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국 목사의 음악목회 이야기] 전통 성가대의 자기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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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교회의 칠언”이라고 부르는 다음의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We’ve…Never…Done…It…That…Way…Before.” (우리는…전에…결코…그렇게 …해…본적이…없다.) 저는 가끔 교회의 현관 로비의 문설주 위에 그 칠언이 보이지 않는 잉크로 쓰여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주일예배를 마치고 점심 먹으러 나갈 때 그 칠언이 우리 모두의 마음에 남는 마지막 교훈이되어, 그 주간의 우리의 행실을 지배하고, 우리의 행동을 통일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변화가 필요한 충분하고 타당한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1. 우리 주변의 문화는 변하고 있으며, 우리는 다음 세대와 복음의 불변의 진리를 소통할 수 있는 더 효과적인 방법을 내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진리와 사랑에 빠져야 합니다. 그러나 그 대신에, 우리는 때때로 인간이 만들어 낸 전달 체계와 사랑에 빠집니다.
2. 성령은 우리가 쉽게 무시해온 성경의 어떤 진리에 대하여 새로운 조명(the light of discovery)을 비추어주고 있습니다.
위에서 제기된 문제는 우리를 전통적 찬양대의 문제로 돌아가게 합니다. 한국과 미국의 복음주의 교회의 찬양대는 지난 50년 동안 어떤 모습을 보여주었을까요?
전통적 개신교회의 주일 아침
찬양대원들은 주일마다 위엄스럽게 보이는 가운을 입고 강단에 오릅니다. 그들이 입장하여 모든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를 보내기까지 예배는 시작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악보집 혹은 찬송가를 펴서 회중들이 정중한 모습으로 경청하는 가운데 코랄 전주곡의 연주를 진행합니다. 그 후에, 오르간 연주자가 첫 회중 찬송인 xxx장의 마지막 두 줄을 연주하는 동안 회중은 모두 강단 뒤의 스크린에 펼쳐질 회중찬송 자막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찬양대가 외관상으로는 회중들과 함께 그 찬송을 부르지만, 많은 교회에서는 찬양대와 오르간이 돌연 멈추게 되는 경우에는 회중들이 서로 이야기하는 소리가 회중 찬송의 소리 보다 더 크게 들리기도 한답니다. 찬송가는 1절과 2절 그리고 4절을 부릅니다. 3절은 보통 생략합니다.
그리고 찬양대는 앉아서 다음 지시를 기다리며 자리를 잡습니다. 첫 번째 메모가 소프라노 쪽에서 전달됩니다: “무슨 향수 발랐어요?” 그 뜻은, “와!, 좀 진한데!”라는 의미이지요. 하지만 곧 다음 찬송을 부를 시간이 다가오고 그 다음엔 헌금시간이니, 별로 자리 잡고 앉아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어쩌면 헌금시간에 그들은 준비한 찬양을 부르겠지요. 분명한 건, 그들이 그 곡을 위해 정말 열심히 연습했고 그 곡을 제대로 잘 부르려고 마음을 다하여 애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순식간에 생기가 도는 찬양대는 지휘자의 감동적인 지휘를 따라 연주하며 찬양을 끝냈을 때엔, 정말인지 아닌지에 상관없이 지휘자는 예정된 방법으로 잘했다고 신호를 보낼 것입나다.
그들은 다시 자리에 앉고, 목사님이 설교하시는 동안, 편안하게 쉬며 즐거운 시간을 갖게 됩니다. 메모들이 본격적으로 급하게 돌아다니고 베이스 파트 쪽에서는 이따금씩 씹은 종이가 튀어나옵니다. 여러분이 찬양대원들에게 설교 내용을 물으면 아마 80%는 주저하며 우물쭈물하는 얘기를 듣게 될 것입니다. 가장 안전한 대답은 “예수님”이겠죠.
삼사십 분간 밀려오는 졸음과 싸우며 버틴 후에, 설교 후 회중찬송을 부르거나 아니면 어떤 교회는 다시 일어서서 설교 후의 초청의 찬송을 부르는 시간이 됩니다. 놀랍게도 5절 모두를 부르는데 누군가가 “앞으로 나오기”를 기다리며 계속하여 부릅니다. 5분에서 10분의 긴~ 시간 후에, 결국 아무도 앞으로 나오지 않으면 마지막 광고가 있고 찬양대가 다시 악보집이나 찬송가를 펴서 회중이 나가도록 예배를 끝내는 축도송을 부릅니다.
즐겁든 침울하든, 음악의 스타일에 따라 회중들은 기분 좋게 떠나든지, 혹은 자기성찰을 하며 떠나든지, 그 분위기는 여러분이 안면이 있는 사람을 만나기까지, 30초간 지속되고, 거기서부터는 친교라는 이름의 신성화된 잡담이 시작됩니다. 찬양대원들은 물론 찬양대 가운실에 몰려들어가 웃고 긁적거리며 자신의 옷으로 갈아입습니다. 그리고 각자의 가족을 찾아 “어느 식당”을 갈까 의논하기 시작하여, 수요일 저녁 찬양연습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등등….
물론 우리는 여기서 코미디와 같은 이야기로 과장을 한 것입니다만은 그 이야기 중에 약간은 사실일 겁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지난 50년 중에 한국과 미국의 복음주의 교회에 찾아 갔다면, 제가 묘사한 이야기들이 사실이라는 흔적들을 보았을 것입니다. 더 새롭고 더 젊은 교회들이 찬양대를 거의 부적합한 것으로 여겨, 포기하고 있는 현상을 놀랍다고만 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현상은 우리를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돌아오게 합니다: “이것이 회중들을 전능하신 하나님의 임재로 인도하는 영적 군사들의 모습일까요?”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겁니다.
필자 김영국 목사는 대광고와 한양대학을 졸업하고 1974년 미국으로 이주, Hope International University에서 신학과 음악목회를 공부하였고, 척 스윈돌 목사와 그의 음악목사이며 스승인 하워드 스티븐슨의 영향을 받았으며, 27년 동안 남가주 오렌지카운티의 큰빛한인교회에서 사역하였다. 지금은 저서와 번역, 그리고 웹사이트 매거진 “예배음악”(Worship Music)에서 음악목회에 관한 칼럼을 쓰면서 자신의 음악목회 경험과 사역을 나누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장로교출판사가 펴낸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음악목회 프로그램”,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찬양과 경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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