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택 교수의 문학 칼럼] 『노인과 바다』 20. 마놀린의 새벽: 다음 세대와 계대선교
페이지 정보
본문
청년이 미래입니다. 젊은이가 미래입니다. 젊은이가 살아나면 공동체가 살아나고, 다음 세대가 일어나면 교회의 새벽도 다시 밝아옵니다. 『노인과 바다』는 완전한 승리의 찬가로 끝나지 않습니다. 산티아고는 거대한 청새치를 잡았지만, 항구로 돌아왔을 때 남은 것은 살점이 아니라 뼈였습니다. 그의 몸은 지쳤고, 손은 상했으며, 사람들의 눈에는 실패처럼 보일 처참한 결과만 남았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비극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마놀린이 있기 때문입니다.
소년 마놀린은 노인의 실패를 품습니다. 그는 산티아고의 초라한 귀환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거대한 청새치의 뼈 앞에서 노인을 조롱하지도 않고, “이제 당신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노인의 곁에 머뭅니다. 노인의 거친 손을 보고 아파하며, 그의 손을 붙들고, 다시 함께 바다로 나가겠다고 말합니다. 바로 그 장면에서 『노인과 바다』는 절망의 끝에서 새벽의 가능성을 보여 줍니다.
마놀린은 작은 인물이지만 결정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다음 세대의 얼굴입니다. 그는 산티아고의 조업 기술을 배운 제자이고, 스승의 실패를 목격한 증인이며, 스승의 고독 곁에 머문 동반자입니다. 산티아고가 바다에서 배운 지혜와 상처는 마놀린에게 이어집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고기 잡는 기술의 전수가 아닙니다. 그것은 삶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 실패를 견디는 굳건한 마음, 바다를 사랑하면서도 두려워할 줄 아는 겸손, 그리고 다시 작은 배를 타고 노를 젓는 용기의 전수입니다. 말하자면 바다 사명의 전수입니다.
이 장면은 오늘 교회가 깊이 묵상해야 할 세대 간 선교의 탁월한 그림입니다. 선교는 한 세대의 영웅적 항해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선교는 한 목회자, 한 선교사, 한 지도자, 한 시대의 성공담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선교는 대대로 이어져야 합니다. 한 세대가 바다로 나가고, 다음 세대가 그 항해의 의미를 배우며, 또 다른 바다로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이것이 계대선교, 곧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선교입니다.
찰스 밴 엥겐은 지역 교회를 하나님의 선교적 백성으로 보았습니다. 교회는 자기만의 우물 안에 갇힌 종교 모임이 아니라, 바다 같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증언하도록 부름받은 사명 공동체입니다. 또한 지역 교회는 홀로 떨어진 개별 조직이 아니라 보편 교회의 지역적 현현이며, 동시에 지역과 세계 속에서 그리스도의 증인입니다. 선교는 개인의 업적이 아니라 공동체의 사명입니다. 더 나아가 선교는 한 세대의 소유물이 아니라, 여러 세대가 함께 참여하는 하나님의 선교입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사랑했습니다. 디모데후서 1장에서 바울은 디모데의 눈물을 기억하고, 그의 거짓 없는 믿음을 기억합니다. 그 믿음은 먼저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었고, 이제 디모데 안에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에 계대선교의 중요한 원리가 담겨 있습니다. 믿음은 추상적 교리로만 전달되지 않습니다. 믿음은 사람을 통해 전달됩니다. 눈물과 기도, 가정과 공동체, 말씀과 삶, 상처와 소망을 통해 다음 세대에게 계승됩니다.
디모데는 불씨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단지 과거를 기억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하게 하라”고 권면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다음 세대는 이전 세대의 신앙을 박물관처럼 보존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음 세대는 이전 세대가 받은 복음의 불씨를 자기 시대 속에서 다시 타오르게 해야 합니다. 마놀린도 산티아고의 과거를 기념하는 소년으로만 남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노인에게 배운 지혜와 기술을 가지고 자기 시대의 바다로 나아갈 것입니다.
성령은 세대들에게 꿈과 환상을 주십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는 요엘의 예언을 인용하며 “너희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고 선포합니다. 성령의 선교는 한 세대만의 사명이 아닙니다. 젊은이만의 사명도 아니고, 노인만의 사명도 아닙니다. 성령은 자녀들에게 예언을 주시고, 젊은이들에게 환상을 주시며, 늙은이들에게 꿈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선교 안에서 노인의 꿈과 소년의 환상은 서로를 배척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함께 하나님 나라의 새벽을 열어 갑니다.
노년 세대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음 세대를 걱정합니다. 청년들이 교회를 떠난다고 말합니다. 주일학교가 줄어든다고 말합니다. 신앙 전수가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다음 세대 문제는 단지 숫자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증언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보여 주었습니까? 성공의 결과만 보여 주었습니까? 큰 예배당, 많은 숫자, 화려한 프로그램, 과거의 부흥 이야기만 들려주었습니까? 아니면 실패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했던 믿음의 기억을 전해주었습니까?
