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 목사 목양칼럼] 그날이면 기억되는 메모리얼 데이의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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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마지막 월요일은 메모리얼 데이, 한국의 현충일과 같은 연방 공휴일로 군 복무 중 사망한 군인들을 추모하는 기념일입니다. 그 기간에 많은 사람이 휴가로 여행을 하기도 합니다. 17년(2008년) 전인 5월 24일은 토요일이었습니다. 그날 오후 필자의 친구 목사 딸의 결혼식에 기도순서를 부탁받았습니다.
오후 4시에 시작되는 예식을 위해 30분 전에 식장에 도착했을 때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곁에 자리한 친구 목사님이 그런 나를 보고서 “이 목사님 왜 그래요? 얼굴색이 하예요. 어디 아프신가요?” 기도순서가 되어 앞으로 걸어 나가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2살 아래 남동생의 전화였습니다. 필자의 초청으로 사고를 당하기 6년 전 늦은 나이에 이민을 왔습니다. 그동안 토요일 그 시간에 동생의 전화를 받아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특별한 사정이나 시간을 필요로 하는 급한 일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 기도를 마치고 자리를 옮겨 전화한 이유를 물어야 했습니다.
한국에서 대학 재학 중 이민을 온 아들이 UC Berkeley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CPA가 되어 큰 회사에 들어갔습니다. 자신들의 장래를 위해서 늦은 나이에 타국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부모님을 위로하고 기쁘시게 섬겨드리기 위해 직장인이 되고서 처음으로 연휴 기간에 효도하려다가 일을 당한 것입니다.
동생은 전화로 아들과 딸이 사는 북가주를 향하여 올라가는 중이라 내일 교회에 참석하지 못한다고 하기에 먼 길 조심해서 다녀오라는 말로 간단한 대화를 마쳤습니다. 그것이 세상에서 동생과의 마지막 대화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로부터 2시간 후 집에 도착했을 때 동행하던 동생 부인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북가주로 향하는 5 FWY에서 주행 중 뒷바퀴가 펑크나 차가 뒤집히는 사고로 자신만 깨어진 유리창 밖으로 간신히 기어 나와 전화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전화를 받자마자 2시간 거리인 사고지점을 향하여 급하게 달려갔습니다. 가는 동안 전화로 사망자와 부상자가 병원으로 이송되었다는 응급센터의 소식을 받았습니다.
베이커스필드 병원 응급실에 밤 9시에 도착했습니다. 온몸에 타박상을 입고 치료 중인 제수씨가 필자를 보자마자 한 말은 “남편은 어떻게 되었냐?"는 것이었습니다. 동생이 운명한 것을 2시간 전에 미리 알았지만 차마 그 상황에서 솔직하게 말을 해 줄 수가 없어서 다른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로부터 서너 시간 후 북가주에 사는 아들과 딸이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그들도 아빠의 사망 소식을 알고 있었지만, 엄마에게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밤은 정말로 지루하고 참담한 고통의 순간이었습니다. 위로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냥 지켜보고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때 제수씨가 입을 열었습니다.
“남편이 천국에 간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이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그동안 나를 사랑해줘서 고마웠습니다. 당신에 대한 좋은 기억을 잊지 않을게요. 우리 걱정은 하지 마세요! 당신을 주의 나라에서 다시 만나는 날까지 가정을 잘 지킬게요. 평안히 가세요.'” 그날이 얼마 전인 것 같은데 벌써 17년이 지났습니다.
그날 밤 먼저 간 동생을 향하여서 했던 말이 아직도 가슴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자네, 무엇이 급하다고 이런 모습으로 간단 말인가? 내가 먼저 가면 남아서 나의 일을 다 맡아 수고해줄 줄 알았는데 이게 웬일인가? 이렇게 슬프게 하고 말없이 가면 남은 우리는 어떻게 하란 말인가? 무정한 사람 같으니! 그토록 사랑하던 아들과 딸이 곧 가정을 이루면 손자녀들을 돌보아야 하는데...”
2025년 5월 19일
이상기 목사(평강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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