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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택 교수의 문학 칼럼] 『빙점』 19. 나쓰에: 아름다움이라는 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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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6-10-06 | 조회조회수 : 4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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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모지상주의는 아름다움을 최고선으로 여깁니다. 아름다움은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움이 자기 자신을 섬기게 만들 때, 그것은 우상이 됩니다. 미우라 아야코의 『빙점』에서 나쓰에는 바로 그 위험을 보여 주는 인물입니다. 그는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은총으로 쓰이지 않고, 자기애와 오만의 성전이 됩니다.


『빙점 해동』은 나쓰에를 “아름다움이라는 우상”이라는 제목 아래 다룹니다. 자료는 나쓰에가 단순히 아름다운 여인이 아니라, 아름다움 때문에 타인의 시선에 익숙해지고, 자기 욕망을 중심에 두게 된 인물로 읽습니다. 『빙점』의 이야기는 나쓰에와 무라이가 응접실에 함께 있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5개월 전, 나쓰에의 눈에 난로 재가 들어가 무라이에게 진료받는 사건에서 비롯됩니다. 『빙점 해동』은 그 각막에 박힌 작고 검은 탄진을 죄의 비유로 읽습니다. 눈에 박힌 작은 재가 시야를 흐리듯, 나쓰에의 내면에도 죄의 작은 입자가 박히기 시작합니다. 


눈을 다친 나쓰에는 한쪽 눈에 안대를 합니다. 그는 원근을 분명히 보지 못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신체 상태가 아닙니다. 『빙점 해동』은 이 장면을 인간관계의 원근을 잃어버리는 상징으로 해석합니다. 소중히 지켜야 할 관계와 거리를 두어야 할 관계를 구별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남편과 자녀라는 가까운 사랑은 흐려지고, 무라이가 주는 자극은 과도하게 가까워집니다. 죄는 이렇게 거리 감각을 무너뜨립니다.


나쓰에는 무라이의 시선에서 자신이 여전히 매력적인 존재임을 확인합니다. 그는 아내이고 어머니이지만, 그 정체성보다 “사랑받고 욕망의 대상이 되는 여자”라는 감각에 끌립니다. 『빙점 해동』은 나쓰에가 남편과의 평온한 부부 생활에서 맛볼 수 없는 강하고 격렬한 감각을 원하며, 무라이를 유일한 인격적 존재로 사랑한 것이 아니라 강한 자극을 줄 수 있는 대상으로 원했다고 분석합니다. 결국 나쓰에를 지배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 남편과의 행복도, 젊은 애인의 자극도, 자녀들과의 애정도 모두 자기 것으로 삼고 싶어 하는 끝없는 욕망입니다. 


여기서 나쓰에의 아름다움은 더 이상 축복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중심성의 제단이 됩니다. 아름다운 사람은 자기 아름다움을 하나님께 돌릴 수도 있지만, 자기 자신을 숭배하는 거울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나쓰에는 후자의 길을 갑니다. 그의 미모는 감사의 이유가 아니라 권력의 근거가 됩니다. 사랑받아야 한다는 요구, 주목받아야 한다는 욕망, 자기 감각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교만이 그 안에서 자랍니다.


그 결과 가장 약한 존재가 희생됩니다. 세 살 루리코가 응접실로 들어와 무라이를 경계하며 엄마를 감싸려 할 때, 나쓰에는 결정적 순간에 아이를 품지 못합니다. 그는 무라이의 유혹을 거부하려면 지금 루리코를 무릎에 안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루리코를 밖으로 내보냅니다. 『빙점 해동』은 이 장면을 “엄마이기를 그만 둔 죄”로 읽습니다. 


이것이 나쓰에의 원죄입니다. 단순히 한순간 흔들린 감정이 아닙니다. 자기 아름다움과 욕망을 자녀보다 앞세운 죄입니다. 사랑해야 할 존재를 사랑하지 않기로 선택한 죄입니다. 성경의 선악과 장면처럼, 보암직하고 탐스러운 것을 붙잡는 순간, 인간은 하나님이 정하신 사랑의 질서를 잃습니다. 『빙점 해동』도 나쓰에의 장면을 창세기 3장 6절의 “보암직도 하고… 탐스럽기도 한 나무”와 연결하여 읽습니다. 


최순육의 연구는 나쓰에를 “깨닫지 못한 자의 자기애와 오만”으로 분석합니다. 『빙점』의 핵심 인물들 가운데 게이조와 요코는 죄를 깨닫고 슬픔을 겪는 인물이지만, 나쓰에는 자기 죄를 제대로 직면하지 못하는 인물입니다. 죄를 짓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죄를 죄로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름다움의 우상은 사람을 둔하게 만듭니다. 자신의 잔혹함조차 세련된 감정으로 착각하게 만듭니다.


오늘의 문화는 나쓰에를 낯설게 여기지 않습니다. 아름다움, 매력, 젊음, 이미지, 자기표현은 현대인의 신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빙점』은 묻습니다. 아름다움이 누구를 살리고 있는가? 나의 매력이 누군가를 품는 사랑이 되고 있는가, 아니면 타인을 내 욕망의 배경으로 만들고 있는가?


나쓰에의 비극은 아름다웠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아름다움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지 못했다는 데 있습니다. 은총으로 받은 것을 우상으로 삼을 때, 그 아름다움은 가장 가까운 사람을 밖으로 밀어냅니다. 『빙점』은 우리에게 조용히 경고합니다. 하나님께 드려지지 않은 아름다움은 결국 사랑을 얼어붙게 합니다. <계속>


임윤택 교수(선교신학자, 미주 장신대학교 선교학 박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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