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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목일기] 하나님의 은혜는 잔치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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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6-05-11 | 조회조회수 : 1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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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영화 “바벳의 만찬”(Babette's Feast)은 제가 평생 잊지 못할 작품 가운데 하나입니다. 병원 원목 레지던트 시절, 이 영화는 매년 훈련을 함께 받던 동료들과 보고 토론하던 필수 작품이었습니다. 저는 벌써 네 번이나 이 영화를 보았지만, 볼 때마다 늘 같은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영화의 배경은 덴마크의 작은 루터란 공동체입니다. 그들은 카리스마 넘치는 목사의 지도 아래 매우 경건하게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입니다. 검소하고, 절제하며, 자신을 엄격히 다스립니다. 세상의 쾌락을 멀리하고, 신앙적 훈련과 금욕을 삶의 미덕으로 여기며 살아갑니다. 분명 거룩한 공동체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깊어질수록 이상한 공기가 느껴집니다. 그들의 삶에는 기쁨이 없습니다. 웃음이 없습니다.


풍성함이 없습니다. 서로를 향한 따뜻함도 점점 메말라 갑니다. 오래된 상처와 서운함이 공동체 안에 그대로 쌓여 있고, 사람들은 서로를 용서하지 못한 채 “경건” 이라는 이름 아래 점점 형식적이고 딱딱해져 갑니다. 그들은 늘 “은혜” 를 말하지만 정작 은혜로운 사람들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고 찬양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잃어버린 사람들이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종교적인 사람들의 가장 위험한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은혜를 말하지만 실제 삶은 은혜롭지 못하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며, 거룩함을 추구하지만 사랑과 기쁨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모습 말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공동체 안으로 프랑스에서 정치적 박해를 피해 도망쳐 온 한 여성이 숨어 들어옵니다. 바벳이라는 이름의 이 중년 여성은 공동체를 세우고 세상을 떠난 목사의 나이 든 두 딸의 가정부로 일하며 사람들을 섬깁니다. 그녀의 정갈한 음식 솜씨와 뛰어난 살림 감각은 목사의 두 딸에게 큰 도움이 되었고, 공동체 사람들에게도 작은 기쁨이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바벳은 파리에서 편지 한 통을 받게 됩니다. 자신이 복권 1만 프랑에 당첨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약 1억 원 후반에서 2억 원 가까이 되는 거금입니다. 그녀는 그 돈으로 파리에서 새 삶을 시작할 수도 있었고, 최소한 이 외딴 시골 공동체에서 가정부로 살아가는 삶을 정리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다음 행동은 모두를 놀라게 합니다.


바벳은 파리로 건너가 자신이 받은 복권 당첨금 1만 프랑 전부를 사용해 가장 귀하고 진귀한 식재료와 최고급 포도주들을 사 가지고 옵니다. 그리고 자신과 함께 살아온 이 신앙 공동체를 위해 단 하루의 만찬을 준비합니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바벳은 사실 파리 최고의 레스토랑 “카페 앙글레” (Café Anglais) 의 최초 여성 수석 셰프였습니다.


그녀가 준비한 만찬은 공동체 사람들에게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너무 맛있었고, 너무 화려했고, 너무 풍성했고, 무엇보다 너무 행복한 만찬이었습니다. 처음에 사람들은 두려워합니다. 너무 세상적이라고, 경건하지 않다고, 심지어 마귀적이라고까지 생각합니다.


하지만 바벳이 만든 음식과 최고급 포도주를 맛보면서 사람들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합니다. 굳어 있던 얼굴이 풀어지고, 오래된 미움이 사라지고, 서로를 바라보며 웃기 시작합니다. 과거의 앙금을 내려놓고 서로를 용서하며,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기쁨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들은 그날 단순히 좋은 음식을 먹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하나님의 은혜”를 맛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손에 손을 잡고 함께 춤을 추며 서로를 축복합니다.


이 영화를 볼 때마다 저는 성경 속 하나님 나라가 왜 그렇게 자주 “잔치” 로 묘사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탕자를 맞아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고, 혼인잔치의 포도주를 넘치게 만드셨으며,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셨습니다. 심지어 천국조차 “어린 양의 혼인잔치”로 표현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하나님 나라의 은혜를 잔치가 아니라 금욕훈련소처럼 만들어 버릴 때가 많습니다. 물론 절제와 훈련은 중요합니다. 신앙에는 자기부인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목적이 되어버릴 때, 신앙은 쉽게 메말라 버립니다. 


은혜 없는 경건은 사람을 차갑게 만듭니다. 기쁨 없는 신앙은 사람을 판단하게 만듭니다. 사랑 없는 거룩은 결국 사람을 숨 막히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을 마음껏 웃게 만들고, 사람다운 사람으로 만들고, 서로 사랑하게 만드는 풍성한 잔치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은혜는 언제나 잔치처럼 찾아옵니다. 과할 정도로 풍성하게, 넘칠 정도로 아름답게, 마치 1만 프랑의 복권 당첨금 전부를 하룻밤 만찬에 쏟아붓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 모두 늘 잔치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누리면 좋겠습니다. 


신동수 목사(병원/호스피스 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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