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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던지는 자의 실로암] 사랑과 정의, 이혼시키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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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6-10-09 | 조회조회수 : 12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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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정의는 하나님의 성품이라고 합니다. 이 둘은 일견 아주 다를 뿐 아니라 상반되는 특성 같은데, 하나님은 신비스럽게도 이 두 성품을 동시에 지니고 계신다고 합니다. 진 아웃카(Gene Outka)는 사랑과 정의의 관계에 대한 고전적 저서 『아가페: 기독교 사랑의 윤리적 분석』에서 학자에 따라 사랑과 정의의 관계를 셋으로 구별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첫째는 사랑과 정의의 관념이 서로 배치된다(opposed)는 주장입니다. 이러한 생각의 대표적 학자는 안데르스 니그렌입니다. 그는 무조건적인 사랑인 아가페에 대하여 정의의 영역은 도저히 필적할 수 없는 대조적 영역이라고 보았습니다. 아웃카는 니그렌의 관점을 따를 때 정의의 문제는 무조건적인 사랑인 아가페에 도저히 이를 수 없다고 말합니다.

   

둘째로 아웃카는 사랑과 정의가 구별된다(distinguished)고 보는 입장을 소개합니다. 라인홀드 니버가 이에 속합니다. 사랑은 정의가 요청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아간다고 니버는 주장합니다. 사랑과 정의는 개념적으로 구별되지만 실제로는 서로 겹치며, 아가페 사랑은 정의가 요구하는 것보다 더욱 많은 것을 요청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셋째는 아웃카가 사랑과 정의가 일치한다(identified)는 주장을 소개합니다. 조셉 플레처는 니그렌, 니버, 부르너의 정의론을 비판하며 정의란 분배된 사랑이며, 그것은 다수의 이웃 사이에서 공정함을 추구하는 구체적 방법으로 사랑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합니다. 니콜라스 월터스토프나 스티븐 모트 역시 사랑과 정의를 칼로 베듯 가르지 않습니다. 악과 죄가 넘쳐나는 척박한 환경에서 제한된 자원을 배분할 때 사랑의 실천이 낳는 최적의 대안이 바로 정의라고 보는 것이 이러한 입장입니다.

   

사랑과 정의는 하나님의 성품으로서 나뉘어 있지 않으며, 교회 공동체와 사회 공동체를 구별하지도 않습니다. 사랑은 그 위치상 교회 공동체에 속하고, 정의는 사회 공동체에 속한다고 보는 것도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교회를 사랑의 공동체라 부르거나, 국가가 종종 합법화된 폭력을 통해 유지되는 공동체라고 말하는 것이 일견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교회가 오직 사랑만으로 존재해 왔다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구약의 공동체는 출애굽 시절 이집트에서부터 하나님의 정의를 이루며 시작했고, 전쟁을 통해서 가나안을 차지했습니다. 

   

지금도 그 어느 때보다 교회 안에 탁월한 정의의 구현이 필요합니다. 국가 또한 공중 정의의 유지만으로는 존립할 수 없으며, 지도자와 시민의 긍휼과 자비, 희생과 애국심을 요청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와 사회 공동체가 사랑과 정의의 특성에 따라 구별(differentiation)될 수는 있지만, 예리하게 분리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의 성역에 흐르는 사랑과 공의가 정치, 비즈니스, 학교, 예술을 비롯한 문화의 영역에도 동일하게 흘러넘쳐야 합니다. 자원의 배분, 죄악과 갈등 및 부정의의 연속 속에서 사랑은 정의와 변증법적 관계를 맺으며 최적의 대안을 찾아가는 것이 적절합니다.

   

폴 리쾨르는 이 두 개념이 “양극단의 개념”이기 때문에 서로 경시할 위험이 있고, 변증법적 개념인지라 두 개념을 균형 있게 다루는 것 역시 불가능하며, 각각의 개념은 부분적이고 잠정적일 수 있다고 그의 논문 “사랑과 정의”(Love and Justice)에서 평가합니다. 다만 하나님의 사랑은 사회 공동체를 무시하거나 배척하지 않으며,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정의는 교회 공동체를 우회하지 않습니다.

   

사랑과 정의의 조화는 우리의 삶 속에 어떻게 드러날까요? 6·25전쟁 당시 시민들은 신자와 불신자를 가리지 않고 조국의 존립을 위해 정의롭게 싸웠으며, IMF 외환 위기 시절의 ‘금 모으기’는 현대적 사랑의 실천으로서 교회와 사회를 분리하지 않고 진행되었습니다. 구원을 위한, 혹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선교 사역 역시 사랑과 분배정의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귀중한 사역입니다. 동남아 오지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는 복음과 빵 중 어느 하나만 선택하여 이웃에게 다가가지 않습니다. 3·1운동 당시 교회의 성도들이 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한 이유는 불의한 식민세력에 맞서는 확대된 이웃사랑이자, 회복적 정의를 구현하는 사랑의 또 다른 실천적 모습이었습니다.

   

이처럼 사랑과 정의는 나눌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악인을 제어하는 사법 시스템의 완비와 그 합리적 시행은 사랑의 열매를 지키는 보호막이 됩니다. 또한 분배정의에서 소외되거나 응보적 정의의 대상이 된 범죄자의 용서와 회복을 위해 피해자가 가해자와 대화하고 치유해 가는 회복적 정의는 하나님 사랑의 또 다른 구현입니다. 그러므로 사랑과 정의는 변증법적 관계이자 상보적 역할을 하는 짝이며, 동전의 양면입니다. 사랑은 행동하는 정의이고, 정의는 행동하는 사랑입니다. 이 둘은 이혼하지 않고, 영원히 손잡고 걸어가는 부부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아니 우리가 이 둘을 이혼시키지 않기를 바랍니다. 


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 KCMUSA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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