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목일기] 중독, 무엇에 중독되었는가 묻지 말고, 무엇이 아픈가 물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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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원목 훈련 중 ‘중독(Addiction)’에 관한 강연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강연 중 캐나다의 의사이자 중독 전문가인 가보르 마테(Gabor Maté)의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그는 중독을 단순히 술이나 마약 같은 물질의 문제로만 바라보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무엇에 중독되었는가를 묻지 말고, 무엇이 아픈가를 물으라.”
중독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모든 중독을 상처와 고통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유전적 요인도 있고, 뇌의 보상체계와 환경적 요인도 있으며, 정신건강과 사회적 관계도 복잡하게 작용합니다. 그리고 극복하려는 의지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것은 많은 경우 중독의 시작점에 무엇인가 견디기 어려운 것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무치는 괴로움일 수 있습니다. 외로움일 수도 있고, 어린 시절의 상처일 수도 있습니다. 실패와 좌절, 관계의 단절, 사랑받지 못했다는 기억, 미래에 대한 불안, 혹은 자신조차 설명하기 어려운 마음속 깊은 공허함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아프면 진통제를 찾습니다. 몸이 아프면 약을 먹듯 마음이 아플 때에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찾습니다. 어떤 사람은 술을 찾고, 어떤 사람은 약물을 찾습니다. 어떤 사람은 도박이나 성적 자극에 빠지고, 또 어떤 사람은 쇼핑이나 게임,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 속으로 숨어듭니다.
조금 더 넓게 생각하면 우리 모두에게는 고통을 잊기 위해 반복적으로 붙잡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그것이 지속되고 스스로 벗어나기 어려운 상태에 이르면 우리는 그것을 중독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일에 지나치게 몰두하여 일중독에 빠진 사람이 있고,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인정과 칭찬을 구하는 인정중독에 빠진 사람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돈을 모으는 데 집착하고, 누군가는 끊임없는 분노에 빠져 지냅니다. 다른 사람을 비난해야 자신의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시기와 질투가 자신의 뼈를 녹이는 줄 알면서도 그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남편이나 아내를 끊임없이 의심하는 집착은 자신의 일상뿐 아니라 가족의 일상까지 뒤집어엎는 괴로움이 되기도 합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의학적인 의미에서 ‘중독’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밑바닥을 들여다보면 비슷한 질문 하나를 던져볼 수 있습니다. 저 사람에게 무슨 아픔이 있기에 저런 집착과 중독이 생겼을까?
병원과 호스피스에서 오랫동안 환자들을 만나면서 저는 사람의 겉으로 드러난 행동만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조금씩 배우게 되었습니다.
까칠한 환자가 있습니다. 사소한 일에도 화를 내고, 간호사에게 소리를 지르고, 가족들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합니다. 처음에는 “왜 저렇게까지 하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침대 곁에 앉아 조금 오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옵니다.
평생 가족을 위해 일했는데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사람의 무력감이 있습니다. 자식들과 관계가 끊어진 채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의 외로움이 있습니다. 죽는 것이 두려운데 누구에게도 그 두려움을 말하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오래된 죄책감을 가슴에 품고 살아온 사람도 있고,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게 그분의 아픈 이야기를 듣고 나면 질문이 달라집니다. “왜 저 사람은 저렇게 행동할까?”라는 질문에서, “저 사람은 얼마나 아팠던 것일까?”라는 질문으로 말입니다. 이 질문의 변화는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개인의 잘못된 집착적 생각과 행동을 모두 용납하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중독으로 가족을 파괴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행동에는 분명히 책임이 따릅니다. 치료가 필요하고 때로는 단호한 경계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그 사람의 행동만이 아니라 그 행동 아래 있는 고통을 함께 보아야 합니다. 상처를 보지 않고 증상만 없애려고 하면 결국 또 다른 진통제를 찾아가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결국 다른 사람에게만 향하지 않습니다. 나에게도 돌아옵니다. 나는 괴로울 때 어디로 도망가는가? 외로울 때 무엇을 붙잡는가? 불안할 때 무엇에 몰두하는가? 내 자신의 아픔과 고통을 직면하지 않기 위해 나는 무엇을 반복하고 있는가? 어쩌면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작은 진통제에 의존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원목으로 일하면서 저는 하나님의 치유가 언제나 아픔을 즉시 없애주는 방식으로 찾아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수많은 병상 곁에서 보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의 치유는 내 아픔이 기적적으로 사라지는 것보다 먼저, 누군가 내 아픔을 알아주는 순간에서 시작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내 아픔을 들어주고, 이해해주고, 함께 직면해주는 사람을 통해 치유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도망가지 않고 들어주는 사람. 판단하기 전에 물어보는 사람. “왜 그렇게 살았습니까?”라고 묻기보다, “무엇이 그렇게 아팠습니까?”라고 물어주는 사람.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고통 곁에 머물러 주는 일을 통해 우리에게 치유를 베푸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중독의 반대말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절제일 수도 있고, 자유일 수도 있고, 회복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한 가지를 더 보태고 싶습니다. 연결 (Connection).
중독은 사람을 고립시킵니다. 술이든 약물이든 도박이든 집착이든, 처음에는 그것이 나의 고통을 달래주는 친구처럼 다가오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을 가족과 친구에게서 떼어놓고 결국 자신의 아픔 속에 홀로 갇히게 만듭니다. 그래서 중독에서 벗어나는 길에도 다시 ‘사람’이 필요합니다. 대표적인 중독 회복 공동체인 AA(Alcoholics Anonymous)가 오랫동안 강조해 온 것도 혼자만의 의지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회복의 길을 걸어가는 공동체의 중요성입니다.
꼭 AA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중독 회복모임도 좋고, 전문 상담가나 치료사도 좋습니다. 믿을 만한 교회 지도자도 좋고, 오랫동안 나를 알고 있는 마음 좋은 친구 한 사람이어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혼자 아파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의 아픔을 이해해 줄 사람을 찾으십시오. 내가 왜 술을 마시는지, 왜 약물을 찾는지, 왜 도박을 멈추지 못하는지, 왜 포르노에 빠져드는지, 왜 밤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지 그 행동만 책망하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무엇이 그렇게 아팠습니까?”라고 물어줄 사람을 찾으십시오.
그리고 그 사람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십시오. 처음부터 모든 것을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핑계를 대듯 설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요즘 많이 힘들었습니다” 라는 한마디면 충분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누군가 그렇게 우리의 문을 두드린다면, 우리도 너무 빨리 충고하거나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문을 열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물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 힘들었겠다. 얼마나 아팠어?”
신동수 목사(병원/호스피스 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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