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던지는 자의 실로암] 하나님께서 북한을 이처럼 사랑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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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 3:16). 너무 유명한 성경 구절입니다. 노래로도 부르고 수백 번 들어서 저절로 외운 성구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아들 예수를 주셨다는 말씀은 죄악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세상, 곧 타락한 구조나 체제, 혹은 악한 질서를 성부께서 사랑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제국의 문명, 억압적 구조 그리고 양극화로 신음하는 세상을 사랑하셔서 성부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를 보내셨다는 의미입니다.
오래전 라틴 아메리카에서 발생한 억압적 체제의 문제를 다룬 토마스 행크스(Thomas Hanks)의 책명, “하나님이 제3세계를 이처럼 사랑하사”(God so loved the Third World)가 생각납니다. 해방신학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신학적으로 조명한 작품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제3 세계보다 북한에 더 적용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북한을 이처럼 사랑하사!”
최근에 재미한인기독선교재단(KCMUSA)에서는 “제1회 통일신학 논문 공모전”을 열고 원고를 마감했습니다. 처음으로 이민 사회에서 시도된 일이라, ‘기고자가 적거나 혹 없으면 어떻게 하지’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논문 기고자가 16명이나 되는 것을 보며 기쁨과 감동이 생겼습니다. 원고를 읽을 때, 하나님께서 북한을 이처럼 사랑하시는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도 북녘의 우리 동포를 포기하지 않은 분들이 적지 않아서 이처럼 평화통일의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 제가 ‘북한선교학교’에 참여하며 읽게 된 “예제원에서 회복됐슴다”라는 책은 ‘하나님께서 북한을 사랑하신다’는 명제를 더욱 확신하도록 만들었습니다. 1994년 소위 북한 사람들이 굶어 죽던 “고난의 행군”은 분명 재난입니다. 그러나 그 비극적 현장에서 생존을 위하여 탈북한 수십만의 사람은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중국 생활로 내몰렸습니다. 인신매매, 강제 결혼, 감금과 폭력, 불안 속의 노동과 출산, 육아를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내몰린 자매들이 중국에서 만난 헌신적인 선교사들의 복음 전파와 사랑의 감화는 오히려 재난을 축복으로 이끄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탈북자 구출과 양육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예수제자훈련원을 경험한 20여 명의 탈북민 형제, 자매의 간증입니다. 여기서 써 내려간 이야기는 아마 지구상에서 가장 어려운 사람들이 당했던 사연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한국과 미국의 가장 자유롭고 유복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이때, 지구의 다른 한구석에서는 인권의 사각지대, 폭력과 불법으로 부르짖는 사람의 아픔이 있다는 사실에 저도 모르게 울었습니다. 아픔을 당한 사람이 또한 나와 같은 언어와 혈통의 사람이라는 사실이 가슴 아팠습니다.
그러나 깊은 비극과 비참의 현장은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순간이 됩니다. 중국에서 천사처럼 나타나서 활동하는 선교사는 그들의 피난처입니다. 선교사는 돌베개를 베고 고난의 잠을 자는 이 시대의 야곱에게 임한 천국에 이르는 계단, 곧 벧엘의 하늘 사다리였습니다. 구겨진 인격과 상처, 잘못된 이념으로 파괴된 우리 혈육에게 하나님께서는 헌신된 선교사를 보내셨습니다.
독생자를 통하여 주신 복음과 사랑은 능력이 있습니다. 탈북민의 기록은 아픔의 기록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를 통하여 예수를 발견한 사람에게는 승리의 기록이 됩니다. 이미 각종 고난과 불합리와 우상화를 경험한 사람들이 만난 예수님은 새 생명 가운데서 남북이 하나 되는 연합의 과정을 보여줍니다. 통일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의 문제입니다. 이념이 아니라 복음의 문제입니다. 그 열매는 북한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사로잡힌 인격에 있습니다.
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 목사, KCMUSA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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