동일시 (Political Identification) 를 구분해야 합니다. 어느 정당의 정치인을 지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의 정견이 나의 의견을 반영할 때 우리는 투표로써 정치에 참여합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당의 정치인만이 곧 정의이고, 그 정치인이 유일한 희망이며, 그 정치인이 패배하면 세상이 끝난 것처럼 느끼는 것을 '정치 동일시'라 합니다. 이때부터 정치 참여는 진영 논리와 파당, 심지어 맹목적 추종이라는 유사신앙의 영역으로 들어갑니다.
기독교는 초대교회 때부터 이러한 정치 동일시와 맹목적 추종을 거부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로마 황제를 신으로 절대화하지 않았고, 그 어떤 나라나 의회, 정당도 하나님 나라와 동일시하지 않았습니다. 종교개혁 시대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옳게 여기고 기도하며 축복해 왔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어떤 리더나 정당, 정치 체제도 곧 하나님 나라 자체일 수는 없음을 분명히 해왔습니다. 물론 역사상 교회가 황제나 독재자, 무소불위의 정치 세력에 휘둘려 굴복하며 어용 기도와 축복을 해주던 부끄러운 때가 없지 않았지만, 후대에 이는 반드시 회개해야 할 과오로 남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한국 사람 중에는 참 '정치고관여층' 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정치인이 당선되지 않으면 나라가 금방이라도 망할 것처럼 이야기하더군요. 반대로 자신이 반대하는 정치인이 당선되면 현 정부가 큰 곤경을 당할 것이라며, 두고 보라고, 자기 말대로 될 것이라 확신에 차서 말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 확신과 열정 때문에 이웃끼리 싸우고, 가족끼리 다투고, 오랜 친구와도 관계가 끊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심지어 한국 교회의 다수는 극단적으로 정치화되어 특정 정치 세력의 전위대처럼 움직이는 듯 보여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정치는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정치적 결정은 우리의 일상과 미래에 실제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시민으로서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것은 의무이자 권리이기에 분명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정치에 모든 것을 걸고 종교적으로 따르는 것은 정신 건강에도, 영혼의 건강에도 결코 좋지 않습니다.
저는 병원의 중환자실 침상 곁에서, 그리고 죽어가는 수많은 호스피스 환자들과 마지막 시간을 함께하며 정치에 대한 또 다른 진실을 마주하곤 합니다. 임종 직전의 환자가 자신의 지지 정당이나, 자기가 목숨 걸고 지지했던 정치인을 붙들고 평안을 얻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삐- 삐- 울리는 바이탈 모니터 소리만 가득한 병실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이번에 국회의원 누가 됐어?" 하고 그것을 확인하며 평안히 눈을 감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습니다. 평생을 특정 정당의 열렬한 지지자로 살았던 이들조차 마지막 순간엔 서랍 속에 넣어둔 당원증이나 정치 뉴스를 찾지 않습니다.
대신 그들의 입술에서 나오는 조용한 고백들은 전혀 다른 곳을 향합니다. 산소마스크 너머로 겨우 뱉어내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들은 그저 가족을 찾습니다. 자식이 민주당을 지지하든 공화당을 지지하든, 혹은 트럼프를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그저 가족이 곁에 함께 있다는 사실 자체에 위로를 받고 기뻐합니다. 지지하는 정당이 다르고 정치색이 틀려 멀어졌던 친구가 찾아와 줄 때 감사해하고, 미안했다고, 용서해달라고 눈물 흘립니다.
사람들은 죽기 전에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말을 남기고 떠나는데, 그것은 정치적 신념이나 이념보다 훨씬 더 깊고 본질적인 것들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정치를 지망하던 한 사람이 20대 젊은 시절에는 끓어오르는 열정으로 "주님, 이 세상을 바꾸게 해주십시오" 라고 기도했답니다. 그러다 조금 나이가 들었을 때는 "주님, 이 나라를 바꾸게 해주십시오" 라고 기도가 바뀌었지요. 더 나이가 들어 삶의 무게를 알게 되어서는 "주님, 나의 지역사회와 공동체를 바꾸게 해주십시오" 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숨을 거두기 직전, 노년의 그는 침상에서 마침내 이런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주님, 이제 제 영혼을 구원해 주시옵소서!"
생각해 보면 인생은 점점 더 무엇이 진짜 중요한지를 배워가는 과정인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젊고 힘이 있을 때는 내 손으로 세상을 바꾸고 역사를 움직일 수 있을 것처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나 숨이 가빠지고 인생의 끝에 가까워질수록 겸손하게 깨닫게 됩니다. 세상을 구원하는 분은 내가 아니라, 그리고 우리가 그토록 메시아처럼 바라보던 정치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정치에 참여하되 정치를 숭배하지 않습니다. 나라를 사랑하되 하나님 나라를 더 사랑합니다. 정당을 지지할 수는 있지만, 그 정당에 내 영혼의 소망을 통째로 두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희망은 백악관에도, 청와대에도, 국회에도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유일한 소망은 오직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께 있습니다.
인생의 가장 엄숙한 임종의 순간, 사람들은 자신이 지지했던 정치인의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대신 일평생 자신을 끝까지 사랑하셨고 이제 곧 마주하게 될 자신의 창조주와 구원자의 이름을 나지막이 부를 뿐입니다.
신동수 목사(병원/호스피스 원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