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감각II-카타콤을 예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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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글에서 나는 내가 이 글을 이렇게 빨리 쓰게 될 줄 몰랐다고 밝혔다.
그래서 글의 순서가 많이 뒤바뀌게 되었다.
앞의 글과 이 글은 거의 마지막에 써야 할 내용이다.
글 작업을 계속하겠지만 그 내용은
이 글들 보다 먼저 읽혀져야 할 것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권력을 통해서 세계질서를 유지해 오셨다.
느브갓네살, 고레스, 팍스 로마나, 영국과 미국 등등의 강대국을
시대마다 세우셔서 타락한 세상이나마 질서를 유지케 하셨다.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세계경찰을 자임하며 세계질서에 이바지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세계경찰의 직임을 공공연히 포기했다.
다음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던 이제 세계경찰의 역할을 끝났다.
앞글에서 말한 대로 중국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다.
나머지 국가들은 세계를 장악할 힘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
사람들은 펜데믹 이후의 상황을 이전과의 연장선상에서 예측하려 한다.
이전보다 조금 더 현명해지고 요령 있게 행동하거나
조심스럽게, 조금 불편을 감수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처럼 생각한다.
마치 등산을 하다가 정상적인 하산 길을
걸어내려 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펜데믹 이후의 세상은 정상적인 하산 길이 아닌
밑이 없는 절벽으로 떨어지는 상황이 될 것이다.
인디언 서머나 꽃샘추위가 나타나서 사람들을 착각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
나는 지금 참된 기독교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요한복음 16장 2절은 마지막 때에 거짓 그리스도인들이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출회하고 죽이면서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고 주장한다고 말씀한다.
홍수의 심판을 부른 ‘죄악의 관영’에
하나님의 아들들의 범죄가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창 6:2).
앞으로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거짓 그리스도인들에게 핍박을 받고
쫓겨나며 죽임을 당할 것이다.
한국 교회는 이미 그것을 한번 경험했다.
일제 강점기에 장로교 총회는 주기철 목사를 면직했다.
면직의 이유는 총회가 결의한 신사참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2016년 예장 합동측은 77년 만에 주기철 목사를 복권시켰다.
마지막 때에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주기철 목사와 같은 일들을 겪을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복권은 없다.
예수님이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남겨진 자’들은
히브리서 11장 35절부터 38절까지의 고난을 받을 것이다.
결국 ‘남겨진 자’들의 선택은 카타콤이다.
다시 말하지만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자들은
세상 사람들이 아니라 거짓 그리스도인들이다.
지금 WCC(세계 기독교 협의회)와 교황청을 중심으로
종교통합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이미 대부분의 교회가 통합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그들은 바벨탑을 쌓으려고 한다.
인간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남겨진 자’들은 하나님만이 주인이시라는 신앙을 가지고 있다.
저들은 함께 모여 인본적 평화와 화합을 도모하는데
‘남겨진 자’들은 하나님 안에서 혈연도, 사회적 관계도
다 끊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마 10:34, 35).
그래서 저 사람들의 눈에는 우리가 반평화주의자이며
심지어 테러리스트로 보일 수도 있다.
펜데믹 이후 세상은 절벽으로 떨어지는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것은 성경의 시각을 바로 가진 사람에게만 보인다.
노아의 홍수 때, 사람들은 방주의 문이 닫히기 전까지 장가가고 시집갔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을 볼 때
참으로 끔찍하다고 생각한다.
그 세상은 온통 무법천지였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 그 사람들이 살던 세상도
-하나님의 율례에는 완전히 어긋나지만-
나름대로의 사회적 질서와 규범을 통해 유지되었을 것이다.
앞의 글에 인용한 펜데믹 이후 12가지 트렌드를 말한 사람은
바로 그런 시각을 통해 세상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방주의 문이 닫히기 전까지 먹고 마시며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을 당연시할 것이다.
예수님의 경고는 무섭다.
방주의 문이 한 번 닫히면 그것으로 돌이킬 수 없는 끝이 온다.
종교통합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남겨진 자’들에게
먼저는 대단한 유혹이 다가올 것이다.
자신들과 함께 화합을 하고 인본적 평화를 도모하면
세상의 것들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할 것이다.
그것이 통하지 않으면 총과 칼을 들고 위협할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도 그랬다.
감언이설로 신사참배를 요구했다.
나중에는 총칼로 위협하며 신사참배를 강요했다.
주기철 목사가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것이 외로움이었다고 한다.
인간적인 외로움이 아니고 신앙을 함께 지켜나갈 동지가 없는 외로움이었다.
우리도 혼자라고 느낄 때가 올 것이다.
그러나 아합의 때에 ‘칠천 인’을 남겨 놓으신 하나님께서
이때에도 우리가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을 남겨놓으실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남겨진 자들의 연대를 만들고 싶다.
그래서 유혹과 협박 속에서도 우리가 옳다는 것을
서로 독려하고 격려하며 마지막 때를 지나고 싶다.
이때에도 참으로 조심해야 한다.
사탄은 그 기회를 이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알렌 크라이더에 의하면 기독교 공인 전까지,
박해가 계속 되는 동안 초대 교회에는
전도프로그램 자체가 없었다고 한다.
최근 중국 공산당에서는 지하교회의 정보를
제공하는 자에게 포상금을 주기 시작했다고 한다.
무신론자들에게는 돈벌이의 기회다.
카타콤에 이런 자들이 들어오면 그 공동체는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마지막 때에는 전도하는 것도 조심스럽다.
그야말로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해야 할 때이다.
‘남겨진 자’들이여, 카타콤을 예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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