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목일기] 백 번의 장례식, 한 번의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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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저는 한 젊은 부부의 결혼 주례를 맡았습니다. 마이클과 유지니아라는 두 청년이 가족과 친지들 앞에서 서로의 손을 잡고 평생을 함께 살아가겠다고 약속하는 자리였습니다.
병원과 호스피스에서 원목으로 사역하다 보니, 저는 주로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함께 서게 됩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환자의 시간을 어떻게 하면 의미 있고 평안하게 보낼지 함께 계획하며, 가족들의 슬픔을 위로하고, 임종의 순간에는 손을 잡고 함께 기도합니다. 자연스레 고인을 위한 장례나 예식을 자주 요청받고 집도하게 되는데, 지금까지 백 번 이상의 임종을 지켜보며 비공식적인 장례예식을 집도해 왔습니다.
그런 제가 백 번에 한 번쯤은 조금 다른 자리에 섭니다. 인생의 마지막이 아니라 두 젊은이의 새로운 시작을 축복하는 주례자로 서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 묘했습니다. 수많은 죽음을 지켜보며 배운 삶의 지혜와, 이제 막 결혼생활을 시작하는 두 청춘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결코 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두 사람을 위해 에베소서 5장 말씀을 바탕으로 “The Mystery of Marriage (결혼의 신비)”라는 제목의 짧은 주례사를 전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결혼을 가리켜 “큰 비밀” (profound mystery)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두 사람에게 결혼에는 세 가지 신비가 있다고 나누었습니다.
첫 번째 신비는, 결혼 생활 안에 눈에 보이지 않는 ‘세 번째 분’이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막대기 두 개를 서로 기대어 세우면 쉽게 넘어지지만, 세 개의 막대기를 서로 기대어 세우면 삼각형을 이루며 훨씬 안정적으로 서게 됩니다. 결혼도 이와 비슷합니다. 두 사람의 사랑만으로 모든 세월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지만, 막상 살아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찾아오기도 하고, 질병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날도 있고, 사랑보다 서운함이 앞서는 계절도 찾아옵니다.
그때 그리스도인의 결혼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신비로운 세 번째 분(The Mysterious Third)’이 계십니다. 두 사람의 힘이 다했을 때에도 계속해서 사랑하게 하시고, 용서하게 하시며, 다시 손을 잡고 걸어가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두 번째 신비는, 한 부부의 결혼 속에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이 투영된다는 점입니다.
저는 마이클에게 말했습니다. “그대의 인내와 희생과 신실함으로 유지니아를 사랑할 때, 유지니아는 그대를 통해 교회를 사랑하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유지니아에게도 말했습니다. “그대의 신뢰와 존경과 기쁨으로 마이클을 사랑할 때, 마이클은 그대를 통해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교회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어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두 사람의 결혼은 주위 사람들에게 한 편의 삶으로 쓰는 설교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훗날 태어날 자녀들은 성경을 읽기도 전에, 부모인 두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읽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보이는 결혼을 통해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는 신비가 아니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가 가장 가까운 아내와 남편을 어떻게 사랑하는가를 통해 비로소 드러나게 됩니다.
마지막 세 번째 신비는, 평생 서로를 끊임없이 ‘발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디아나 존스 영화를 좋아합니다. 그가 매력적인 이유는 단순히 보물을 찾아냈기 때문이 아닙니다. 탐험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발견이 끝나면 또 다른 모험이 시작되곤 했습니다.
결혼도 그렇지 않을까요? 결혼식 날 이미 모든 보물을 발견했다고, 서로를 다 알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신비는 멈추기 시작할 것입니다.
“당신을 어떻게 더 잘 알아갈 수 있을까?”
“당신을 어떻게 더 깊이 사랑할 수 있을까?”
“하나님은 지금 이 계절에, 우리 결혼을 통해 무엇을 가르치고 계실까?”
평생 이 질문을 던지며 살아갈 때, 삶의 신비와 행복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의 가장 위대한 모험은 멀리 있는 무언가를 찾아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당신 곁에 세워 주신 이 한 사람을 평생에 걸쳐 깊이 알아가는 것입니다.”
주례사의 마무리에, 제가 호스피스에서 만났던 한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82세의 그분은 죽음을 앞두고 계셨지만 참으로 평안한 얼굴이셨습니다. “원목님, 저는 참 좋은 인생을 살았습니다.”
젊었을 때는 가진 것이 별로 없었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결혼해 네 아이를 키웠고, 알뜰히 돈을 모아 낡은 중고 픽업트럭 한 대를 샀습니다. 주말이면 샌드위치를 싸 들고 가족을 태워 미시간 호숫가로 소풍을 가곤 했습니다. 그리고 임종을 앞둔 침대 위에서 그분은 어린아이처럼 맑게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아직도 아이들이 웃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돗자리 위에서 웃고 있던 아내의 얼굴도 선합니다. 나중에는 손주들도 데리고 갔지요.”
그리고 조용히 덧붙였습니다. “그것이면 충분했습니다.”
평생을 살아낸 뒤 마지막 순간에 남은 것은 대단한 성공도, 많은 재산도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의 얼굴,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미시간 호숫가의 평범한 어느 오후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이클과 유지니아를 이렇게 축복하며 주례를 마쳤습니다.
하나님의 신비를 끝까지 발견하는 부부가 되기를. 서로를 끝까지 알아가는 부부가 되기를. 그리고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며 서로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We have had a good life.”(우리 참 잘 살았네요.)
오늘 아름답게 출발한 두 청년의 삶이, 마지막 순간까지 아름답고 신비로우며 하나님 안에서 복되게 이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신동수 목사(병원/호스피스 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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