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목일기] 뉴올리언즈 세컨드 라인(New Orleans Second Line) > 칼럼 | KCMUSA

​[원목일기] 뉴올리언즈 세컨드 라인(New Orleans Second Line) > 칼럼

본문 바로가기

칼럼

홈 > 목회 > 칼럼

​[원목일기] 뉴올리언즈 세컨드 라인(New Orleans Second Line)

페이지 정보

작성자 | 작성일2026-04-01 | 조회조회수 : 68회

본문

우리는 흔히 죽음을 나쁜 것, 모든 것을 잃는 것, 허무한 결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오히려 죽음을 직면하며 놀라운 고백을 남겼습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립보서 1:21)


어떻게 죽음이 유익할 수 있다는 말일까요? 원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죄 없이 창조되어, 죽지 않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인간의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왜냐하면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죽음은 모두 죄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 죄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으니 죽지 않을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았는데, 왜 여전히 죽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개혁주의 신학자 루이스 벌코프는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신자에게 죽음은 더 이상 죄에 대한 '형벌'이나 '하나님의 진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신, 신자의 죽음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더욱 온전하게 빚으시기 위해 사용하시는 '도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이들에게 죽음은 죄에 대한 심판의 결과이지만, 우리 신자에게 죽음은 성화를 완성하는 마지막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벌코프는 하나님께서 죽음이라는 과정을 통해 우리 크리스챤들에게 이루시는 영적 성숙과 성화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고 말합니다.


첫째, 죽음은 우리를 진정으로 겸손하게 만듭니다. 죽음 앞에 설 때 비로소 인간은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습니다. 쌓아온 업적과 교만을 내려놓고, 어린아이처럼 간절하게 하나님의 손을 붙들게 됩니다.


둘째, 죽음은 세상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게 합니다. 우리는 죽음 앞에서 평생 움켜쥐려 했던 세상것들이 얼마나 허망한지 알게 됩니다. 육신의 정욕은 약해지고, 대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향한 갈망은 더 뜨거워집니다. 나이가 들수록, 몸이 약해질수록 우리가 더 간절히 주님을 찾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셋째, 죽음은 성화를 완성합니다. 우리는 평생 죄와 싸우며 넘어지고 눈물 흘립니다. 하지만 죽음의 문을 통과하는 순간, 그 지긋지긋한 죄와의 전쟁은 끝이 납니다. 죽음을 통과한 신자들은 온전하게 성화됩니다. 더 이상의 유혹도, 실패도 없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이 문을 통과한 이들을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히 12:23)이라고 부릅니다.


사실 크리스천들에게도 죽음을 통과하는 과정은 쉽지 않습니다. 죽음을 앞둘 때 숨이 막히고, 후끈거리는 불길을 지나는 것처럼 괴롭기도 합니다. 우리 안에 남은 찌꺼기들을 태우고 정화하여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게 하시는 과정이니 마치 산고(産苦)의 고통이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고통 너머에는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울이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고 고백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죽음은 두려움의 낭떠러지가 아니라, 사랑하는 주님을 완전히 만나는 '기쁨의 문'인 것입니다.


몇 년 전 미국 뉴올리언즈의 독특한 장례 문화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이를 “뉴올리언즈 세컨드 라인(New Orleans Second Line)”이라고 부릅니다. 장례 행렬은 죽은 이의 장례 차량과 가족들이 맨 앞에 섭니다. 그리고 그 뒤를 친지와 가족들과 지인들이 따릅니다. 무덤까지 가는 그들의 장례행렬은 처음에는 느리고 무거운 재즈 음악으로 시작됩니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슬픔이 그 선율에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분위기가 완전히 바뀝니다. 세컨드 라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음악은 점점 밝아지고 경쾌해지며, 사람들은 양산과 손수건을 흔들고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이런 장례식 문화에 당황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의 깊은 신앙에 근거한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에게는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떠난 이는 이제 더 이상 고통도, 눈물도 없는 곳으로 갔다는 믿음이 그들로 하여금 슬픔 속에서도 기뻐하며 춤추게 하는 것입니다.


제가 전에 유스 미니스트리(Youth Ministry)를 할 때 학생들에게 이 뉴올리언즈 세컨드 라인 비디오를 보여주며 우리 신자들이 죽음에 대해 가져야 할 소망과 기쁨의 자세를 설교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너희들이 나중에 나의 장례식에 오거든 꼭 내 앞에서 춤을 춰다오!(When you come to my funeral someday, please make sure to dance before me!)"라고 말하며 함께 웃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죽음은 여전히 슬픈 일입니다. 사랑하는 이들과 잠시 이별해야 하기에 눈물이 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 죽음은 더 이상 죄에 대한 심판도 인생의 종말도 아닙니다. 크리스챤의 죽음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들어가는 가장 확실한 통로요, 그리스도와 온전히 하나되는 성화의 완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은 우리에게 좋은 것이다 라고 담대히 말할 수 있습니다.


"사는 것이 그리스도요,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이토록 유익한 죽음을 무엇 때문에 거부하고 무서워하며, 안 죽겠다고 발버둥 칠 이유가 있겠습니까? 죽음을 담대히, 그리고 기쁨으로 맞이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면 좋겠습니다.


신동수 목사(병원/호스피스 원목)

  • 이 기사를 공유하세요

KCMUSA,680 Wilshire Pl. #401, Los Angeles,CA 90005
Tel. 213.365.9188 E-mail: kcmusa@kcmusa.org
Copyright ⓒ 2003-2020 KCMUSA.org.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