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렁크를 여니 하늘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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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 네바다주에서 열렸던 목회자 세미나에 다녀왔습니다. 세미나는 헨더슨이라는 조용한 동네에 있는 미국인 교회를 빌려서 열렸습니다. 그 교회는 현대식 건물에 여유 있는 공간, 편리하고 좋은 시설을 갖춘 교회였습니다. 식사는 교회에서 도시락이나 케이터링으로 간단히 해결하면서 예산도 아끼고 시간도 절약했습니다. 수십 명이 모여서 함께 식사도 하고, 간식도 나누고, 커피와 차도 마시는데 유독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판매가 금지된 스타이로폼으로 된 일회용 컵과 접시였습니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환경에 안 좋다고 해서 판매가 금지되었지만, 우리 일상에서 오랫동안 참 편리하게 사용되던 것들이었습니다. 한때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던 것들이었는데, 막상 사라지고 나니 아쉬웠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저거 몇 개 사갈까?” 아내가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물론, 교회에서 급할 때 사용할 요량이었습니다. 교회 사무장님에게 전화하더니 사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나 봅니다. 잠시 나갔다가 오더니 일회용 컵을 한가득 차에 싣고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자동차에 실려 먼 길을 달려온 일회용 컵을 교회에 내려놓을 때였습니다. 트렁크를 열고 친교실에 물건을 내리려고 했더니, 다른 곳에 내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왕 수백 마일을 달려왔는데, 20~30미터 정도야 못 갈 것도 없었습니다. 트렁크를 연 채로 조심스럽게 차를 움직였습니다. 후진 기어를 넣고 자동차를 조금 뒤로 빼려고 할 때였습니다. 습관적으로 차 안에 있는 스크린에 눈이 갔습니다. 예전에는 차를 후진시킬 때는 양쪽 사이드 미러와 리어 뷔 미러를 번갈아 보면서 운전했는데, 어느새 자동차 안에 있는 스크린을 보면서 운전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스크린을 보는 순간 당황했습니다. 처음에는 기계가 고장 난 줄 알았습니다. 스크린에 나타나야 할 건물도 길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대신 스크린에는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후방을 비추는 카메라가 트렁크에 달려 있나 봅니다. 트렁크를 여니 하늘이 스크린에 담겼습니다. 파랗고 높다란 하늘에 하얀색 구름이 살짝 펼쳐진 장면을 보면서 잠시 차를 멈추었습니다. 뒤가 보이지 않아서 멈춘 까닭도 있지만, 그보다는 멋진 장면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하늘은 운전하고 올 때도 펼쳐져 있었던 하늘이었습니다. 길만 따라서, 앞 차의 꽁무니만 쫓아서 달릴 때는 감히 쳐다볼 엄두도 내지 못하던 하늘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하늘이 차를 멈추고, 트렁크를 여니 나타났습니다. 조심스럽게 자동차를 움직이니 하늘도 따라서 움직였습니다. 높다란 나뭇가지에 붙은 초록색 나뭇잎도 은근슬쩍 스크린에 들어와 한 귀퉁이를 차지했습니다.
스크린에 펼쳐진 하늘이 제게 물었습니다. ‘너는 무엇을 보고 사느냐?’ 순간 정신없이 땅만 바라보며 살아온 인생길이 펼쳐져 보이는 것 같아 부끄러웠습니다. 그 하늘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아야 함을 알면서도, 우리가 사는 곳이 세상이라는 핑계를 대면서 하루하루 눈앞에 펼쳐진 세계만 보고 살기에 급급했던 제게 고개를 들고 살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시편 기자는 사방이 꽉 막힌 것 같은 현실 속에서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 121:1-2) 시편의 고백처럼 눈을 든다는 것은 단순히 고개를 드는 동작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방향의 전환이며, 삶의 기준을 바꾸는 믿음의 결단입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존엄한 특권이며 하나님을 향한 영혼의 응답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언제나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뜻하지 않게 트렁크를 열고 자동차를 움직이다 불쑥 만난 하늘이었지만, 그 하늘은 여전히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를 지켜주던 품 넓은 하늘이었습니다. 트렁크가 열리니 하늘이 보였던 것처럼, 고개를 들고 눈을 열면 하늘이 보입니다. 아니 하늘이 우리의 마음속으로 들어옵니다. 그리고, 그 하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나를 바라보기 전에도 나는 너를 바라보고 있었어.’라고 말입니다. 그 하늘 너머에서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음을 기억합니다. 그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여러분의 삶 속에 늘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이창민 목사(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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