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던지는 자의 실로암] 국제정치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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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세계가 지구촌으로 느껴진 적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트럼프의 취임 이후 국제사회의 변동은 가깝게는 캐나다, 멕시코와 파나마를 넘어, 멀리는 유럽과 중동과 아시아에 이르고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과 무역전쟁에 들어갔고, 중동에 집결된 미국의 군사력은 후티 반군에 대한 공습에 이어, 친중 국가 이란에 대한 공격의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2025년에 이르러 ‘하나님은 우리 개인을 구원하신다’는 명제와 함께 ‘하나님은 국제정치에 관여하신다’는 명제를 동시에 떠올립니다. 복음주의 진영은 공공신학이나 정치신학을 통하여 이미 교회의 사회적 책임이나 공공성에 대한 성찰을 넓혀 왔습니다. 그러나 모든 대륙이 정치ㆍ경제적으로 밀접히 연결되어 연동하는 상황에서 우리 묵상의 범주를 국제적으로 넓혀야 합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광대하고 거시적인 활동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열방의 하나님이시며, 국제정치에 개입하십니다. 이는 대선지서의 기본적인 인식입니다. 다니엘은 이미 반복적으로 하나님의 국제정치에 대한 주권을 인정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를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사람들이 알게 하려 함이라”(단 4:17, 25, 32). 이사야 선지자도 선지 사역의 범주를 하나님의 백성으로부터 앗시리아, 바벨론과 페르시아까지 넓히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와 에스겔의 예언도 국제정치의 문제를 주요 관심사 중의 하나로 언급합니다.
12권의 소선지서에서도 국제정치는 하나님과 그 백성의 주요 관심사입니다. 국제정치에 대한 언급이 비교적 적은 소선지서는 호세아 정도입니다. 요나서와 나훔은 앗시리아의 수도 니느웨에 대한 엄중한 경고입니다. 오바댜는 에돔에 대한 중대한 경고를 전합니다. 아모스는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이지만, 주변 왕국에 대한 심판을 생략하지 않으며, 스바냐는 유다에 대한 예언으로서 열국에 대한 심판을 동시에 제공합니다. 하박국은 바벨론의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국제정치를 언급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의 국제정치에 대한 관심은 “열방의 평화”(peace among nations)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민족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전쟁을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며”(사 2:4, 미 4:3).
둘째로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사랑하여(요 3:16) “열방의 교제”(fellowship among nations)를 이루시는 때문입니다(사 19:24-25). 이 시대에 선민은 없으며, 나라와 민족들 모두 하나님의 사랑이 방사(放射)되어 도착하는 지점입니다. 하나님은 국제관계 속에서도 교제를 원하십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국제정치적 관심은 “열방의 정의”(justice among nations)로 귀결됩니다. 민족과 국가들 가운데 정의를 요구하는 하나님은 강대한 나라들의 부정의와 억압을 심판합니다.
넷째로 하나님이 국제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그가 모든 민족을 구원의 대상으로 삼으시기 때문입니다. “열방의 구원”(salvation among nations)을 도모하시는 하나님의 눈길은 세계로 열려있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마 28:19)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국제정치에 무관하실 수 없습니다.
열방의 평화, 교제, 정의와 구원은 결국 하나님 사랑의 국제정치적 차원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또한 현실의 국제정치를 판단하는 기준이며, 우리가 정치지도자와 외교관을 위하여 기도할 제목입니다. 미국과 대한민국이 국제정치에서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기를 소원합니다.
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 목사, KCMUSA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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