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택 교수의 문학 칼럼] 『빙점』 20. 천벌이라는 언어, 회개 없는 죄의식 > 칼럼 | KCMUSA

[임윤택 교수의 문학 칼럼] 『빙점』 20. 천벌이라는 언어, 회개 없는 죄의식 > 칼럼

본문 바로가기

칼럼

홈 > 목회 > 칼럼

[임윤택 교수의 문학 칼럼] 『빙점』 20. 천벌이라는 언어, 회개 없는 죄의식

페이지 정보

작성자 | 작성일2026-10-07 | 조회조회수 : 46회

본문

죄책감은 회개가 아닙니다. 죄책감은 자기 안에서 느끼는 불편함이고, 회개는 하나님 앞에서 방향을 바꾸는 일입니다. 죄책감은 때로 자기연민으로 끝나지만, 회개는 반드시 진실과 사랑과 책임을 향해 걸어갑니다. 『빙점』의 나쓰에는 바로 이 차이를 보여 주는 인물입니다.


나쓰에는 루리코의 죽음 앞에서 아무 감각이 없는 여자가 아닙니다. 그는 자기 불륜의 감정과 딸의 죽음 사이에 어떤 어두운 연결이 있음을 느낍니다. 루리코가 죽은 것은 사이시 쓰치오의 범죄 때문이지만, 그 시간 나쓰에는 무라이와 함께 있었습니다. 어린 딸이 응접실에 들어와 “엄마, 왜 그래?”라고 물었고, 무라이를 노려보며 엄마를 보호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나쓰에는 아이를 무릎에 앉히지 않았습니다. 『빙점 해동』은 이 장면을 두고, 나쓰에가 엄마라는 신분을 포기하고 여자 쪽을 택했으며, 바로 거기에 비극의 시작이 있다고 해석합니다. 


그러므로 나쓰에가 느끼는 “천벌”의 감각은 전혀 근거 없는 미신적 두려움만은 아닙니다. 그는 자기 욕망이 루리코를 사랑의 보호 밖으로 밀어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압니다. 문제는 그 감각이 참된 회개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는 죄를 하나님 앞에 가져가지 않습니다. 루리코 앞에서, 게이조 앞에서, 요코 앞에서 무너져 책임지는 자리로 가지 않습니다. 죄책은 있으나 회개는 없습니다.


『빙점』에서 나쓰에의 죄는 단순한 불륜 충동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중심성입니다. 최순육은 미우라 아야코가 죄를 도덕적 규범 위반 정도로 보지 않고, 창조주 하나님을 망각하고 자신을 절대화하여 자기중심에 빠지는 것으로 이해한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나쓰에를 통해 자기애와 오만에 빠진 인간이 상대를 심판하고 책임을 전가하며 상처를 주는 모습을 드러낸다고 분석합니다. 


나쓰에의 죄책감은 자기중심성을 깨뜨리지 못합니다. 오히려 자기중심성을 더 교묘하게 보호합니다. 그는 “내가 죄인입니다”라고 말하기보다 “왜 나만 고통받아야 하는가”라는 자리로 이동합니다. 루리코의 죽음 앞에서 느꼈던 천벌의 감각은 요코를 향한 잔혹함으로 변합니다. 『빙점 해동』의 연표는 나쓰에가 게이조의 편지를 읽고 충격을 받은 뒤 요코의 목을 조르고, 이후 요코에게 급식비를 주지 않으며, 답사를 백지로 바꿔치기하고, 결국 요코의 출생 비밀을 폭로하기로 결심하는 흐름을 보여 줍니다. 


이것이 회개 없는 죄의식의 무서움입니다. 죄책감은 마음을 낮출 수도 있지만, 낮아지지 않을 때 타인을 공격합니다. 자기 죄를 직면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자기 고통을 전가합니다. 나쓰에는 루리코의 죽음 앞에서 깨어져야 했지만, 요코를 깨뜨리는 사람이 됩니다. 천벌을 느꼈지만, 은혜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죄책을 느꼈지만, 용서를 배우지 않았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죄책감을 회개의 출발점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책감 자체가 구원은 아닙니다. 가룟 유다도 후회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통곡했고 다시 주님께 돌아왔습니다. 둘의 차이는 감정의 강도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죄책감이 자기 안에서 맴돌면 절망이나 분노가 됩니다. 하나님께 향하면 회개가 됩니다. 이웃에게 향하면 사죄와 책임이 됩니다.


나쓰에의 “천벌”이라는 언어에는 두려움이 있지만, 복음은 없습니다. 그는 벌은 느끼지만 사랑은 모릅니다. 심판은 느끼지만 은혜 앞에 서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의 마음은 녹지 않고 더 단단해집니다. 죄책감이 회개로 변하지 않으면, 인간은 자기 죄를 품은 채 더 차가운 사람이 됩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도 이 지점에서 점검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죄책감을 회개로 착각하지 않는가? 마음이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하나님 앞에 돌아왔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참된 회개는 슬퍼하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방향을 바꾸고, 책임을 인정하며, 상처 입은 사람에게 다가가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 의를 내려놓습니다.


나쓰에는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천벌을 느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죄책감은 빙점을 녹이지 못합니다. 십자가 앞에서 깨어지는 회개만이 얼어붙은 영혼을 녹이기 시작합니다. <계속>


임윤택 교수(선교신학자, 미주 장신대학교 선교학 박사원 원장)

  • 이 기사를 공유하세요

KCMUSA,680 Wilshire Pl. #401, Los Angeles,CA 90005
Tel. 213.365.9188 E-mail: kcmusa@kcmusa.org
Copyright ⓒ 2003-2020 KCMUSA.org.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