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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던지는 자의 실로암] 리차드 백스터는 십일조를 폐지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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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5-09-10 | 조회조회수 : 2,48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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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산상수훈에 금전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놀랍습니다. 영혼의 문제가 신앙에 관련된다면, 생존의 중심 과제 중의 하나가 물질 확보와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말씀하시는 중에, 사람이 두 주인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주인이 될 수 있는 두 존재는 놀랍게도 “하나님과 재물”(God and money, 마 6:24)이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헌금 문제는 신앙의 핵심 중의 하나라고 하겠습니다.


인류의 역사상 대단한 종교적 열정을 가지고 청교도 혁명(1642-1651)을 일으킨 사람들에게도 십일조는 작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영국의 국교회 성공회는 십일조 제도를 통해 목회자와 빈민을 지원하였습니다. 이 시대의 대표적 목회자인 리차드 백스터(1615-1691)는 십일조와 자선에 대한 교훈을 남기고 있습니다. 백스터는 키더민스터(Kidderminster)에서 약 13년간 목회를 감당한 비국교도 목사였습니다. 그는 저술에 뛰어나, 목회의 교범으로 『참된 목자』(The Reformed Pastor)라는 책을 남겼으며, 성도의 삶을 청교도 윤리로 정리한 방대한 서적 『기독교 생활지침』(Christian Directory, I-IV)을 남겼습니다. 정치신학적 저술로는 영국의 이상적 국가의 모습을 그린 『거룩한 나라』(A Holy Commonwealth)가 있습니다.


백스터의 십일조에 대한 관점은 종교개혁자인 루터나 캘빈의 가르침에 깊이 뿌리를 둡니다. 그는 캘빈의 개혁 사상을 이어받아 자유로운 교회를 추구하며 당시의 국가에서 강제한 “공공기도문” 사용을 거부함으로 투옥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백스터는 십일조가 성경의 명령이므로 그대로 집행해야 한다는 문자에 얽매이는 율법주의(legalism)도 거부했습니다. 교회가 십일조를 하는 것은 구약의 의식법(ceremonial code) 아래서 실행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므로, 모세의 법이 신약 시대에도 지속되는 것이 아님을 말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백스터가 가진 기본적인 입장이 반율법주의나 십일조 철폐론(abolitionism)을 주장한 것은 아닙니다. 구원을 얻는 것은 십일조 납부와 같은 행위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십일조의 정신은 오직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이며, 복을 얻기 위한 공로나 투자도 아니며,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방법임을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백스터의 십일조에 대한 견해는 율법주의와 반율법주의를 극복하는 사랑의 계명에 대한 도덕적, 합리적 순종에 있습니다. 당시 교회는 십일조를 거두어 목회자에게 생활비를 제공했기 때문에, 백스터는 목회자만 아니라 가난한 자를 위한 도움을 위해 십일조가 필요함을 말합니다. 그는 『기독교 생활지침, IV-30-14』 “자선을 베푸는 법”에서 십일조가 고대 그리스의 자연법적 의례였음을 기록합니다. 백스터는 아테네의 군주였던 피시스트라투스가 아테네의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추수한 것의 10분의 1을 분리해 공적인 제사나 공적으로 유익이 되는 일이나 전쟁에 사용하게 했다”고 솔론에게 말한 것을 인용합니다.


율법적 십일조의 시대는 지났으나, 예수님은 율법의 폐지보다 완성을 말씀합니다.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 5:18).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않으면”(마 5:20). 십일조에 대한 예수의 언급은 절묘합니다.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니라”(마 23:23). 예수는 율법주의의 굴레와 반율법주의의 방종을 극복하는 좁은 길을 제시합니다. 유대인이나 아테네인의 십일조를 넘어, 복음 아래 있는 기독교인에게 십일조는 상한(ceiling)이 아니며 출발점(bottom)이라고 도전하시는 것 같습니다.


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목사, KCMUSA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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