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택 교수의 문학 칼럼] 『빙점』 17. 자식의 외로움인가, 자기의 외로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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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내면은 외모와 다릅니다. 사람은 때때로 자식을 위한다고 말하면서 사실은 자기 상처를 갚습니다. 자식의 이름을 내세우지만, 그 깊은 곳에는 자기 외로움, 자기 분노, 자기 수치가 숨어 있습니다. 『빙점』에서 게이조와 나쓰에의 복수는 바로 그 지점에서 무섭습니다. 겉으로는 자식의 외로움과 죽음 때문에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자기 외로움 때문에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행동으로 나아갑니다.
『빙점 해동』은 이 구조를 매우 날카롭게 읽습니다. 루리코를 밖으로 내쫓은 나쓰에에게 복수하는 게이조가 실제로는 “자기 안의 질투 때문에” 요코를 입양한 것처럼, 『빙점』에는 게이조와 나쓰에가 “자식의 외로움 때문에 하는 복수”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기의 외로움 때문에 하는 복수”를 행함으로써 이야기가 크게 바뀌어 가는 구조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게이조는 딸을 잃은 아버지입니다. 그의 슬픔은 정당합니다. 그러나 그 슬픔이 하나님 앞에서 애통으로 녹지 않을 때, 슬픔은 복수의 얼음이 됩니다. 그는 루리코를 잃은 고통을 나쓰에에게 갚고자 합니다. 그래서 살인범의 딸이라고 믿은 요코를 입양합니다. 겉으로는 딸을 잃은 집에 새 딸을 들이는 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나쓰에가 평생 고통받기를 바라는 치밀한 장치입니다. 최순육의 연구도 게이조가 나쓰에에게 복수하기 위해 범인의 딸을 입양하여 키우게 하고, 동시에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지 시험한다고 분석합니다.
나쓰에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슬픔을 지닌 사람입니다. 루리코를 잃었습니다. 그러나 나쓰에의 모성은 순수한 애통으로만 머물지 않습니다. 자기 아름다움이 흔들리고, 요코의 존재가 자기 죄를 비추며, 기타하라 앞에서 굴욕을 당하자 그는 요코에게 상처를 돌려줍니다. 『빙점 해동』은 나쓰에가 “왜 나만 고통당해야 하는가”라는 자기중심적 논리로, 게이조가 준비한 흉기인 “루리코를 죽인 범인의 딸”이라는 말을 요코에게 사용한다고 해석합니다.
여기서 인간의 자기연민이 드러납니다. 자기연민은 슬픔과 다릅니다. 슬픔은 하나님 앞에서 울 수 있지만, 자기연민은 다른 사람을 끌어내려야 진정됩니다. 슬픔은 회개로 갈 수 있지만, 자기연민은 복수로 갑니다. “나는 아프다”는 고백이 “그러므로 너도 아파야 한다”는 명령으로 변하는 순간, 인간의 마음은 빙점에 도달합니다.
미우라 아야코가 보는 원죄는 바로 이 자기중심성입니다. 『빙점 해동』은 인간에게는 “자기용” 척도와 “타인용” 척도가 따로 있다고 말합니다. 타인이 한 잘못은 무겁게 재고, 자기가 한 잘못은 가볍게 해석합니다. 타인의 불륜은 더럽지만, 자기의 불륜은 운명적 사랑이 됩니다. 타인의 선행은 당연한 것이지만, 자기의 선행은 미담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향하지 않기에 생기는 자기중심의 죄입니다.
복음은 이 자기연민의 얼음을 깨뜨립니다. 십자가 앞에서 우리는 더 이상 “나는 피해자이므로 무엇이든 해도 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물론 상처는 진짜입니다. 루리코의 죽음은 진짜 비극입니다. 게이조와 나쓰에의 고통도 가볍지 않습니다. 그러나 상처가 죄의 면허증이 될 수는 없습니다. 고통은 설명이 될 수는 있어도, 타인을 파괴할 권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오늘 우리의 가정에도 이런 복수가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한다고 말하면서 자기 좌절을 자식에게 투사합니다. 배우자가 정의를 말하면서 사실은 자기 외로움을 갚습니다. 교회도 사명을 말하면서 때로 자기 상처를 정당화합니다. 우리는 자주 “아이를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내가 외로워서” 행동합니다.
『빙점』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지금 내가 붙들고 있는 분노는 정말 사랑 때문인가, 아니면 내 외로움 때문인가? 내가 자식을 위한다고 말하는 그 자리에서, 혹시 자식을 내 상처의 도구로 삼고 있지는 않은가? 참된 사랑은 자기 외로움을 타인에게 갚지 않습니다. 그것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복수를 멈추며, 상처가 또 다른 상처를 낳지 않게 합니다. 빙점은 바로 그 자리에서 녹기 시작합니다. <계속>
임윤택 교수(선교신학자, 미주 장신대학교 선교학 박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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