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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목일기] 100년 전 미국 교회의 영적 대공황과 오늘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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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6-10-09 | 조회조회수 : 4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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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미국 개신교회는 심각한 위기를 겪었습니다.


1960년, 미국 교회사학자 로버트 핸디 (Robert T. Handy)는 학술지 《Church History》에 〈미국의 종교적 대공황, 1925–1935〉(The American Religious Depression, 1925–1935)라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그는 1920년대 중반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 미국 개신교가 경험한 위기를 단순한 교세 감소나 재정난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훨씬 근본적인 문제, 곧 교회가 사회를 향해 복음을 설득력 있게 증언할 능력과 자신감을 잃어버린 '종교적 대공황(Religious Depression)'이었다고 분석했습니다.


저는 100여 년이 지난 오늘의 교회를 보고 있습니다. 1920년대의 미국, 그리고 2020년대의 미국과 한국. 정확히 100년의 시차를 두고 있지만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100년 전 미국 개신교가 경험한 위기는 크게 네 가지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 선교에 대한 열정이 식어버렸습니다.


20세기 초 미국 개신교는 세계 선교의 중심이었습니다. 수많은 젊은이가 해외 선교를 꿈꾸었고, 교회들은 세계 복음화를 위해 경쟁적으로 선교사를 파송했습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과 스페인 독감 팬데믹을 지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핸디의 연구에 따르면, 1920년 해외 선교에 자원한 학생이 2,700명이었으나 1928년에는 불과 252명으로 줄었습니다. 거의 90%가 감소한 것입니다. 교회들의 자선 및 선교 관련 기부도 줄어들었고, 선교에 대한 관심 자체가 현저하게 약화되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러한 현상이 1929년 경제 대공황 이전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경제가 어려워서 선교하지 못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경제가 비교적 풍요롭던 시절부터 이미 선교에 대한 열정과 확신이 식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둘째, 교회가 사람들의 삶에서 점점 멀어졌습니다.


교회 예배 참석률이 떨어지고, 신규 교인의 유입이 둔화되었으며, 교회학교도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가 사회에서 누리던 영향력과 신뢰가 약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했습니다.


한때 미국 사회에서 존경받는 직업이었던 목회직도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존경을 받지 못했습니다. 교회의 건물은 여전히 서 있었고, 주일마다 예배도 드렸으며, 목회자들은 여전히 설교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마음은 이미 교회에서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참 무서운 일입니다. 교회가 문을 닫는 것보다 더 심각한 위기는, 사람들이 교회를 물리적으로 떠나기 전에 이미 마음으로 먼저 떠나는 것입니다.


셋째, 기독교가 세상을 위로하기보다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20세기 초 미국 개신교는 낙관주의에 젖어 있었습니다. 과학과 문명의 발전, 세계 선교의 확장, 사회개혁 운동의 성과를 바라보며 새로운 기독교 문명이 도래할 것이라는 기대가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살육과 팬데믹은 그러한 낙관주의를 무너뜨렸습니다.


세상은 고통과 절망 속에서 새로운 대답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국 교회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복음주의 교회의 지도자들은 정치 권력과 결탁하여 자신들이 지지하는 대통령 선출에 몰두했고, 금주법과 같은 도덕개혁 운동에 과도하게 개입했습니다. 1925년 스코프스 재판에서는 문자적 근본주의에 근거해 진화론 교육을 반대하는 법정 공방을 벌이며, 미국 사회에 '기독교 근본주의는 비과학적'이라는 인상을 깊이 심어주었습니다.


물론 당시 모든 교회가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과학적 사고에 열려 있고, 사회적 약자를 돌보고, 불의에 저항하며, 신앙의 본질을 지키려 노력했던 교회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개신교 전체가 남긴 인상은 점점 부정적으로 변해갔습니다.


핸디가 소개한 한 연구에 따르면, 1905년 출판물에 나타난 전통적 기독교에 대한 견해 중 약 78%가 호의적이었지만, 1930년에는 67%가 비호의적인 견해였습니다. 한 세대 만에 기독교에 대한 지적·문화적 분위기가 완전히 뒤바뀐 것입니다.


당시 한 성공회 주교는 미국 개신교가 사업의 번영과 신앙의 성공을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교회는 점점 커지고, 건물은 웅장해지고, 조직은 효율적이 되어갔습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을 향한 경건과 이웃을 향한 사랑도 그만큼 깊어졌는지는 의문이었습니다.