다음 세대는 완벽한 승리담만 듣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진실한 증언을 듣기 원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성공했다”는 말보다 “우리는 실패 속에서도 주님을 붙들었다”는 고백이 더 깊이 닿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는 과장보다 “우리는 흔들렸지만 주님이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다”는 복음의 증언이 필요합니다. “우리 시대가 가장 위대했다”는 자랑보다 “너희 시대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 계시고 일하신다”는 축복이 필요합니다.
나이는 자랑이 아닙니다. 노년 세대는 다음 세대에게 자기 영광을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과거의 방식만을 절대화해서도 안 됩니다. 산티아고가 마놀린에게 바다를 가르쳤다고 해서, 마놀린이 반드시 산티아고와 똑같은 방식으로만 바다에 나가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 세대의 바다는 전혀 다릅니다. 디지털 문화의 바다, 인공지능 경쟁의 바다, 세속화의 바다, 다문화 사회의 바다, 전쟁과 평화의 바다, 이주민과 난민의 바다, 외로움과 정신적 고통의 바다, 불신과 냉소의 바다가 그들 앞에 있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언어와 새로운 방식으로 복음을 증언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십니다. 다음 세대도 이전 세대를 가볍게 용도폐기해서는 안 됩니다. 산티아고의 손은 늙었지만, 그 손에는 바다의 기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의 배는 작았지만, 그 배에는 오래 견딘 소명의 흔적이 있습니다. 그의 귀환은 초라했지만, 그 초라함 속에는 깊은 물로 나갔던 용기가 있습니다. 다음 세대는 이전 세대의 실패를 조롱하는 세대가 아니라, 그 실패 속에서 지혜를 분별하는 세대가 되어야 합니다. 상처는 그대로 계승할 필요가 없지만, 상처 속에서 배운 은혜는 계승해야 합니다. 낡은 방식은 새로운 전략으로 갱신해야 하지만, 복음을 향한 신실함은 이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선교적 제자도입니다. 제자도는 성공한 스승의 기술만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제자도는 실패한 스승 곁에 머물며, 그 실패 속에서도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셨는지를 배우는 것입니다. 마놀린은 산티아고가 잡은 거대한 청새치의 온전한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노인의 항해를 압니다. 그는 노인의 손을 보았습니다. 노인의 고독을 보았습니다. 노인의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그에게 남겨진 제자도의 유산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가장 귀한 유산은 완벽한 성공담이 아닙니다. 복음에 대한 진실한 사랑입니다. 주님을 향한 오래된 신뢰입니다. 실패 속에서도 다시 예배한 기억입니다. 상처 속에서도 다시 용서한 기억입니다. 열매가 더뎌도 다시 씨를 뿌린 기억입니다. 교회의 연약함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그 연약함 속에서 일하신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믿음입니다.
밴 엥겐의 관점에서 선교적 교회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표징으로 존재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의 표징은 한 세대 안에서 완결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순종과 미래의 소망이 함께 흐르는 강입니다. 노인의 손과 소년의 눈이 함께 있을 때, 교회는 더 온전한 선교적 공동체가 됩니다. 노인의 손은 오래 견딘 지혜를 말하고, 소년의 눈은 다가오는 새벽을 바라봅니다.
계대선교는 단순한 “다음 세대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그것은 교회의 본질적 사명입니다. 주일학교를 유지하는 것만이 계대선교가 아닙니다. 청년부 행사를 늘리는 것만이 계대선교가 아닙니다. 계대선교는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복음의 중심, 선교의 소명, 제자도의 길, 실패 속의 은혜, 성령 안의 소망을 전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다음 세대가 그것을 자기 시대의 언어와 순종으로 다시 살아내는 일입니다.
노인이 잠들었지만 소년은 깨어 있습니다. 산티아고의 하루는 저물었지만 마놀린의 아침은 이제 시작됩니다. 이것은 세대교체의 냉혹한 장면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교가 계속된다는 따뜻한 표징입니다. 한 세대가 지친 몸으로 누울 때, 하나님은 다른 세대의 마음속에 새벽을 준비하십니다. 한 세대의 손이 떨릴 때, 하나님은 다음 세대의 눈에 환상을 보여 주십니다. 한 세대가 꿈을 꾸고, 다른 세대가 환상을 볼 때, 교회는 성령 안에서 다시 바다로 나아갑니다.
마놀린은 노인에게 배운 모든 지혜와 기술을 자기 시대 속에서 새롭게 발전시켜 나갈 것입니다. 그는 산티아고를 단순히 반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산티아고를 잊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는 더 넓은 바다로 나아갈 것이고, 더 성숙한 어부가 될 것이며, 선교신학적으로 말하자면 더 깊은 의미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 자라갈 것입니다. 마놀린의 새벽은 아직 시작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 새벽 안에는 교회의 희망이 있습니다. 노인의 손이 남긴 기억과 소년의 눈에 떠오른 환상이 만날 때, 하나님의 선교는 다시 바다로 나아갑니다. <계속>
임윤택 교수(선교신학자, 미주 장신대학교 선교학 박사원 원장)
- 이전글"하이, 와까리마시따" 26.08.03
- 다음글다름을 품어내는 영성 26.08.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