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던지는 자의 실로암] 복음 통일을 이미 실천하는 사람들
페이지 정보
본문
40여 년 전 청년 장교 시절, 저는 동해안 꼭대기의 통일전망대 앞에 있는 비무장지대의 초소에서 근무했습니다. 어떤 때는 수색 정찰을 위해 비무장지대의 숲을 누비고, 매복의 임무를 띠고 계곡에서 밤을 지새운 적도 있습니다. 비무장지대 내의 초소는 남자들만 사는 구역이라 좁은 곳의 콘트리트 지하에서 몇 개월을 지내면서 나라를 지켰습니다. 북쪽 금강산 자락과 나무꾼과 선녀의 전설이 얽힌 구선봉의 아름다움은 아직도 저의 가슴에 감동으로 남아있습니다.
2025년 5월, 북한선교학교의 과정으로 경기도 파주 북방에 있는 민통선 내 마을에 가서 1박 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통일을 위하여 기도하는 목회자가 해마루촌에 교회를 세웠는데, 그곳에서 선교팀 일행이 잠을 잤습니다. 해마루촌에는 아름다운 교회가 있었고, 그곳에는 선교적 비전 속에서 기도하는 선교사님의 식당이 있었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통일촌을 방문하며 북쪽에 날리는 인공기와 남쪽 대성동 마을에 날리는 태극기를 보았습니다.
제3 땅굴도 방문했습니다. 지하로 수백 미터를 걸어 들어가 땅굴의 마지막 부분까지 보았습니다. 북에서 남으로 암반을 파서 폭약을 설치한 구멍이 여러 개 보였고, 물은 북쪽으로 흐르도록 경사가 나 있었습니다. 도라전망대에 올라 망원경으로 멀리 개성을 살펴보았습니다. 북한에 고향을 둔 시민들이 이곳까지 올라와 눈물과 아픔의 마음을 품고 고향의 하늘을 바라본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전망대 2층에 있는 기억의 공간에는 수천 개의 그림과 글이 저장되어 있습니다. 그 넓은 공간의 벽에는 이산과 비극의 아픈 사연이 타일처럼 가득 붙어있습니다.
그곳은 기구한 역사의 한이 드러나 있는 장소입니다. 이를 치유하는 통일은 투쟁이 아니라 평화, 갈등이 아니라 치유와 화해, 그리고 억압이 아니라 자유의 통일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방문한 선교회 본부와 교회에서는 그러한 평화통일, 치유통일과 자유통일을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그 선교회를 통하여 구출된 사람들은 500명이 훨씬 넘습니다. 탈북 자매님들은 대부분 인신매매를 거쳐서 중국인에게 팔리고 아이를 낳아 기르다가 한국으로 들어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선교사님들의 도움으로 신앙으로 먼저 정착하고 한국에 뿌리를 내린 분들이 많습니다. 저는 탈북인이 가진 정보, “탈북한 후 선교사를 만나면 살 수 있다”라는 말이 지금의 한국교회가 가진 최고의 영광스러운 명칭이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이 선교회의 선교사님은 잡히고 감옥에 갇히면서 탈북민을 도왔습니다. 여러 곳에서 훈련원을 운영하면서 한국 시민 이전에 천국 시민이 되게 하였습니다.
현대판 쉰들러의 리스트가 선교사님에 의하여 재현되고 있습니다. 저는 막 신앙교육을 마치고 세례받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와 같은 순전한 신앙고백과 간증, 그리고 눈물을 세례식, 그리고 성찬식과 세족식은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가난 속에서 돈을 벌겠다고 중국으로 나와, 인신매매와 출산으로 수십 년을 지내고, 비로소 예수를 믿게 된 한 맺힌 인생의 눈물과 신음이 예수 안에서 치유되고 있었습니다.
물론 한국의 생활은 만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국에서처럼 신분조차 없는 지워진 삶이 아니라, 어엿한 대한민국 시민권을 가진 존재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장도를 축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눈물 젖은 인생이 그리스도 안에서 또 대한민국의 품에서 복되기를 간구할 뿐입니다. 통일은 예수 안에서, 탈북 성도의 감격의 눈물 속에서, 그리고 우리의 동족을 향한 사랑 안에서 이미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 목사, KCMUSA 이사장)
- 이전글[강준민 목사의 목회서신] 낯선 만남 속에 담긴 신비로운 선물 25.05.23
- 다음글초고령화 시대의 ‘은빛 청년들’ 25.05.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