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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는 기쁨을 훔치는 도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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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5-06-02 | 조회조회수 : 9,27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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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새롭게 파송 받는 연합감리교단의 목회자들이 모여 워크숍을 합니다. 그동안 목회하던 교회에서 사역을 은혜롭게 마무리하고, 새로운 목회지에 임하는 태도는 물론 교우들과의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법을 배웁니다. 변화의 시기에 개인적인 영성과 가족들의 건강을 돌보는 방법도 배우고, 이사 준비와 더불어 행정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일들에 대해서도 공부합니다. 


캘리포니아 퍼시픽 연회에서 새롭게 파송 받는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트랜지션 워크숍(Transition Workshop)’이 지난 수요일과 목요일에 ‘줌(Zoom)’으로 열렸습니다. 온라인으로 열리기에 편리한 점도 있지만, 이틀씩이나 열리는 세미나가 온라인으로 진행되면 아무래도 집중도도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중간중간에 전화도 받아야 하고, 병원 심방도 다녀와야 하고, 이것저것 교회 일을 해야 했기에 온전히 참석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워크숍에 참석했습니다. 이틀간 열린 워크숍에는 40여 명의 목회자들이 모였습니다. 감독님께서는 ‘부름에 응답해 주어서 고맙다’는 말로 환영의 인사를 하셨습니다. 그 부름은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시는 곳에서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겠다’고 안수받을 때 했던 서약에 대한 응답이었습니다. 그날 열린 워크숍 자리에는 감독의 파송 결정에 순종해서 정든 사역지를 떠나 낯선 곳으로 가는 이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이들이 처한 목회적 환경은 모두 달랐지만, 교회나 목회자가 느끼는 마음은 비슷했습니다. 저마다 떠나야 하는 아쉬움이 컸고, 새로운 목회지에 대한 기대와 더불어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워크숍 강사는 전임 목회자가 떠나고 새로운 목회자가 오는 변화의 시기를 잘 지나야 한다고 하면서 이를 이어달리기에 비유해서 설명했습니다. 이어달리기에서 들어오는 주자가 나가는 주자에게 바통을 잘 연결해 주어야 하는 것처럼, 전임 목회자는 후임 목회자가 목회를 잘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강사는 목회지의 이어달리기를 방해하는 가장 큰 적은 ‘비교’라고 했습니다. 그동안 목회하던 목회자와 새로 부임하는 목회자는 비교의 대상이 되기 쉽습니다. 강사는 기쁨을 훔치는 도둑이 있다고 하면서, 그 도둑의 이름을 ‘비교’라고 불렀습니다. ‘비교는 기쁨을 훔치는 도둑’이라는 말을 듣는데, 지금까지 도둑맞은 것들이 떠올랐습니다. 다른 인생을 시새움하느라, 바꿀 수 없는 환경과 비교하느라 정작 내 안에 있는 평안과 기쁨을 도둑맞고 살아온 인생이 후회스러웠습니다. 


강사는 비교라는 도둑으로부터 기쁨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을 위한 여유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자신감을 찾되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라고 조언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비교하기도 하지만, 자신을 비교의 대상으로 삼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기에 어떤 심리학자는 ‘행복은 절대적 상태가 아니라 상대적 위치에서 오는 감정’이라고 정의합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남이 더 잘되면 기뻐하기 어렵고, 아무리 큰 손해를 봐도 남이 더 큰 손해를 보면 위안을 삼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워크숍에서 배운 또 하나의 단어가 있습니다.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는 말입니다. 타인의 불행에서 느끼는 은밀한 즐거움을 뜻하는 말로 독일어에서 유래했지만, 영어에서도 그대로 받아들여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가 달갑지 않게 여겨지는 이유는 다른 사람이 불행을 당했을 때, 겉으로는 위로하지만,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는 이중적 마음이 우리 안에 있음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이 감정의 뿌리를 더 깊이 파고들면, ‘비교’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남과 자신을 견줍니다. 비교는 우리가 누구인지 정의하는 방식처럼 자리 잡았습니다. 현대 사회는 숫자가 비교의 근거입니다. 재산, 집 크기, 성적, 사업의 규모 등을 숫자로 정하고 비교합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누리는 은혜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우선은 숫자로 은혜를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고, 숫자로 측량할 수 있는 범주를 벗어날 만큼 크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에 감격하여 비교를 멈추면 기쁨이 찾아옵니다. 비교의 사슬을 끊고 은혜를 기억할 때, 우리의 얼굴에는 웃음과 함께 기쁨이 가득 찰 것입니다. 그 은혜를 마음껏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이창민 목사(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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