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택 교수의 문학 칼럼] 『어린 왕자』 2.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상상력을 잃어버린 어른들의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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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상상력을 잃어버렸다. 『어린 왕자』는 한 장의 그림에서 시작된다. 어린 화자는 보아뱀이 코끼리를 삼킨 그림을 그린다. 그러나 어른들은 그것을 보고 “모자”라고 말한다. 아이는 세계의 안쪽을 보지만, 어른은 표면만 본다. 이 짧은 장면은 『어린 왕자』 전체를 여는 문이자, 생텍쥐페리가 현대 문명에 던지는 가장 날카로운 질문이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무엇을 보지 못하게 되었는가?
합리성에 맹점이 있다. 어른들의 문제는 지식이 없다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그들은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숫자, 가격, 순위, 성적, 소유, 생산성, 효율. 그들은 세계를 설명할 수는 있지만, 경이로워하지 못한다. 꽃 한 송이를 보면 이름과 분류를 말하고, 별을 보면 거리와 질량을 계산한다. 그러나 그 꽃이 왜 누군가에게 유일한 사랑인지, 그 별이 왜 한 아이에게 집이 되는지 묻지 않는다. 근대적 합리성은 세계를 밝힌 면이 있지만, 때로는 세계의 신비를 보지 못한다.
어린 왕자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성과주의 교육에 문제가 있다. 아이들은 질문하기보다 정답을 맞히는 법을 배운다. 상상력은 시험지 밖으로 밀려나고, 침묵과 관찰은 비효율로 간주된다. 그러나 인간은 숫자로만 자라지 않는다. 한 사람의 영혼은 성적표보다 깊고, 한 아이의 그림은 평가서보다 넓다. 보아뱀 속의 코끼리를 보지 못하는 문명은 결국 사람 속의 슬픔과 가능성도 보지 못한다.
상상력은 내면을 보는 시선이다. 생텍쥐페리가 말하는 상상력은 현실 도피가 아니다. 그것은 현실의 내면 세계를 보는 능력이다. 모자처럼 보이는 것 안에 삼켜진 코끼리가 있을 수 있음을 아는 감각, 평범한 얼굴 뒤에 숨은 고통과 꿈을 헤아리는 시선이다. 그래서 『어린 왕자』의 첫 장면은 문학적 유희가 아니라 영적 진단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반드시 눈이 점점 멀어지는 일이 아니다. 성숙이란 보이지 않는 것을 무시하는 능력이 아니라, 더 깊이 보는 통찰이어야 한다.
눈을 감아도 볼 수 있다. 기독교 신앙은 이 보이지 않는 세계를 향한 시선에서 시작한다. 히브리서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한다. 믿음은 허상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는 방식으로 세계를 다시 보는 일이다. 예수님은 들의 백합화에서 하나님의 돌보심을 보셨고, 작은 겨자씨에서 하나님 나라를 보셨다. 오늘 나의 눈이 모자만 보는 눈이 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다시 아이의 경이와 믿음의 시력을 열어 주실 때, 우리는 보이는 세계의 실존 아래 숨겨진 하나님의 은혜를 볼 수 있다. 눈물로 천국을 소유할 수 있다. <계속>
임윤택 교수(선교신학자, 미주 장신대학교 선교학 박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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