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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택 교수의 문학 칼럼] 『빙점』 18. 용서하지 못하는 자의 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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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6-10-02 | 조회조회수 : 2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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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은 우리를 속입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상대를 감옥에 가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됩니다. 정작 갇힌 사람은 상대가 아니라 자기 자신입니다. 미움은 상대의 문을 잠그는 열쇠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기 영혼의 문을 안에서 걸어 잠그는 쇠사슬입니다.


『빙점』의 게이조는 바로 그 감옥에 갇힌 사람입니다. 그는 딸 루리코를 잃었습니다. 아내 나쓰에가 무라이와 밀회하던 순간, 어린 딸은 사이시 쓰치오에게 살해됩니다. 게이조의 슬픔과 분노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우라 아야코는 피해자의 슬픔이 어떻게 복수의 죄로 변하는지를 냉정하게 보여 줍니다. 최순육은 게이조가 나쓰에에게 복수하기 위해 살인범의 딸로 알고 있던 요코를 입양하여 나쓰에가 키우게 하고, 동시에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서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지 자신을 시험한다고 분석합니다. 


게이조의 비극은 그가 나쓰에를 벌하려 했다는 데만 있지 않습니다. 더 깊은 비극은 그가 그 복수 안에 자기 영혼을 가두었다는 데 있습니다. 요코는 한 아이입니다. 사랑받아야 할 존재입니다. 그러나 게이조에게 요코는 한동안 아이가 아니라 도구입니다. 나쓰에의 양심을 찌를 칼이고, 자기 상처를 갚을 장치입니다. 『빙점 해동』은 게이조의 행위를 “거짓 용서와 거짓 수용”으로 읽습니다. 그는 원수의 아이를 받아들인 듯하지만, 실제로는 용서가 아니라 복수를 선택한 것입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은 처음에는 정의처럼 보입니다. “나는 상처받았다. 그러므로 그도 고통을 알아야 한다.” 이 말은 인간적으로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복수는 고통을 이해시키지 못합니다. 오히려 고통을 번식시킵니다. 게이조는 나쓰에를 괴롭히려 했지만, 그 복수는 나쓰에만 찌르지 않았습니다. 요코를 찔렀고, 도오루를 흔들었고, 결국 게이조 자신을 무너뜨렸습니다. 복수는 언제나 예상보다 넓게 번집니다.


『빙점』이 탁월한 이유는 죄를 단순한 악행으로만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죄는 관계의 온도를 낮춥니다. 말은 줄어들고, 침묵은 두꺼워지며, 사랑은 의무가 되고, 가정은 살아 있는 집이 아니라 차가운 병실처럼 변합니다. 채현숙의 연구는 『빙점』이 게이조와 나쓰에 부부, 그 부부와 요코, 도오루와 요코의 관계 속에서 인간의 근본적인 죄를 드러낸다고 설명합니다. 죄는 한 사람 안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용서하지 않는 한 사람의 마음이 한 가정 전체를 얼립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용서는 악을 없던 일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는 가해자의 책임을 지우는 값싼 망각도 아닙니다. 용서는 심판자의 자리를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일입니다. “내가 갚겠다”는 손을 내려놓고, “주께 맡깁니다”라고 고백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용서는 약자의 도피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와 은혜를 믿는 신앙의 행위입니다.


게이조에게 가장 어려웠던 말씀은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였습니다. 『빙점 해동』은 이 말씀이 『빙점』 전반부의 핵심어이며, 게이조가 이 말씀을 올바르게 읽지 못함으로 그것이 죄로의 유혹이 되었다고 해석합니다. 말씀은 그를 회개로 이끌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말씀을 자기 의의 시험대로 삼았습니다. 이것이 종교적 인간의 위험입니다. 말씀으로 자기 죄를 비추지 않고, 말씀으로 자기 복수를 장식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게이조의 감옥이 있습니다. 오래전 상처를 품고 사는 사람, 사과받지 못한 말 한마디를 마음속 재판정에 계속 세우는 사람, 용서한다고 말했지만 상대가 무너지기를 은근히 기다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감옥 안에서는 기도도 차가워지고, 예배도 메마르며, 사랑도 의무가 됩니다.


십자가는 그 감옥의 문을 여는 유일한 열쇠입니다. 하나님은 원수 된 우리를 사랑하셨고, 그리스도 안에서 먼저 용서하셨습니다. 우리가 용서할 수 있어서 용서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용서받았기 때문에 용서의 길로 부름받는 것입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자의 감옥은 안에서 열립니다. 그 문을 여는 순간, 상대만 풀려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먼저 내 영혼이 풀려납니다. 『빙점』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누구를 가두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혹시 그 감옥 안에 갇힌 사람은 당신 자신이 아닙니까? <계속>


임윤택 교수(선교신학자, 미주 장신대학교 선교학 박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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