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가도 이야기는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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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우리 교회 오셔서 장례식 참 많이 하셨죠?’ 장례식이 있을 때마다 교우들이 제게 묻는 말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한 50번은 더 되는 것 같은데요’ 하면서 얼버무렸습니다. 10년 전, LA연합감리교회에 부임한 후 1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10여 분의 교우들을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얼굴을 채 익히기도 전에, 밥 한 끼 같이 하면서 삶의 이야기를 듣기도 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기에 아쉬움과 낯섦 속에서 그분들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배웅해야 했습니다.
지난 수요일에 있었던 고 박순모 성도님의 장례 예배를 준비하면서 LA연합감리교회의 담임 목사로 지난 10년 동안 집례한 장례 예배가 몇 번인지 세어 보았습니다. 총 63번의 장례 예배를 집례했습니다. 그중에는 교우들의 부모님이나 배우자, 자녀 등 제가 개인적으로 잘 알지 못하는 분들의 장례 예배를 집례해야 했던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매 주일 함께 예배드리며 신앙의 여정을 같이 걷던 교우들을 보내드려야 했습니다.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계시던 교우들의 임종을 지킬 때도 있었고, 갑작스레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분들의 가족들과 함께 황망한 장례를 치를 때도 있었습니다. 교우들이 수술과 입원,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을 때마다 심방했습니다. 한 분은 투병하시는 4년간 34번 병원과 집을 방문해서 함께 기도했습니다. 팬데믹 기간에는 병원에 찾아갈 수 없어서 마음만 동동댈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치유와 회복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지만,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뜻과 다를 때도 있었습니다.
100세를 더 살다가 가신 분들의 장례에 아무리 호상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가족들에게는 여전히 아쉬움이 가득한 가슴 아린 장례일 뿐이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의 장례를 치를 때면, 부모의 아픈 마음이 느껴져서 여간 힘든 게 아니었습니다. 이처럼 죽음은 여러 얼굴로 우리 곁을 찾아와서 각자가 살아왔던 인생 이야기를 급작스럽게 끝맺었습니다. 누구나 한 번은 맞이해야 하는 것이 죽음이라는 것은 알지만, 모든 죽음이 다 준비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니 죽음마저 준비할 담대함이 우리에게는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돌아가신 분이 평생 섬기던 교회에서 장례 예배를 드리기도 했고, 공원묘지에 있는 예배당에서 장례 예배를 집례하기도 했습니다. 팬데믹 기간에는 야외에서 10명 참석해서 15분 안에 끝내야 하는 서글픈 장례 예배를 드려야 했던 적도 있었고, 교회에서 장례 예배를 드릴 때도, 예배당 안에 들어갈 수 없어서 예배당 입구에서 장례 예배를 드린 적도 있었습니다. 고인을 화장하기 위해 가족들과 함께 화장터에 가서 마지막 가시는 길을 배웅했던 적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장례 예배는 한 인생을 돌아보고, 그분의 인생을 신앙적으로 해석하고, 남은 가족들에게 하나님의 위로를 전하고, 우리가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임을 일깨우는 시간입니다. 또한, 우리 곁을 떠나신 분의 삶을 기억하면서 그분과 함께 누렸던 소중한 추억들을 회상하며 감사하고, 천국을 향하는 우리의 발걸음이 바르게 가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짧은 시간에 이 모든 이야기를 담아 장례 예배를 드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장례 예배를 인도할 때마다 감사한 마음이 앞섰습니다.
이 땅에서 아름답고 복된 인생을 살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겸허하게 받으신 분들을 배웅할 수 있는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게는 큰 영광이었습니다. 그분들의 내밀한 삶의 영역으로 초대받아, 그분들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왔던 모습을 발견하고, 세상에 남은 이들의 삶을 통해 펼쳐질 고인의 신앙과 삶에 대한 열정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큰 은혜였습니다.
한 사람은 하나의 우주와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난 10년간 장례 예배를 통해 만났던 63분의 우주와 같은 인생이 제 마음에 오래 남아 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만 해도 제 안에 간직하기에 이토록 벅찬데, 63분의 인생이라니요? 한분 한분의 인생을 돌아보고 기억할 때마다 생전의 모습이 떠오르고, 임종과 장례를 통해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장례 설교를 할 때마다 고인이 평생을 통해 남기신 신앙과 성실한 이민자로 살아왔던 사랑과 헌신의 이야기를 이제는 남아 있는 이들이 삶으로 써 내려가라고 권면합니다. 사람은 가도 이야기는 남습니다. 먼저 우리 곁을 떠나신 분들이 보여주셨던 멋진 이야기를 이어서 써 내려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이창민 목사(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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