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목사의 칼럼(4)] 땀방울과 눈물로 쌓았던 한국 교회, 그 찬란했던 목양의 계절을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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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면, 내 영혼의 가장 뜨거웠던 중심에 언제나 붉게 타오르고 있는 제단 하나가 보입니다. 개척 교회의 쓸쓸한 흙먼지 속에서, 사랑하는 성도들과 함께 밤새 흘렸던 눈물과 땀방울로 쌓아 올린 약속의 제단입니다. 세월의 서리가 내려앉은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아득해진 그 시절을 돌아보는 손길에, 아직도 식지 않은 그날의 온기가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오직 교회다운 교회, 성도다운 성도가 되자.”
매일 새벽 차가운 마루바닥에 엎드릴 때마다 가슴을 쥐어짜며 외치던 이 한 구절은 내 목양의 시작이자 전부였습니다. 새벽의 적막을 기도로 깨우고, 늦은 밤 성전 문을 닫을 때까지 오직 영혼들을 가슴에 품고 달렸던 청춘의 계절. 몸은 부서질 듯 고단했으나, 가슴은 언제나 하늘의 은혜로 가득 차오르던 복된 시절이었습니다.
대심방 기간이 시작되면 온종일 성도들의 골목길을 누볐습니다. 하루에 열다섯 가정을 방문하는 강행군이었지만 피곤함은 사치였습니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있으면서도 목회자를 기다리며 대문 앞을 지키던 성도들을 마주할 때면 늘 목이 메어왔습니다. 거친 사포 같았던 성도들의 손을 맞잡고 이마에 손을 얹어 축복할 때, 그 좁은 단칸방은 이내 성령의 위로로 가득한 하늘 성전이 되었습니다.
성도와 눈물로 삶을 포개며 예수의 사랑을 배워가던 그 작은 방들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금요일 밤은 지상의 어떤 밤보다 깊고 뜨거웠습니다. 밤 10시에 찬양이 시작되면 성도들의 뜨거운 부르짖음으로 성전 유리창은 뿌옇게 흐려지곤 했습니다. 자정을 넘어 동이 터 올 때까지 이어지던 기도는 새벽예배의 붉은 아침 해를 맞이할 때에야 비로소 평안한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그 제단 위에 쏟아지던 은혜는 참으로 기적 같았습니다. 병든 육신이 회복되고, 깨어진 가정이 서로를 껴안았으며, 닫혔던 삶의 문이 열렸습니다. 눈물로 뿌린 기도의 제목들이 응답의 기쁨으로 돌아올 때마다, 우리는 성전 바닥을 뒹굴며 함께 부둥켜안고 울고 웃었습니다. 세상의 어떤 언어로도 담아낼 수 없는 하늘의 희열이었습니다.
개척 후 여덟 해가 지나던 해, 하나님께서는 성전 건축이라는 큰 산을 마주하게 하셨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던 우리는 오직 믿음 하나만 붙들었습니다.
성도들과 ‘여리고 작전’이라는 기도 제목을 품고 매일 성전 부지를 돌며 부르짖었습니다. 성전 땅을 밟으며 흘린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참으로 거짓말처럼 견고하던 불가능의 성벽이 허물어지고 약속의 성전이 우뚝 섰습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정직하게 바라보았던 가난한 자들에게 허락하신 기적이었습니다.
그 시절, 강단에서 외치던 말씀은 타협이 없는 불꽃과 같았습니다. 세상을 향해 아첨하지 않고, 오직 빛과 소금이 되는 성도로 살아가자고 부르짖던 외침에 성도들은 아멘으로 화답하며 세상 속으로 흩어졌습니다. 자신을 태워 어둠을 밝히는 촛대처럼 살고자 애쓰던 성도들의 뒷모습은 언제나 아름다웠습니다.
길고 긴 믿음의 경주를 달리고 나니 비로소 오늘이 보입니다. 한국 교회를 단단하게 지탱했던 그 정금 같은 믿음의 유산은 태평양을 건너 미국 땅으로 이민 온 성도들의 가슴속에도 푸른 나무처럼 자라났습니다. 고단한 이민 생활 속에서도 그들이 꺾이지 않고 신앙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찬란했던 목양 시절에 심겨진 순수한 믿음의 뿌리 덕분이었습니다.
교회를 세우던 그 옛날, 우리에게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향한 뜨거운 사랑뿐이었습니다. 그 고결했던 믿음과 능력을 회상하는 지금, 노병(老兵)과 같은 나의 영혼 깊은 곳에서 다시 한번 꺼지지 않는 예배의 불꽃이 소리 없이 피어오릅니다.
이종천 목사(참좋은 감리교회 원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