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 감각I- 세계질서의 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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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글을 이렇게 빨리 쓰게 될 줄 몰랐다.
적어도 10, 20년 후에나 쓰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보면 이제도 늦었다.
계절이 변할 때마다 징조가 있다.
냄새가 달라지거나 바람의 느낌이 달라진다.
해의 각도가 다르게 느껴질 때도 있다.
물론 절기나 시간의 변화에 따라서도 충분히 예측될 수 있는 것이다.
계절이 변하는 '시간'들은 대체로 달력에 정해져 있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징조'는 그런 물리적이거나 논리적인 것이 아니라
'느낌적 느낌'이다.
바람에서 태양에서 그냥 느껴지는 것이다.
어떤 징조를 통해 앞날을 예측하거나
준비를 하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고 많은 동물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이다.
예를 들어 침몰하는 배에는 쥐가 없다는 말이 있다.
대지진의 전조가 나타나면 쥐나 뱀 같은 동물이 움직인다.
마태복음 16장 3절에서 예수님은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고 책망하신다.
2주 전쯤 나는 가을을 느꼈다.
여전히 태양은 뜨거웠다.
바람은 사막의 건조한 뜨거움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분명 가을을 느꼈다.
겨울에서 봄이 되거나 여름에서 가을이 될 때,
마치 그것을 저지하는 듯한 일들이 벌어진다.
미국에는 인디언 서머라는 것이 있다.
9월 이쯤에 갑자기 폭염이 몰려오는 것이다.
한국에는 꽃샘추위라는 것이 있다.
이런 것들을 처음 경험할 때에는 마치 여름이 다시 오는 것 같고
겨울 추위가 다시 오는 것 같다.
그런데 이것을 여러 번 경험한 어른들은 이것이 무엇인지 안다.
한국의 옛말에 춘한노건(春寒老健)이라는 말이 있다.
봄의 한기와 노년의 건강은 거의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미 동장군의 기세는 완전히 꺾였고 노인의 건강은 어떤 장담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돌이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봄기운은 대세를 장악했다.
노인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
이틀 전쯤 시대의 징조를 느꼈다는 생각이 들었다.
펜데믹 상황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혼란을 보면서
세상을 지탱하던 모든 것들이 다 허물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전부터 논리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지금의 펜데믹은 사실 빅 3라고 볼 있는
미국과 중국, 일본의 우두머리들이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충분히 사전에 방지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
중국에서 시작되었지만 그것을 퍼뜨린 것은 트럼프와 아베다.
트럼프가 정보기관과 보건당국의 조기 경보를 무시했다거나
아베가 도쿄 올림픽을 위해 크루즈 선의 감염을 방치했다거나 하는
등등의 근거를 모두 제시하는 것은 시간 낭비다.
하나님께서는 이 악한 세상에서도 질서를 유지할 권세들을 남겨놓으셨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세계질서와 평화를 위하는 자들이
세계의 패권을 쥐고 있어서 나름대로의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 모든 질서가 완전히 허물어졌다.
미국의 대선은 올해 11월이다.
민주당과 공화당에서 각각 후보를 내고 열심히 선거운동 중이다.
그런데 둘 중 누가 되어도 앞날은 참으로 암울하다.
일본은 아베가 물러가고 스가가 총리가 된다고 한다.
역시 지극히 암울하다.
시진핑의 정권 연장도 다를 바 없다.
펜데믹 이후 세계질서는 급격히 해체될 것이다.
혹시 인디언 서머나 꽃샘추위가 와서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야말로 착각이다.
아무튼 그런 논리적인 근거 외에 최근에 ‘느낌적 느낌’으로 다가오는,
마치 바람이나 해의 각도를 통해서 계절을 느끼는 그러한 것이 포착되었다.
다시는 절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참된 크리스천에게 그렇다.
그러나 크리스천을 참칭하는 자들은
이전의 연장선상에서 세상이 변화 발전하리라고 말들을 한다.
이러한 변화 발전의 흐름을 읽고 교회의 앞날을 설계하자고 한다.
미국 퍼스트뱁티스트 처치(First Baptist Church)의
베리 하워드 목사가 “팬대믹 이후의 세상에 대한 소문이 지나치게 과장돼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코로나 이후에 다가올 교회의 12가지 트렌드”를 예측했다고 한다.
12가지 트렌드는 소개할 가치도 없다.
도대체 이 사람은 성경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하긴 성경을 평생 연구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구약성경에서 뻔히 보이는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그 분을 배척한 것이다.
성경을 아무리 외워도 전혀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저 사람도 성경을 안다고 목사 노릇을 하며 설교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모든 것이 성경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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