넷째, 교회는 내부 싸움에 몰두했습니다.


1920년대 미국 개신교를 휩쓴 가장 격렬한 논쟁 중 하나는 근본주의와 현대주의의 대립이었습니다. 한쪽은 전통적 신앙을 지키기 위해 싸웠고, 다른 한쪽은 변화하는 현대 세계 속에서 기독교 신앙을 새롭게 해석하려 했습니다. 물론 이 논쟁에는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중요한 신학적 쟁점들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신학적 견해 차이 자체가 아니라 서로를 대하는 태도였습니다. 상대방을 신앙의 배교자로 정죄하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무지한 사람으로 조롱했습니다. 서로를 향한 적대감이 깊어지는 동안 교회의 공적 신뢰는 점점 약해졌습니다.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는 1927년, 근본주의와 현대주의 모두가 일종의 패배주의적 심리에 사로잡혀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이제 2020년대 우리들의 교회를 생각해 봅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때, 저는 1920년대 미국 교회의 역사를 떠올리며 앞으로 우리가 다시 비슷한 길을 걸을 수 있겠다고 우려했었습니다. 그리고 팬데믹이 지나간 지금, 그때 품었던 의문을 다시 꺼내 봅니다.


물론 100년 전 일이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이 벌어지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두 시대를 관통하는 공통점은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교회에 대한 사회적 불신, 교회의 정치화, 편 가르기, 교단과 교파 사이의 적대감, 신앙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비이성적 주장, 물질적 성공을 신앙의 성공과 동일시하는 풍조까지…. 100년 전 교회의 모습과 지금 교회의 모습은 너무도 닮아 있습니다. 팬데믹이 교회를 어렵게 만들었을 수 있습니다. 급격한 세속화와 인구 구조의 변화도 분명 중요한 요인입니다. 그러나 모든 책임을 팬데믹이나 세속화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저는 병원과 호스피스에서 전문 원목으로 일하면서 이 질문을 더욱 절실하게 느낍니다. 병실에서 만나는 환자들은 대개 제가 어느 교단에 속했는지, 보수적인지 진보적인지, 어떤 신학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지에 별다른 관심이 없습니다. 그분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훨씬 단순하고도 본질적인 문제입니다.


이 사람이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가.

내가 믿는 것과 다르게 믿더라도 나를 존중하는가.

내가 고통 속에 있을 때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고 곁에 있어 주는가.

이 사람이 믿는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인가.


우리는 오랫동안 세상을 향해 교회에 나오라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이 왜 교회에 나오고 싶어 하지 않는지를 진지하게 물어야 할 때가 아닐까요?


우리는 세상이 기독교를 싫어하는 이유가 복음의 진리를 거부하기 때문이라고 쉽게 생각합니다. 물론 복음 자체가 세상의 가치관과 충돌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거부하는 것이 정말 복음인지, 아니면 우리가 복음이라는 이름으로 보여준 오만과 배타성, 위선과 적대감인지는 구별해야 합니다.


저는 교회가 신앙의 본질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앙의 확신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확신을 더 깊은 겸손과 사랑으로 표현하는 일입니다. 진리에 대한 확신은 분명하되,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는 겸손과 존중, 그리고 품위가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신앙을 소중히 여기되, 타인의 양심과 존엄성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의 신앙적 정체성과 세상을 향한 시민적 품격은 서로 대립하는 가치가 아닙니다.


100년 전 미국 개신교의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교회가 자기 자신을 지키는 데 몰두하다가 정작 자신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100년 전 미국 교회는 우리가 무엇을 대비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교인 수의 감소가 아닙니다. 교회가 점점 복음의 생명력과 사회적 신뢰를 잃어가는 것입니다. 저는 참으로 후자가 훨씬 더 두렵습니다. 교인 수가 줄어들어도 교회는 여전히 복음에 충실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모이고, 아무리 웅장한 예배당을 세워도 그곳에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산 위의 동네'에서 비추는 빛을 발견할 수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참된 영적 대공황이 아닐까요?


100년 전 미국 교회의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이 거울 앞에서 "세상이 왜 교회를 떠나는가"를 묻기 전에, 우리는 과연 "어떤 교회가 되어가고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것입니다.


신동수 목사(병원/호스피스 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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