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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택 교수의 문학 칼럼] 『어린 왕자』 6. 여우가 가르쳐 준 복음: 길들인다는 것은 책임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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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6-05-11 | 조회조회수 : 1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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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스며들 수 있을까? 『어린 왕자』에서 여우는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깊은 스승이다. 그는 어린 왕자에게 “길들인다”는 말을 가르친다. 처음 이 말은 다소 위험하게 들린다. 길들임은 지배나 소유처럼 오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우가 말하는 길들임은 상대를 내 뜻대로 만드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에게 유일한 존재가 되어 가는 과정이다. 수많은 밀밭 가운데 한 소년의 머리카락을 떠올리게 되는 것, 수많은 발소리 가운데 한 사람의 발소리를 기다리게 되는 것, 서로에게 스며드는 것 그것이 길들임이다.


나도 사랑할 수 있을까? 관계는 우연한 접촉만으로 깊어지지 않는다. 시간과 반복, 기다림과 약속이 필요하다.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일정한 시간에 찾아오라고 말한다. 그래야 마음이 준비되고, 기다림이 생기며, 만남이 의례가 된다. 현대인은 끊임없이 연결되지만, 깊이 길들여지지는 못한다. 우리는 빠르게 대화하고, 빠르게 친밀해지고, 빠르게 떠난다. 관계는 소비되고, 사람은 취향이 되며, 만남은 편의에 따라 켜고 끄는 화면처럼 취급된다.


그러나 여우의 지혜는 말한다. 사랑은 속도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라고. 우정도, 제자도도, 공동체도, 목회와 선교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설명으로 변화되지 않고, 함께 머문 시간 속에서 변화된다.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그의 정보와 이력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침묵과 두려움, 기쁨과 상처의 리듬을 배워 가는 일이다. 그래서 길들임은 책임이다. 내가 너를 알게 되었으므로, 이제 나는 너에게 무관심할 수 없다는 고백이다. 너를 이대로 사랑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여우 복음은 선교학적 통찰을 제공한다. 선교는 타자를 대상화하여 내 신념의 목적지로 끌고 오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먼저 그의 세계에 들어가고, 그의 언어를 듣고, 그의 상처 앞에서 서두르지 않는 일이다. 성육신적 선교란 복음을 추상적 명제로 던지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이 복음이 되어 함께 거하는 것이다.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가르친 것은 결국 관계없는 진리는 차갑고, 사랑 없는 사명은 폭력적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대 곁에 얼마나 머물 수 있을까?


예수님은 역사 속으로 파입(inbreaking)하셨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 1:14), 하나님은 인간의 시간 안으로 들어오셨고, 세상의 먼지와 눈물 속에서 함께 우셨다. 예수님의 제자도는 길들임이다. 부르시고, 함께 걷고, 먹고, 기다리며, 실패한 제자들을 다시 세우시고 사랑하셨다. 그러므로 복음은 십자가를 지는 책임 있는 사랑이다. 오늘 우리가 누군가를 진정으로 길들인다는 것은 그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존재 앞에 신실하게 머무는 것이다. 사랑은 관계를 만들고, 관계는 책임을 낳으며, 책임은 복음의 가장 낮고 따뜻한 삶의 형식이 된다. 너와 나의 호흡이 된다. <계속>


임윤택 교수(선교신학자, 미주 장신대학교 선교학 박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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