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택 교수의 문학 칼럼] 1. 빙점 해동: 우리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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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임윤택 교수의 문학 칼럼 시리즈로, 이번에는 "미우라 아야코의 『빙점』을 다시 읽으며"를 연재합니다. 시대를 넘어 사랑받아 온 명작을 선교신학자의 통찰로 재해석함으로써, 독자들이 『빙점』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람의 마음에도 온도가 있습니다. 어떤 마음은 봄 햇살처럼 따뜻하고, 어떤 마음은 가을 강물처럼 깊습니다. 그러나 어떤 마음은 겨울 호수처럼 얼어붙습니다. 겉으로는 고요하지만, 그 아래에는 말하지 못한 죄책, 용서하지 못한 상처, 사랑받지 못한 외로움,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한 두려움이 잠겨 있습니다.
미우라 아야코의 『빙점』은 바로 그 얼어붙은 마음을 다룬 소설입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가정 비극도 아니고, 한 소녀의 출생 비밀을 둘러싼 심리소설도 아닙니다. 『빙점』은 인간 마음의 가장 낮은 온도, 곧 죄와 용서의 “빙점”을 묻는 작품입니다. 인간은 어디에서 얼어붙는가? 사랑은 언제 미움으로 변하는가? 용서는 인간의 힘으로 가능한가? 인간이 자기 죄를 깨닫는 순간, 그 슬픔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모리시타 다쓰에의 『《빙점》 해동』은 이 소설을 “해동”한다는 제목으로 읽습니다. 해동은 얼음을 녹이는 일입니다. 얼어붙은 것을 다시 생명의 온도로 돌려놓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빙점』을 읽는다는 것은 한 가정의 비극을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마음속 얼음을 만지는 일입니다.
미우라 아야코는 처음부터 기독교 작가로 태어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1922년 홋카이도 아사히카와에서 태어났고, 16세에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습니다. 전쟁의 시대에 그는 아이들에게 나라와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훌륭한 일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1945년 패전 이후, 자신이 가르친 말들이 진리가 아니라 군국주의의 도구였음을 깨달았습니다. 교과서의 군국주의 문장을 먹물로 지우던 일은 단순히 책의 글자를 지우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청춘과 신념과 교사로서의 삶 전체에 먹물을 칠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 후 그는 결핵과 척추 카리에스로 13년 동안 병상에 누웠습니다. 몸이 무너지고 마음도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그 병상에서 마에카와 다다시의 희생적 사랑을 만났고, 미우라 미쓰요의 신앙적 동행을 통해 다시 일어섰습니다. 길이 없다고 생각한 자리에서 길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자서전 제목은 『길은 여기에』입니다.
이 배경을 알면 『빙점』은 더 이상 차가운 소설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얼음 속에 갇힌 인간을 향한 복음의 호출입니다. 미우라는 『빙점』을 통해 인간 안의 원죄를 보게 합니다. 그러나 그 목적은 인간을 절망시키려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자기 죄를 깨달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용서도 분명해진다는 사실을 보여 주려는 것입니다.
『빙점』의 인물들은 모두 다른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게이조는 정의로운 듯 보이지만 복수의 얼음을 품은 사람입니다. 나쓰에는 아름답지만 자기애와 오만에 갇힌 사람입니다. 요코는 청순하지만 자기 존재의 죄책 앞에서 무너지는 사람입니다. 도오루는 사랑하지만 그 사랑 속에도 소유와 상처가 섞여 있습니다. 사이시는 가해자이지만, 동시에 버려진 인간의 어둠을 드러냅니다. 이들 모두의 마음 깊은 곳에는 하나의 질문이 흐릅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누구인가?”
기독교 신앙은 인간의 죄를 가볍게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죄보다 더 깊은 은혜를 말합니다. 복음은 인간의 얼음을 부수는 망치가 아니라, 얼어붙은 영혼을 녹이는 은총의 햇빛입니다. 『빙점』을 읽는 일은 그래서 위험하면서도 은혜롭습니다. 이 작품은 우리 안의 감추어진 죄를 드러내지만, 동시에 우리를 용서의 자리로 초대합니다.
오늘 우리의 가정에도 빙점이 있습니다. 오래된 말 한마디가 얼음이 되고, 풀지 못한 오해가 차가운 벽이 됩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 남편과 아내 사이, 교회와 교회 사이, 나라와 나라 사이에도 빙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빙점』을 문학 작품으로만이 아니라 영혼의 거울로 읽어야 합니다. 누가 죄인인가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 내가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하기 위해 읽어야 합니다.
빙점은 절망의 끝이 아닙니다. 빙점은 은총이 시작되는 자리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얼음이 녹기 시작하는 자리, 그곳이 바로 회개의 자리입니다. <계속>
임윤택 교수(선교신학자, 미주 장신대학교 선교학 박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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