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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의 쓴소리 단소리] 이민자의 나라 미국, 이민자는 왜 불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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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5-06-11 | 조회조회수 : 3,74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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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아태계문화유산의 달’을 맞아 시에라 네바다 산맥 동부에 있는 만자나(Manzanar)를 방문하는 일본인 후손들이 많다는 방송 보도를 보았다. 우리 집 아이들이 어릴 적에 가족들이 맴머스 등지의 수많은 캠프장을 오고갈 때마다 나는 이 만자나를 들러서 ‘역사공부’를 하고 지나갔다. ‘아빠의 역사강의’였지만 다 큰 아이들이 지금도 그걸 기억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만자나는 한마디로 미국 현대사의 그늘진 단면이다. 스패니쉬로 ‘사과과수원’이란 뜻의 만자나는 현재 만자나국립사적지(Manzana National Historic Site)로 지정되어 있다. 1941년 2차 대전 중 일본이 진주만을 공습하자 미국정부는 미국거주 일본인 이민자들을 ‘잠재적 위협’으로 보고 수용소로 이동시켰다. 이런 수용소가 미국 본토에 10개가 세워졌고 만자나는 그 중 하나였다.


11만 명의 일본계 미국인들이 수용소에 끌려갔는데 미국서 태어나 시민권을 갖고 있는 2세, 3세들까지 일본계라는 이유 때문에 잠재적 위협으로 잡아 가둔 것이다. 만자나에 갇힌 어린이만 1만 명이었다. 서글픈 일이었다. “누구든지 적법 절차에 의하지 않고서는 생명, 자유, 재산을 박탈당하지 않는다”는 미국의 수정헌법 5조를 미국정부가 정면으로 위반한 사건이었다.


수용소 건물은 군대식 막사건물이었다. 일인당 가방 2개씩만 허용되어 집에서 부랴부랴 끌려 왔으니 수용소 생활은 고난 그 자체였다. 그때 만자나 수용소에서 죽은 사람이 146명에 달했다. 전쟁이 끝나고 1945년 수용소가 폐쇄되었고, 1988년에 이르러 레이건 대통령은 이 부끄러운 역사를 사과했다. 생존자에게 2만 불 씩을 보상해 주었다. 그리고 1992년 이 곳을 국립역사 유적지로 지정했고 죽은 이들의 이름을 다 기록 해 놓았다. 위령탑도 세웠다.


지금도 때가 되면 일본계 미국인들은 이 아픈 역사의 현장을 꾸준하게 방문한다. 그리고 위령탑에 여러 가지 색깔로 만든 종이학을 놓고 가면 공원 측은 그걸 건물 안에 전시하고 있다고 들었다.


레이건 대통령이 이 사건을 사죄할 때 “그날의 공포와 편견은 자유를 유린했고, 우리의 가치에 상처를 냈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과연 우리는 그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절대로 벌어질 가능성은 없지만 아주 만약에 한국과 미국이 전쟁을 벌이기라도 한다면 이 땅에 살고 있는 한국인 이민자들은 모두 미국에게 잠재적 위협이 되어야 하는가?


이민자들은 늘 미국의 희망과 가능성을 상징해 왔다. 미국 정부가 시방 불법체류자를 색출하여 강도높게 추방하고 있는 중이다. 출신국가가 아닌 아프리카 리비아의 무시무시한 감방에 보낸다는 계획까지 세웠다가 법원 명령으로 중단되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유학생들이 방학동안 고국에 갔다가 입국비자를 못 받을까 봐 그냥 눌러 앉아 있다고 한다. 합법적인 이민자들은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하지만 ‘분위기상’ 불안해 하고 있다.


이민자들이 막연하게 직면하고 있는 불안은 현실이지만, 그러나 그것에 함몰되지 않고 준비하고, 연대하고, 흔들리지 않는 태도가 우리를 지킬 수 있는 최선의 길이 될 것이다.


만자나에 수용되었던 일본계 미국인들은 당시 연극, 음악회, 시 낭송의 모임을 갖고 ‘만자나 신문’을 매주 발행하여 프리로 배포했다. 공동체의 연결고리가 되었다. 민속 공예품도 만들었다. 인내와 창조의 상징이었다. 그 뙤약볕 사막 한가운데 일본식 정원도 만들었다. 이름은 ‘평화정원(Peace Garden)’이었다. 단순한 조경이 아니라 자기 정체성과 회복의 공간이었다.


물이 없었지만 돌과 나무, 손으로 만든 인공연못을 만들어 자연사랑을 실천했다. 감금되어 있어도 정원 속 평화는 누구도 빼앗지 못했다. 1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정기 수업을 받았다. 졸업식도 했다. 일본계 2세(니세이) 교사들이 자원봉사로 나섰다. 울타리 안에서도 아이들은 미래를 꿈꿨고 부모들은 배움만은 끊지 않으려 애썼다.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는 미국시민”이란 정체성을 놓지 않았다. 감금 중에도 젊은 니세이들은 자원입대하여 미군으로 참전했다. 이들 니세이 부대인 ‘제442연대 전투단’은 유럽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훈장을 받은 부대가 되었다. 그 부대의 ‘전쟁 영웅’이 바로 한국인 김영옥 대령이었다.


그들은 미국 역사를 향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자유를 위해 싸웠다. 비록 감금된 상태일지라도!”


이민은 미국을 만든 근간이었고, 다양성은 미국을 강하게 만든 힘이었다. 이민자를 범죄자나 위협으로 보는 시선이 아니라, 가능성과 기여로 바라보는 눈을 회복할 때, 비로소 이 나라는 레이건 대통령이 말한 ‘만자나의 공포와 편견’에 진정으로 응답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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