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국 목사의 음악목회 이야기] 찬양의 특성(Characteristics of Pra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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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의 특성(Characteristics of Praise)
(마일즈 먼로의 찬양과 경배의 목적과 능력 중에서, 번역 김영국)
찬양은 하나님을 첫째로 둡니다
찬양은 항상 우리의 주의를 우리 자신으로부터 하나님께로 돌리고 있습니다. 찬양은 자기 노래의 도취의 수렁에 빠져 헤매는 대신,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무엇을 하셨는가를 기억하는 것이며 그것를 다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자기 중심적인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의 첫 번째 생각은 항상 어떤 것이나 누군가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입니다.
찬양은 우리의 눈을 우리 자신에게서 하나님께로 돌립니다. 찬양은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의 장엄하심과 능력에 촛점을 맞추며 다른 사람들도 그리하도록 초대합니다. 우리 중심에서 바라보는 대신, 하나님의 얼굴을 보며 그의 경이로우심과 사랑과 긍훌하심에 대한 감사와 전적인 믿음을 다시금 확언하도록 우리의 눈과 마음을 들어올립니다.
본질적으로, 찬양은 우리들이나 이 세상의 우상들 대신에 하나님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입니다. 찬양은 그분이 누구이시며 그의 백성들과 어떻게 관련되는지를 축하하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과 회중들은 이런 일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너무 자기중심적이어서 찬양과 경배를 우리를 기분 좋게 하는 설교나 개인적인 사역같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순서나 일에 접근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준비단계 정도로 취급합니다. 슬프게도, 우리 모두는 너무 자주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존경과 감탄의 표현을, 마치 부차적인 것으로 중요하게 취급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러한 행위를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정말이지, 찬양과 경배가 우리의 예배의 모임에 중심적인 촛점이 아니라면 우리가 함께 모일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전통과 습관과 행사의 순서들을 “예배”라고 할지 모르지만, 만일 우리가 그분이 받으셔야 마땅한 찬양을 그분께 기꺼이 먼저 드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할 희망과 가능성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찬양은 하나님과의 사귐에서 나옵니다
정기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들은 주님이 너무 좋아서 그에 대하여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리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그와 가까워졌으며, 그에게서 그들이 바라던 모든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아시겠지만, 우리는 우리가 잘 모르는 어떤 사람에 대해서 자랑할 수 없으며, 적어도 그런 자랑은 진실하고 신실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찬양이 우리가 하나님에 관하여 아는 지식으로 시작할지라도, 결국은 우리 자신이 그분에 대해 경험하는 것으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찬양이 하찮은 일이나 의무 이상이 될 때 일어납니다.
우리는 찬양을 불러 일으키려고 너무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 안에서 자연적으로 부풀어 올라 나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리는 언제나 축복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여 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쁨이며 힘이며 위로와 평안입니다. 우리의 삶이 그분께 뿌리를 내리고 있기에 우리를 향한 그의 선하심은 우리의 생각과 입술에 계속해서 그의 이름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에서 흘러나오는 찬양은 진실하며 참됩니다. 우리의 경외의 말과 행위는 자연스럽게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납니다. 이것은 우리가 항상 찬양하고 싶은 기분일 것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사실, 이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고 지속되고 있을 때는, 찬양은 우리가 어떤 일을 겪고 있든 관계 없이 흘러나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느낌이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바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찬양은 의식적인 선택 (a conscious choice)입니다
찬양은 우리의 의지의 행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진정한 찬양을 드릴 때, 우리는 그를 칭송하고 인정하고 영광스럽게 할 것을 의식적으로 결심합니다. 그러므로 찬양은 우리의 감정이나 느낌만을 기반으로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찬양하기 위하여 기분이 아주 좋다거나 느낌이 괜찮아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많은 것들이 잘못된 것 처럼 보일지라도 찬양은 우리의 의도적인 선택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문제에 대한 해답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책임지고 계신 이상, 모든 일이 협력하여 선을 이룰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그 차이를 만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어떤 것들이 잘못되는데 상관없이 하나님과 그의 선하심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이 태도는 시42편에서 매우 명백합니다. 이 시편기자는 그의 삶이 그가 한때 커다란 기쁨으로 하나님의 전에 갔었던 것과 같지 않음을 한탄합니다. 그는 몸이 아픕니다. 지금은 음악과 웃음 대신 눈물이 그의 몫입니다. 그는 심지어 하나님의 임재를 느낀지 너무 오래되어 그가 자신을 잊었다고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이 상처받고 절망적인 사람은 의도적인 선택을 합니다. 그는 자신의 의지를 발휘하여 하나님과 그의 선하심을 기억하기를 선택하여 결정합니다.
자신의 불행과 슬픔에도 불구하고, 시편기자는 자신에게 말합니다. “내 영혼아, 왜 그리 속상해 하느냐? 소망이 전혀 없는 것 처럼 왜 삐치고 안달하는냐? 포기하지 말아라!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라. 비록 너는 포기하더라도 그는 너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그러니 모든 잘못된 것들에 대한 생각에만 빠져있지 말고, 옳바른 모든 것들에 관하여 생각하기 시작하여라. 하나님과 함께 즐겼던 교제를 기억하여라. 너에게 베푸셨던 그의 많은 은혜의 행위를 회상하여라. 지금 처한 어려운 상황이 이야기의 끝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여전히 나의 구원자이며 나의 하나님이신 그분을 찬양할 것이다.”
아마도 당신은 지금 무거운 짐을 지고 있을지 모릅니다. 당신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주님을 찬양하는 것을 중단하지 마세요. 지금이 바로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그를 찬양하기를 바라시는 때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당신을 대신하여 행동하기를 기다리고 계시지만, 당신이 그분이 거하실 자리, 그분이 당신과 함께 하실 당신의 삶의 제단을 마련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제단은 바로 찬양의 제단입니다.
필자 김영국 목사는 대광고와 한양대학을 졸업하고 1974년 미국으로 이주, Hope International University에서 신학과 음악목회를 공부하였고, 척 스윈돌 목사와 그의 음악목사이며 스승인 하워드 스티븐슨의 영향을 받았으며, 27년 동안 남가주 오렌지카운티의 큰빛한인교회에서 사역하였다. 지금은 저서와 번역, 그리고 웹사이트 매거진 “예배음악”(Worship Music)에서 음악목회에 관한 칼럼을 쓰면서 자신의 음악목회 경험과 사역을 나누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장로교출판사가 펴낸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음악목회 프로그램”,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찬양과 경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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