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 총총(悤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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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참석한 한 목회자 세미나에서 은퇴하시는 몇 분의 목사님을 축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날 축하를 받는 목사님들은 이민 교회에서 평생 헌신하셨던 분들이었습니다. 참가자들은 수십 년간 성실과 인내로 교회를 지켜오다 은퇴하시는 선배 목사님들을 향해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제 은퇴하시는 목사님들의 인사말이 이어졌습니다. 그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고, 옆에서 함께 해 준 가족들이 힘이 되었고, 교우들의 사랑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짧은 고백으로 소회를 나누고 있을 때였습니다.
마지막 순서의 목사님이 갑자기 강대상으로 올라가시더니 마이크를 툭툭 건드리면서 소리를 확인했습니다. 모두가 의아해하면서 그 목사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강대상에 선 목사님은 미리 준비한 폴더를 펼쳤습니다. 그 안에는 언뜻 봐도 두툼한 원고가 들어 있었습니다. 순서가 밀려 가뜩이나 시간도 없는데, 그 목사님이 펼친 원고를 다 읽으려면 10~20분은 족히 걸릴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날 은퇴 소감을 말하기 위해 며칠 밤을 새웠다고 너스레를 떨던 그 목사님은 “할 말은 많지만,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이만 총총!”이라고 말씀하시며 준비한 원고를 덮었습니다. 말이 길어지면 어떻게 하나 염려하던 참가자들이 안도의 웃음과 함께 큰 박수로 화답했습니다.
그날 ‘이만 총총’이라는 말을 참 오랜만에 들었습니다. 진부한 표현이긴 하지만, ‘아무개 전상서’로 시작해 ‘이만 총총 붓을 놓겠습니다.’라는 말로 편지를 마무리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국어사전에도 ‘총총’을 ‘편지글에서 끝맺음의 뜻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때 쓰인 ‘총(悤)’은 ‘바쁘다, 서두르다’라는 뜻의 한자로 ‘급하게 내용을 마무리한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저도 ‘이만 총총’이라는 말로 지난 10년간 LA연합감리교회에서 주일마다 쓰는 목회 칼럼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10년간 주일마다 칼럼을 썼으니 500편이 넘어야 하지만, 팬데믹 기간에 교회에서 모이지 못할 때는 두 주에 한 번씩 주보를 내면서 칼럼을 썼기에 500편에서 몇 편 모자라는 칼럼을 썼습니다. 어떤 때는 칼럼에 쓸 이야깃거리가 생각나지 않아 몇 날을 고민했던 적도 있었고, 어느 날은 쓸 말이 너무 많아 그중에서 하나를 고르느라 애를 먹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토요일 오전에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미리 써 놓은 칼럼을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써야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선교지를 방문했을 때는 시차 때문에 새벽에 칼럼을 써서 보낸 적도 있었고, 휴가나 부흥회 인도를 위해 출타했을 때도 칼럼 쓰기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주일 설교야 제목과 성경 구절만 나오면 토요일 밤을 새워서라도 준비할 수 있는데, 칼럼은 주보를 만들어야 하기에 늦어도 토요일 오전까지는 완성해야 했습니다. ‘마감이 글을 쓰게 한다’라는 말처럼 마감 직전에야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글을 겨우 보냈던 적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한 번도 쉽게 쓴 글이 없기에 그동안 쓴 칼럼은 치열한 글쓰기가 낳은 간절한 고백이었습니다.
그렇게 쓴 칼럼에는 여러분들과 함께 걸어온 10년간의 교회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칼럼은 한 주간 사역의 현장에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한 보고서가 되기도 하고, 앞으로 나갈 방향을 제시하는 표지판이 되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다시 읽기에 민망한 칼럼이 있는가 하면, 어떨 때는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할 만큼 번뜩이는 소재로 칼럼을 작성하기도 했습니다. 칼럼에 담긴 교우들과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 함께 울고 웃었던 시간, 함께 했던 사역들, 어려움을 함께 이겨낸 이야기는 우리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와 사랑의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지난 10년간 LA연합감리교회의 담임 목사로 주보에 칼럼을 쓰면서 참 행복했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누렸던 은혜의 순간들은 제 마음에 오랫동안 남을 것입니다. 그동안 제가 쓴 칼럼은 여러분들을 향한 제 사랑이 담긴 연애편지였습니다. 그동안 주보에 실린 칼럼을 성심껏 읽어주신 교우들께 감사드립니다. 교회 홈페이지와 여러 인터넷 매체에 실린 칼럼을 읽으며 격려해 주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LA연합감리교회의 담임 목사로 제가 쓰는 칼럼은 여기서 끝을 맺지만, 하나님께서 써 나가실 이야기는 계속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기도하며 목회 칼럼을 ‘이만 총총!’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여러분 모두를 사랑합니다.
이창민 목사(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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